대한민국 암호화폐 산업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토큰포스트와 김형중 교수가 한국 암호화폐의 뿌리를 찾아 개척자들의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록하는 「한국 암호화폐 개척자들」 프로젝트입니다. 매주 화요일 공개되는 에피소드 중 본문에는 일부 핵심 내용만 담았습니다. 더 깊고 방대한 이야기는 frontier.tokenpost.kr 에서 확인해 보세요. [편집자주]
2016년 4월. 차명훈이 이더리움을 상장했다. 그런데 코빗에 3월 25일 이더리움이 먼저 등장했다. 두 거래소의 상장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코빗의 유영석은 이더리움과 비트코인 쌍(ETH/BTC)을 올렸다. 차명훈이 이더리움과 원화 쌍(ETH/KRW)을 올리겠다고 하자 이진우도 동의했다. 코인원 내부에서는 초기부터 이더리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컸다. 이더리움 상장을 계기로, 비트코인 중심을 넘어 다양한 코인을 아우르는 거래소로 나아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코인원이 이더리움을 상장하는 데는 차명훈의 결단이 필요했다. 코인원 내부의 정서는 "비트코인 중심(all about Bitcoin)"이었다. 그런데 이더리움이 ICO에 성공했다. 비트코인과 기술적으로 결이 많이 달랐다. 게다가 이더리움 시장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그걸 보고 차명훈은 이더리움의 상장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원화 거래 쌍은 아니었지만 코인원보다 며칠 앞 서 코빗이 이더리움을 상장한 게 자극제가 되었다. 어차피 상장을 준비했던 차명훈도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이진우를 비롯한 코인원 직원들은 두 손 들고 상장을 환영했다. 아울러 코인원은 "금융의 미래(The Future of Finance)"를 캐치프레이즈로 정했다.
이더리움 메인넷은 2015년 7월 30일 제네시스 블록과 함께 시작됐고, 직후 몇몇 초기 거래소들이 매우 빠르게 ETH 거래를 지원했다. 가장 먼저 이더리움을 상장한 게 크라켄이다. 제네시스 블록이 만들어지고 나서 겨우 일주일 지난 8월 8일이었다. 대형 거래소 크라켄이 ETH/BTC, ETH/EUR, ETH/USD 쌍을 올렸다. 이 상장으로 인해 크라켄에서 거래가 폭증했다. 상장 첫 주에만 300만 이더가 거래되었는데 그건 15,000 비트코인과 맞먹었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코인베이스는 즉시 이더리움을 상장하지 않았다. 무려 1년 정도 지난 2016년 5월까지 상장을 유예했다. 코인베이스는 당시 가장 "보수적인 상장 정책"을 시행한 거래소 중 하나였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규제 리스크 때문이었다. 이더리움이 증권인지 아닌지가 불명확했다. 코인베이스는 법적 리스크에 매우 민감했다. 둘째, 기술 안정성 검증이 필요했다. 코인베이스에게 스마트 컨트랙트 개념이 생소해 네트워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는지를 1년 이상 관찰했다. 코인베이스는 "안전하다고 검증된 자산만 상장"했다. 코인베이스의 이더리움 상장은 비트코인 중심 전략의 탈피를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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