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비트코인 반대론자가 아니다. 다만 비트코인을 둘러싼 열광에는 늘 한 걸음 물러서 있었다. 비트코인은 주식도, 채권도, 현금흐름을 내는 사업도 아니다. 그것은 신뢰와 유동성, 채택의 속도, 그리고 “다음 매수자는 반드시 온다”는 믿음 위에 세워진 자산이다.
이 시장에서 심리는 부차적 변수가 아니다. 심리가 곧 본체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매년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벌어들이는 기업은 투자 심리가 흔들려도 사업이 버틴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다르다. 다음 기관이 들어온다는 믿음, 다음 기업이 대차대조표에 비트코인을 올릴 것이라는 기대, 다음 규제 완화가 가격을 밀어 올릴 것이라는 서사가 가격의 상당 부분을 떠받친다.
그래서 마이클 세일러의 최근 매도는 단순한 거래가 아니다. 숫자는 작다. 그러나 상징은 크다.
세일러는 수년간 미국 기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비트코인 전도사였다. 사라. 보유하라. 절대 팔지 마라. 그는 이 메시지를 거의 교리처럼 반복했다. “비트코인은 절대 팔지 않는다.” “신장을 팔지언정 비트코인은 지킨다.” 이쯤 되면 투자 철학이라기보다 신앙 고백에 가까웠다.
2026년 2월, 비트코인 장기 하락이 스트래티지(MSTR)의 보유분 청산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을 때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회사는 팔지 않을 것이며, 영원히 분기마다 비트코인을 살 것이라고 했다. 비트코인은 순결한 담보이고, 우월한 자본이며, 결코 매도하지 않는 자산이라는 서사였다.
그 서사가 깨졌다.
신규 8-K 공시에 따르면 스트래티지는 5월 26일부터 31일까지 비트코인 32개를 평균 7만7135달러, 총 약 250만 달러에 매각했다. 회사가 비트코인을 판 것은 2022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매각 대금은 우선주 STRC 배당 재원으로 쓰일 예정이라고 회사는 밝혔다.
물론 32개가 스트래티지의 재무구조를 뒤흔드는 규모는 아니다. 회사는 여전히 84만3706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약 610억 달러어치다. 32개는 그 거대한 장부에서 점 하나에 가깝다. 이 거래를 두고 “스트래티지가 무너졌다”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다.
그러나 시장은 늘 장부 숫자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 시장은 상징에 먼저 반응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의 핵심은 바로 그 상징이다. ‘절대 팔지 않는 기업’으로 불렸던 스트래티지가 팔았다. ‘비트코인은 매도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해 온 세일러가 매도했다. 이것만으로도 시장의 신경은 곤두설 수밖에 없다.
세일러 측 논리에 일관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STRC 배당을 메우기 위해 일부 보유분을 팔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 매각이 궁극적으로 더 많은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위한 자본 운용의 일부라고도 설명했다. 비트코인이 연 2.3%만 올라도 보통주 매각 없이 배당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도 내놨다. 실제로 회사는 매도 이틀 뒤 더 낮은 가격에 810개를 다시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세금 손실을 활용한 거래라면, 이는 교과서적 자본 운용에 가깝다.
문제는 회계가 아니다. 문제는 서사다.
세일러가 판 것은 비트코인 32개가 아니라 “절대 팔지 않는다”는 문장이었다. 이 시장에서 그런 문장은 숫자보다 비싸다.
더 흥미로운 장면은 그 직후 나왔다. 8-K 공시 직전, 그러나 실제 매도 이후, 세일러는 X에 “Working Better”라는 짧은 문구와 함께 6년간의 비트코인 매집 차트를 올렸다. 이 차트는 그가 신규 매수 발표 직전마다 올려 온 일종의 예고 신호였다. 투자자들은 이를 매수의 암호처럼 읽어 왔다.
Working ₿etter. pic.twitter.com/VZJRdJKsEC
— Michael Saylor (@saylor) May 31, 2026
그런데 이번에는 맥락이 달랐다. 이 메시지는 STRC 우선주 배당을 월 단위에서 반월 단위로 바꾸는 안건의 6월 7일 위임장 표결을 앞두고 나왔다. 개정안 통과에는 4월 17일 기준 발행주식 8500만 주의 50% 찬성이 필요했다. 회사 안팎에서는 “단 한 표가 절실하다”는 호소가 이어졌고, CEO 펑 르는 직접 영상 메시지까지 내놨다.
