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열풍 속 클린테크 투자 반등…그린 철강·전기차·핵융합에 자금 쏠림

| 유서연 기자

AI가 스타트업 투자 시장의 중심에 선 가운데서도 ‘클린테크’ 투자는 예상보다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전력 수요 급증, 전기차 보급 확대, 핵융합 기술 진전이 맞물리면서 관련 자금 유입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이다.

크런치베이스 집계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클린테크, 전기차, 지속가능성 분야 스타트업의 시드부터 성장단계 투자금은 총 150억달러로 집계됐다. 원화로는 약 22조9740억원 규모다. 이는 최근 수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었던 2025년 연간 투자액을 소폭 웃돌 가능성을 시사한다.

분기 기준으로도 회복세가 확인된다. 올해 2분기 클린테크 및 연관 분야 투자금은 약 80억달러, 원화 약 12조2528억원으로 2024년 이후 가장 높은 분기 실적을 기록했다. 다만 이런 반등에도 불구하고 2021~2022년의 정점과 비교하면 아직 한참 낮은 수준이다. 전체 벤처투자가 AI 붐에 힘입어 더 빠르게 커진 탓에, 전체 투자에서 클린테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해석된다.

대형 자금은 ‘그린 철강’·전기차·핵융합에 집중

올해 대규모 자금은 특정 세부 분야에 뚜렷하게 몰렸다. 가장 큰 투자를 받은 곳은 스웨덴 스톡홀름의 친환경 철강업체 스테그라다. 이 회사는 발렌베리 인베스트먼트가 주도한 투자 라운드에서 16억달러, 약 2조4506억원을 확보했다. 조달 자금은 대형 철강 공장 건설 마무리에 투입될 예정이다.

그다음은 제프 베이조스의 지원을 받는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슬레이트 오토였다. 미시간주 트로이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지난 4월 시리즈C 라운드에서 6억5000만달러, 약 9955억원을 유치했다. 대표 모델은 약 2만5000달러부터 시작하는 전기 픽업트럭으로, SUV로 전환 가능한 구조를 내세워 시장의 관심을 끌고 있다. 첫 차량 인도는 올해 후반으로 예정돼 있다.

3위와 4위는 모두 핵융합 기업이 차지했다. 헬리온 에너지는 6월 시리즈G 투자에서 4억6500만달러, 약 7122억원을 조달했다. 이 라운드는 스라이브 캐피털이 주도했으며, 투자 후 기업가치는 155억달러로 평가됐다. 헬리온 에너지는 해당 자금을 핵융합 발전소 건설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샌프란시스코 기반 스타트업 이너시아는 시리즈A 라운드에서 4억5000만달러, 약 6892억원을 유치했다.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가 투자를 이끌었으며,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핵융합 기술 성과를 바탕으로 설립된 기업이다. 회사는 향후 전력망급 에너지 생산을 목표로 세계 최대 수준의 레이저 시스템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성장 산업인데 투자 비중은 여전히 낮다

표면적으로 보면 클린테크 투자 규모는 적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 산업의 구조적 성장성을 감안하면 시장이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전력 구성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비중이 50%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한다. 동시에 남은 10년 동안 글로벌 전력 수요는 연평균 3.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 확산과 산업 전환, 데이터센터 확대가 이런 수요를 밀어 올리는 핵심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AI 확산은 클린테크 투자 논리와도 연결된다. AI 서비스 확대에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안정적이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청정 전력원 확보가 산업 전반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결국 AI가 벤처자금을 흡수하고 있지만,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클린테크 수요를 키우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상장 사례도 늘어…투자자 기대는 유지

벤처 투자자에게 긍정적인 신호는 회수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나스닥에 상장한 대표 사례는 지열 에너지 기업 페르보 에너지다. 이 회사는 5월 기업공개를 통해 19억달러, 약 2조9100억원을 조달했고, 최근 시가총액은 약 86억달러 수준으로 평가됐다.

원자력 분야에서도 소형모듈원자로 개발사 엑스에너지가 4월 나스닥 상장으로 10억달러, 약 1조5316억원을 확보했다. 최근 기업가치는 50억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으로 전해졌다. 클린테크 기업들이 실제 상장과 자금 회수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초기 투자자들의 기대를 지탱하는 요인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클린테크 투자는 AI에 가려 존재감이 약해졌지만, 시장 자체가 식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력 수요 확대와 전기차 전환, 핵융합과 원자력 기술 진전이 이어지는 만큼 관련 자금도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향후 관건은 커지는 에너지 수요가 실제 스타트업 투자 확대로 얼마나 연결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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