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기사에 미국의 전설적 가치투자자 제레미 그랜섬이 “비트코인이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필자의 시각에서 볼 때, 일면 수긍할 대목도 있으나 급변하는 디지털 중심 세계의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주장으로 보인다.
금과 비트코인
“금은 왜 가치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직관적 답은 아직도 “쓸모가 있으니까”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 자산시장과 통화체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금의 가치는 산업적 쓰임새보다 훨씬 더 큰 차원에서 설명된다. 전자부품·치과·장신구 등에 금을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여러 산업에서는 금을 대체하는 금속과 소재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최종 가치 저장 수단”으로 선택해 온 것은 여전히 금이다.
결국 금의 본질은 “쓸모”가 아니라 “역사가 만든 가치 저장 수단에 대한 합의”에 가깝다.
인류는 수천 년에 걸쳐 금을 부와 권력의 상징으로 사용해 왔고, 그 과정에서 금은 왕조와 국가, 중앙은행의 재무제표 속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중앙은행 준비자산, 국제 결제의 기준, 금융위기 때마다 찾게 되는 안전자산이라는 지위는 이처럼 긴 시간과 제도화의 결과다.
금은 “가치 저장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동시에 “그래서 금이 가치가 있다”는 역설을 내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바뀐다.
“디지털 세계에도 금과 같은 가치 저장 수단이 필요한가.”
물리적 금은 여전히 의미가 있지만, 자산과 경제 활동이 점점 소프트웨어·데이터·토큰으로 옮겨가는 현실을 고려하면, 국경과 은행망에 덜 의존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가치 저장 수단에 대한 수요는 구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자리를 잡았고, 현재 그 가치와 영속성에 대한 논쟁의 중심에 올라서 있다.
비트코인이 금과 닮은 점은 분명하다.
총발행량 2,100만 개로 공급이 완전히 고정되어 있고, 누구도 임의로 발행량을 늘릴 수 없다. 프로토콜과 네트워크가 유지되는 한 희소성은 코드 차원에서 보장된다.
블록체인은 모든 단위의 진위와 이동 경로를 투명하게 기록하며, 위조와 이중지불을 방지한다. 물리적 감정과 순도 검사가 필요한 금과 달리, 비트코인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검증할 수 있다.
휴대성과 분할성에서도 비트코인은 금을 압도한다.
금을 물리적으로 옮기려면 운송·보관·보안 비용이 뒤따르지만, 비트코인은 인터넷 접속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든 몇 분 안에 고액을 전송할 수 있다.
금을 미세한 단위로 나누기는 어렵지만, 비트코인은 소수점 8자리까지 쪼개어 저장하고 교환할 수 있다. “희소한 가치 저장 수단”이라는 순수한 기능만 놓고 보자면, 비트코인이 금보다 ‘금의 역할’을 더 잘 수행한다는 주장에도 일정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가치 저장 수단과 안전자산을 동일시하는 순간 논의는 약간 복잡해진다.
금은 위기 때마다 자본이 몰려드는 전통적 안전자산이다.
지정학적 충돌이나 금융 불안이 고조되면 금값이 오르는 패턴은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 왔다.
반면 비트코인은 아직 이런 ‘위기 시 행동 패턴’을 획득하지 못했다. 여러 차례의 리스크 이벤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오히려 위험자산과 함께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고, 변동성은 금보다 몇 배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차이는 “시간의 길이”다.
금은 수천 년이라는 시간 위에서 축적된 신뢰를 바탕으로 중앙은행과 국제통화체계에 깊이 뿌리내렸다.
이에 비해 비트코인의 역사는 고작 15년 남짓이다.
물론 이 짧은 기간 동안 비트코인은 단순한 실험을 넘어, 국가 채택·현물 ETF·기관 포트폴리오 편입 등 적지 않은 제도적 이력을 쌓았다.
하지만 “역사가 만든 합의”라는 기준으로 보면, 아직은 검증의 초입에 서 있다고 보는 편이 정직하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까.
첫째, 디지털 환경에서 가치 저장 자산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비트코인은 그 역할의 유력한 후보라는 점에는 이견이 크지 않다. 희소성과 검열 저항성, 이동성과 분할성이라는 측면에서 비트코인이 가진 설계상의 강점은 분명하다.
둘째, 이미 상당한 네트워크 효과와 브랜드, 해시 파워를 축적한 만큼, 다른 후발 코인이 단기간에 비트코인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금이 역사적 관성으로 자리를 지켜 왔듯, 디지털 희소 자산의 세계에서도 비트코인은 당분간 중심축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비트코인은 디지털 세계에서 반드시 가치 저장 수단이 될 것”, “또 다른 디지털 금이 나타나더라도 비트코인은 대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우리가 금에 적용한 바로 그 잣대를 비트코인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유보해야 할 것이다.
금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산업적 유용성보다 긴 역사와 제도적 편입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비트코인 역시 최소한 수십 년에 걸친 시간의 검증을 통과해야만, 금과 유사한 수준의 ‘역사가 인정한 디지털 금’이라는 지위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산업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 오늘의 세상에서는, 그 첫 번째 이정표를 확인하는 데 수천 년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 10~20년 동안 비트코인이 여러 차례 위기를 지나면서, 위기 발생 시 인류가 실제로 비트코인을 가치 저장 수단으로 매수하는 행동 패턴을 보여 준다면, 적어도 ‘디지털 시대가 부여한 신뢰’라는 표현은 공정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10~20년이라는 시간축에서야 비로소, 금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부여한 신뢰”라는 언어를 비트코인에게 공정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에 가까운 필자의 입장에서는 “디지털 가치 저장 자산 클래스가 형성된다면 그 중심에 비트코인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충분히 정당화 가능한 신념이다.
다만 시장과 규제, 기술과 세대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반드시”와 “대체 불가”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축적된 네트워크 효과와 신뢰를 감안하면, 전혀 다른 디지털 금이 새로 나타나 비트코인을 완전히 대체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적으로 그보다 더 어려운 길일 것이다.
금이 그랬듯, 결국 최종 판결은 시간이 내릴 것이다.
우리는 그 과정의 초입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치 저장 실험을 목격하고 있을 뿐이다.
신근영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 초대회장)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