여기서 구조적 약점이 드러난다. 하버드 로스쿨 기업지배구조 포럼 자료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는 최근 5년간 보유 지분의 약 29%만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 기관투자자의 약 77%와는 큰 차이다. 개인투자자 지분이 많을수록 표결은 어렵고, 표결이 어려울수록 경영진은 시장 심리에 더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Working Better”를 순수한 매수 신호로만 읽기는 어렵다. 그것은 매수 예고였을 수 있다. 동시에 표심을 붙잡기 위한 방어적 제스처였을 수도 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하나다. 비트코인 트레저리 모델은 더 이상 단순한 보유 전략이 아니다. 배당, 의결권, 주가, 우선주, 전환사채, 세금, 주주심리가 얽힌 복잡한 금융공학이 됐다.
비트코인의 균열은 세일러에게서만 보이지 않는다.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의 자금 흐름도 심상치 않다. 5월 마지막 10거래일 동안 ETF에서는 29억6000만 달러가 순유출됐고, 월간 기준으로도 24억 달러가 빠졌다. 3~4월 두 달간 33억 달러 넘게 들어왔던 흐름이 급반전한 것이다. 블랙록 IBIT조차 대규모 블록 거래 이후 사상 최대급 단일일 환매를 맞았다.
더 불편한 대목은 디커플링이다. S&P500과 나스닥, 코스피까지 글로벌 증시가 강세를 보이는 동안 비트코인은 홀로 뒤처졌다. 자본은 비트코인을 떠나 메모리와 반도체, 인공지능 인프라로 이동했다. 상원 은행위가 시장 구조법, 이른바 Clarity Act를 통과시키는 등 우호적 규제 신호가 나왔음에도 가격은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반대 해석도 가능하다. ETF 자금 유출은 단기 과열 포지션을 털어내는 정화 과정일 수 있다. 2025년 초에도 유사한 워시아웃 이후 수개월짜리 반등이 이어졌다는 분석이 있다. 공포·탐욕 지수가 ‘공포’ 구간에 들어선 지금이 오히려 바닥을 다지는 시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시장에서 항복은 종종 바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투자자가 보아야 할 것은 낙관론이 아니라 구조다. 특히 한국 투자자에게 이번 사건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첫째, 비트코인 트레저리 모델의 신화가 처음으로 공개적 균열을 보였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상장사가 스트래티지를 벤치마크 삼아 비트코인을 대차대조표에 편입하려는 시도가 거론돼 왔다. 그러나 이번 매도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우선주와 전환사채 등 레버리지성 자본으로 비트코인을 쌓은 기업은 언젠가 배당과 이자라는 현금 의무 앞에 선다. 그때 신념은 회계를 이기지 못한다. “절대 팔지 않는다”는 말은 멋지지만, 현금흐름표는 멋으로 작성되지 않는다.
둘째, 한국 시장은 심리 전염이 빠르다. 국내 투자자는 개인 비중이 압도적이다. 미국 주식 직구를 통해 MSTR을 추종하는 서학개미도 많고, 국내에서는 이른바 ‘코인주’를 좇는 자금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세일러의 32개 매도는 250만 달러짜리 거래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서사의 종언처럼 읽힐 수 있다.
셋째, 규제 공백의 문제다. 미국이 시장 구조법을 통해 디지털자산 시장의 회계·공시·감독 틀을 다듬는 동안, 한국은 기업의 가상자산 보유와 평가, 공시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여전히 부족하다. 누군가 국내 증시에서 MSTR 모델을 흉내 내려 할 때, 투자자를 보호할 장치는 충분한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
세일러의 매도 자체는 합리적일 수 있다. 세금을 줄이고, 배당을 메우고, 더 낮은 가격에 다시 사는 거래라면 자본시장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동안 그가 팔지 않겠다고 말한 방식이다. 그것은 단순한 전략 설명이 아니었다. 시장은 그것을 신앙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신앙은 한 번 금이 가면 회계 설명서로 쉽게 복구되지 않는다.
ETF에서 빠져나간 30억 달러는 누군가에게 항복이고, 누군가에게 바닥이다. 세일러의 32개 매도는 누군가에게 영리한 세금 거래이고, 누군가에게 서사의 붕괴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시간이 말해 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비트코인이 “절대 팔지 않는 자산”이라는 가장 순결했던 이야기는 더 이상 순결하지 않다. 영원은 회계 앞에서 멈췄다. 이제 시장은 다음 질문 앞에 서 있다.
그 빈자리를 또 다른 믿음이 채울 것인가. 아니면 의심이 채울 것인가. 지금 비트코인 시장이 쓰고 있는 답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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