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서울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메타콘 2026 첫째 날 행사장은 초반부터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뒤편에는 자리를 잡지 못한 참석자들이 서서 발표를 들었다. AI가 더 이상 일부 기술 기업의 실험실 언어가 아니라, 기업 현장의 공통 과제가 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날의 주제는 ‘AI in Business. Already Happened’였다. 이 문장에서 가장 무거운 단어는 ‘AI’가 아니었다. 맨 끝의 과거형, ‘Already Happened’였다. AI가 온다는 말은 이제 낡았다. AI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도 한발 늦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남은 것은 준비가 아니라 실행이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은 메타콘 무대에는 현대자동차, 케이뱅크, 앤트로픽, 세일즈포스, LG CNS, KT, 딜로이트, SAP 등이 차례로 올랐다. 산업도, 국적도, 고객도 달랐다. 그런데 결론은 놀랄 만큼 같았다. 진짜 뉴스는 어느 한 회사의 발표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기업과 전문가들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는 사실이었다. AI는 더 이상 부가 기능이 아니다. 기업 운영의 전제가 되고 있다.
그 말을 가장 명료하게 정리한 이는 맹성현 KAIST 명예교수였다. 그는 이제 AI를 ‘쓰는’ 시대가 아니라, AI를 전제로 살아가는 시대라고 했다.
우리가 그동안 편하게 써온 ‘AI 활용’이라는 말에는 안일한 전제가 숨어 있다. 원래 하던 일은 그대로 두고, 거기에 AI라는 도구 하나를 얹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디지털 전환, 이른바 DX가 대체로 그랬다. 종이를 화면으로 옮겼고, 장부를 시스템으로 바꿨다. 그러나 일하는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는 그대로 남은 경우가 많았다.
AX는 다르다. AI 전환은 겉에 기능을 붙이는 일이 아니다. AI가 판단과 실행의 과정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다. 맹 교수는 기존 사업에 AI 기능을 얹는 ‘AI+X’와, 사업 구조 자체를 AI 중심으로 다시 짜는 ‘X+AI’를 구분했다. 챗봇을 붙이고 문서를 요약시키는 것은 앞쪽이다. 제조 공정, 보험 심사, 고객 응대, 금융 서비스의 흐름 자체를 바꾸는 것은 뒤쪽이다. 진짜 변화는 뒤에 있다.
앤트로픽의 장동진 아키텍트가 “소프트웨어가 도구에서 동료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구는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된다. 동료는 다르다. 동료가 들어오면 업무 분장부터 회의 방식, 책임 구조까지 다시 정해야 한다. AI에 실행을 맡기고, 사람은 방향을 정하고 결과를 판단한다. 사람의 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역할이 바뀌는 것이다.
세일즈포스의 주드 우메 디렉터도 같은 지점을 짚었다. “AI가 사람보다 똑똑해지는가”라는 질문보다 중요한 것은 “AI 덕분에 사람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결정과 책임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다만 사람은 더 이상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존재가 아니다. AI와 함께 일의 구조를 설계하는 존재가 된다.
문제는 많은 기업이 아직도 AI를 도구 구매의 문제로 본다는 데 있다. 딜로이트의 제시카 김 파트너는 냉정한 숫자를 꺼냈다. AI 도입으로 실제 재무 성과와 ROI를 낸 기업은 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기술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AI를 RPA처럼 또 하나의 IT 프로젝트로 여긴 것이 문제였다. 무엇을 해결할지 정의하지 않고, 데이터를 정리하지 않고, 현업을 배제한 채 도구부터 사들였다.
페라리 엔진에 정제되지 않은 연료를 넣으면 속도가 나는 것이 아니라 고장이 난다. 생성형 AI에서는 그 고장이 할루시네이션으로 나타난다. SAP의 정수지 어드바이저도 같은 진단을 내렸다. AI가 목적이 되는 순간 실패가 시작된다. 순서는 반대여야 한다. 먼저 현장의 페인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그다음에 AI가 와야 한다. AI를 도입하기 위해 문제를 찾는 회사는 실패한다. 문제를 풀기 위해 AI를 쓰는 회사가 살아남는다.
이날 또 하나 또렷하게 떠오른 키워드는 비용이었다. 그동안 AI 담론은 성능 경쟁에 치우쳐 있었다. 어느 모델이 더 똑똑한가. 어느 모델이 더 긴 문맥을 처리하는가. 어느 모델이 더 복잡한 추론을 하는가. 그러나 기업 현장의 질문은 이미 바뀌고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를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의 비용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실행할 것인가”다.
