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시장이 장기 보유자 증가에도 신규 수요 부재로 횡보하는 ‘구매자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크립토닷컴(Crypto.com)의 리서치에 따르면 비트코인(BTC) 장기 보유 물량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현물 ETF 자금 유출과 거래 회전율 둔화가 맞물리며 가격 반등 동력은 약화된 상태다. 반면 미국 증시는 인플레이션 둔화와 인공지능(AI) 기대를 바탕으로 신고가 흐름을 이어가며 가상자산 시장과 뚜렷한 디커플링을 나타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장기 보유자 공급량으로 분류되는 비트코인(BTC)은 1580만 개를 넘어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일반적으로 유통 물량 감소는 가격 상승 요인으로 해석되지만, 이번 국면은 적극적 매집보다 신규 매수자 부족에 따른 ‘거래 정체’ 성격이 더 짙다는 진단이다. 기존 보유 물량이 시장에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장기 보유분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수급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비트코인(BTC) 현물 ETF에서는 지난주 약 14억 달러 순유출이 발생해 직전 주 12억 달러 순유출보다 이탈 규모가 확대됐다. 이더리움(ETH) 현물 ETF 역시 2억4100만 달러 순유출을 기록하며 전주 2억1600만 달러 유출에 이어 약세가 이어졌다. 같은 기간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가격은 각각 4.4%, 4.5% 하락했다. 크립토닷컴(Crypto.com)은 장기 보유 증가가 반드시 강세 신호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재 시장의 핵심 변수는 공급 축소보다 신규 자금 유입 여부라고 짚었다.
반면 미국 자산시장은 상반된 흐름을 보였다. 4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전월 대비 0.2% 상승에 그치며 예상치 0.3%를 밑돌자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됐고, 이에 따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약 12bp 하락한 4.45% 수준으로 내려왔다.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회복되면서 나스닥 지수는 한 주간 2.39% 상승했고, S&P500 지수는 1.43% 오른 7580.06으로 마감해 다시 사상 최고치를 썼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도 0.90% 올랐다.
특히 기술주 강세가 두드러졌다. 델(Dell)은 AI 서버 주문 잔고가 244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힌 뒤 하루 만에 주가가 32% 급등했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 간 휴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88달러 선으로 10% 가까이 하락했고, 이는 에너지발 인플레이션 우려를 낮춰 증시 상승을 뒷받침했다. 같은 위험자산 범주로 묶이던 가상자산 시장이 이 같은 매크로 호재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는 점은 최근 디커플링의 강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가격 조정과 별개로 제도권의 블록체인 채택은 이어지고 있다. 마스터카드(Mastercard)는 뉴욕주 금융서비스국(NYDFS)으로부터 ‘비트라이선스’를 취득하며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 예금을 활용한 블록체인 기반 결제 네트워크 개발에 본격 착수할 채비를 마쳤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그룹도 가상자산 선물·옵션 상품의 24시간 거래 서비스를 시작하며 기관 투자자 접근성을 높였다.
규제 환경은 여전히 엇갈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소유권 검증 문제를 둘러싼 우려로 ‘토큰화 주식’ 거래에 대한 혁신 면제 승인 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측 마켓에 대한 주 정부 차원의 금지 움직임에 반대하며,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독점 관할권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도권 편입과 규제 불확실성이 동시에 전개되는 전형적인 과도기 국면이라는 평가다.
결국 이번 주 시장은 ‘공급 축소’보다 ‘수요 부재’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비트코인(BTC) 장기 보유 물량이 사상 최고치에 올라섰음에도 구매자 정체가 이어지면 가격은 탄력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크립토닷컴(Crypto.com) 보고서는 가상자산 시장이 단기적으로는 ETF 자금 흐름과 거시경제 변수, 중장기적으로는 제도권 채택 확대라는 두 축 사이에서 방향성을 탐색할 것으로 봤다. 시장 신뢰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본격 반등을 위해서는 결국 새로운 매수세 유입이 선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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