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토크노믹스'의 두 얼굴 — “토큰을 쓸수록 돈이 탄다”

| 권성민

암호화폐 업계에서 ‘토크노믹스(tokenomics)’는 토큰을 어떻게 발행하고, 나누고, 소각할지를 설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이 단어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발행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의 문제다. AI 모델은 이용할 때마다 토큰을 소비한다. 문제는 그 비용이 실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코인이 토큰을 만들어내는 산업이라면, AI는 토큰을 태우는 산업이다.

최근 이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세계 최대 차량 호출 기업 우버의 2인자였다. 우버의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 앤드루 맥도널드는 한 팟캐스트에서 “AI 지출을 정당화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 조직에서 AI 도구 사용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제품 개선이나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그는 이런 현상을 ‘토큰맥싱(tokenmaxxing)’, 즉 토큰 과소비라고 불렀다.

이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비용 불평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버는 AI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다. 그런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공개적으로 AI 비용 대비 효용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더구나 마이크로소프트(MS)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사내 개발자용 클로드 코드(Claude Code) 라이선스를 상당수 회수한 직후 나온 발언이었다.

AI 낙관론은 여전히 강하다. 모델 성능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고, 일부 업무에서는 생산성 향상도 확인된다. 그러나 최근 시장의 질문은 달라졌다. “AI가 작동하느냐”에서 “AI가 돈이 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 숫자로 드러난 AI 비용 압박

최근 나온 몇 가지 숫자는 이 변화를 잘 보여준다.

우버는 2026년 클로드 코드 예산을 불과 4개월 만에 소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약 5000명의 엔지니어가 해당 도구를 사용했고, 월간 사용률은 84~95%에 달했다. 1인당 월 청구액은 150달러에서 많게는 2000달러 수준이었다. 우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시간짜리 사내 시연에서만 1200달러어치 토큰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MS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더버지 보도에 따르면 MS는 5월 중순부터 사내 클로드 코드 접근을 단계적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사용량이 늘면서 종량제 청구액이 빠르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MS는 엔지니어들을 자사 깃허브 코파일럿으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에 나섰다.

깃허브 역시 6월 1일부터 코파일럿 요금제를 정액제에서 사용량 기반 종량제로 바꾸기로 했다. 정액제로는 더 이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에이전트형 코딩 세션 한 번에 30~40달러가 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면서, 월 10달러 요금제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가장 날카로운 숫자는 개발 생산성 플랫폼 엔텔리전스(Entelligence.AI)의 조사에서 나왔다. 2444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AI 토큰에 1달러를 썼을 때 실제 사용자 가치로 연결된 것은 18센트에 그쳤다는 것이다. 나머지는 AI가 만든 버그 수정에 44센트, 재작업에 27센트, 검토 과정에 11센트가 쓰였다.

AI가 일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강세론과 약세론이 맞붙는 지점

같은 숫자를 놓고도 해석은 엇갈린다.

강세론자들은 지금의 비용 혼란을 성장 과정의 통증으로 본다. 에이전트형 AI가 보편화되면 토큰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고, 모델 업체와 클라우드 사업자의 매출도 함께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골드만삭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2030년까지 토큰 소비가 현재보다 수십 배 증가할 수 있다고 본다. 가격 모델이 정교해지고, AI 작업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오케스트레이션 기술이 성숙하면 지금의 비용 문제도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약세론자들은 비용 구조 자체가 불안하다고 본다. AI 산업에서 확실히 돈을 버는 곳은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기업이고, 모델 업체와 클라우드 사업자는 막대한 설비투자와 운영비를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챗GPT 출시 이후 엔비디아의 순이익은 급증했지만, 하이퍼스케일러들은 데이터센터 투자와 부채 부담을 키우고 있다.

문제는 매출의 질이다. AI 모델 업체가 클라우드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고, 다시 그 돈을 클라우드 사용료로 지불하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투자, 클라우드 약정, 매출 인식이 서로 맞물리면서 외형은 커지지만, 그 안에 얼마나 자생적인 수요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이 MS, 오라클, 구글, 아마존의 대규모 클라우드 약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도 이런 논란을 키운다. 특정 AI 기업 한두 곳이 클라우드 백로그의 절반 안팎을 차지한다면, 이는 안정적인 분산 매출이라기보다 전략적 의존에 가깝다.

■ 한국 기업도 예외 아니다

이 문제는 미국 빅테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플랫폼 기업과 SI업계도 같은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네이버는 AI 인프라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1분기 설비투자는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상당 부분이 AI 서버와 GPU에 투입됐다. 자체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전략이다. 반면 카카오는 외부 모델과 자체 모델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비용 효율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두 회사의 선택은 다르지만, 본질적 질문은 같다. AI 인프라를 직접 쥐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한가, 아니면 필요할 때 외부 모델을 조합하는 편이 나은가.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토큰 비용이 계속 오르고 정액제가 종량제로 바뀌는 흐름이라면, 비용 통제 능력은 향후 AI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과 SI업체는 더 민감하다. 자금 여력이 제한된 기업일수록 토큰 비용은 곧 생존 비용이다. 저비용 모델과 고성능 모델을 섞어 쓰는 전략, 프롬프트 캐싱, 온프레미스 LLM 구축, 국산 NPU 활용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정부가 추진하는 K-클라우드와 소버린 AI 전략도 단순한 기술 자립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 AI 시대의 핵심은 모델 주권만이 아니라 비용 주권이다. 외국 모델과 클라우드에 의존할수록 한국 기업의 원가 구조는 환율과 해외 토큰 단가에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 닷컴 버블과는 다르지만, 질문은 더 냉정해졌다

지금의 AI 시장을 2000년 닷컴 버블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AI 기술의 실체는 분명히 있다. 일부 분야에서는 생산성 향상도 확인된다. 오픈AI와 앤트로픽 같은 주요 모델 업체들이 단기간에 사라질 가능성도 낮다.

그러나 투자 논리의 중심축은 바뀌었다. 6개월 전까지 시장은 “AI가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느냐”를 봤다. 이제는 “그 확산이 수익성 있는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느냐”를 묻기 시작했다.

AI 토큰 소비가 늘어난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소비가 실제 가치로 전환되는 비율이다. 1달러를 태워 18센트만 남는 구조라면, 언젠가는 누군가 계산서를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AI 산업의 다음 국면은 성능 경쟁이 아니라 단가 경제학의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 똑똑한 모델보다 더 싸게, 더 안정적으로, 더 검증 가능한 결과를 내는 모델이 시장의 승자가 될 수 있다.

AI 열풍은 꺼지지 않았다. 다만 불길이 어디서 돈을 태우고 있는지는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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