KT의 이진형 본부장은 토큰 예산이 더 이상 단순한 비용 변수가 아니라 성능 변수라고 했다. 단순해 보이는 작업 하나에도 수백만 토큰이 들어간다. 단가가 낮아지면 비용이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용량이 폭발한다. 싸지면 덜 쓰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쓴다. 이른바 제번스의 역설이다.
LG CNS의 진요한 센터장도 같은 현장의 고민을 전했다. 토큰을 많이 쓰게 했더니 기업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승부는 운영에서 갈린다. 어떤 업무에 큰 모델을 붙이고, 어떤 업무에 작은 모델을 붙일 것인가. 어느 단계는 자동화하고, 어느 단계는 사람이 검증할 것인가. 이 판단이 곧 경쟁력이다. AI는 구매하는 순간 끝나는 기술이 아니다. 도입보다 어려운 것은 운영이다.
케이뱅크가 제시한 초개인화 금융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김홍종 팀장은 은행이 지점, ATM, 모바일을 지나 초개인화 금융과 에이전틱 뱅크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춘 서비스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손으로 수백만 명을 각각 응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초개인화는 오랫동안 구호에 가까웠다.
AI가 전제될 때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객의 상황, 행동, 위험, 선호를 실시간으로 읽고 대응할 수 있다면 초개인화는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시스템이 된다. 은행뿐 아니라 미디어, 유통, 교육, 의료도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이것 역시 공짜가 아니다. 초개인화는 AI를 전제로 조직과 데이터를 다시 설계한 기업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이날의 모든 발표는 한 지점으로 모였다. 문화다.
딜로이트도, SAP도, 세일즈포스도, 케이뱅크도 같은 말을 했다. AI는 IT 프로젝트가 아니라 비즈니스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들여와도 현업이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현업이 문제를 정의하지 않으면 AI는 엉뚱한 답을 성실하게 내놓는다.
케이뱅크의 김 팀장은 중간에서 연결만 하는 사람을 두는 방식으로는 AI 전환이 지속되지 않는다고 했다. 현업과 AI 조직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함께 실험하고, 함께 실패하고, 함께 고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조직이 바뀌지 않으면 도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그 문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연사들은 뜻밖에도 거창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답은 작았다. 작은 성공이다. SAP의 정수지 어드바이저는 거대한 마스터플랜보다 현장의 페인 포인트를 푸는 작은 MVP에서 시작하라고 했다. 포티투마루의 김동환 대표도 비슷한 말을 했다. AI 기술은 2주마다 바뀐다. 거대한 프로젝트를 짜는 동안 전제가 무너진다. 그러니 작게 시작해 크게 바꿔야 한다.
케이뱅크는 실제 사례를 보여줬다. 얼굴인식 기술로 금융사기 한 건을 잡아낸 작은 성공이 40여 개 과제로 번졌고, 87억 원의 효과로 이어졌으며, 올해는 80개 과제로 확대됐다고 했다. 대단한 선언보다 강한 것은 작은 실행이다. 생각만 하지 말고 실행하라는 김 팀장의 말이 오래 남는 이유다.
여기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토큰포스트는 이번 행사를 공동 주관한 미디어다. 그러나 무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곧 우리가 그 무대의 교훈을 체화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축사에서 결국 기술을 현실로 구현하는 사람이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인맥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사례를 들며, 자신의 문제를 기술로 풀려는 문제의식이야말로 AI 시대의 중요한 자세라고 했다.
그 말은 청중석을 향한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리 미디어를 향한 말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를 더 잘 ‘활용’하는 법이 아니다. AI를 전제로 우리의 일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취재, 편집, 번역, 개발, 디자인, 데이터 분석, 유통, 독자 응대의 어느 단계에서 AI가 동료로 일할 것인가. 어떤 판단은 사람이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하는가. 초개인화된 콘텐츠를 감당 가능한 비용으로 어떻게 독자 한 사람에게 닿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거창한 선언문이 아니다. 다음 주에 완성할 작은 성공 하나여야 한다. 편집국의 한 업무를 바꾸고, 독자의 한 불편을 줄이고, 기자의 한 시간을 되돌려주는 일.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Already Happened.’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남은 것은 준비가 아니라 실행이다. AI를 도구로만 보는 회사는 도구를 바꾸는 데 그칠 것이다. AI를 전제로 삼는 회사는 조직을 바꿀 것이다.
도구를 바꾸는 회사는 많다. 문화를 바꾸는 회사는 드물다. AI 시대의 승부는 모델을 누가 먼저 샀느냐가 아니라, 조직을 누가 먼저 다시 만들었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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