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GPU 공급 부족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휴 자원의 비효율을 해소할 대안으로 분산형 GPU 마켓플레이스 ‘Dispersed’가 주목받고 있다. 메사리 리서치(Messari Research)의 에릭 마누키안(Eric Manoukian)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Render Network 생태계 내 AI 컴퓨트 서브넷인 Dispersed가 전 세계에 흩어진 GPU를 온디맨드 방식으로 연결해 AI와 범용 컴퓨트 수요를 흡수하는 구조를 갖췄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RENDER’ 토큰 기반 정산과 소각 메커니즘, 그리고 기존 하이퍼스케일러가 풀지 못한 공급·수요 불일치를 겨냥한 점에 주목했다.
메사리 리서치에 따르면 AI 붐은 GPU 시장의 구조적 긴장을 더욱 키우고 있다. 고성능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가속 컴퓨트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조차 이를 적시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2026년 아마존웹서비스(AWS)는 H200 인스턴스 예약 가격을 인상하며 장기간 이어진 클라우드 비용 하락 흐름을 되돌렸다. 반면 기업이 보유한 GPU의 평균 활용률은 약 5%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일부 기업과 데이터센터, 렌더링 스튜디오, 개인 워크스테이션에는 GPU가 남아돌고 있지만, 이를 필요로 하는 개발자와 연구자, 기업과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시장은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메사리 리서치(Messari Research)가 조명한 Dispersed는 Render Network Foundation이 거버넌스 제안 RNP-019와 RNP-021 승인 이후 2025년 12월 12일 공식 발표한 플랫폼이다. Dispersed는 Render Network 생태계 안에서 머신러닝, AI 추론, 범용 GPU 컴퓨트에 특화된 서브넷으로 운영된다. 기존 Render Network가 3D 그래픽과 모션 그래픽 렌더링을 담당한다면, Dispersed는 AI 경제의 핵심 자원인 GPU 컴퓨트를 보다 폭넓은 산업 수요에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구조는 비교적 명확하다. 한 축에는 유휴 GPU를 등록하는 노드 운영자가 있고, 다른 한 축에는 작업을 의뢰하는 서비스 소비자가 있다. 노드 운영자는 GPU가 장착된 머신에서 Dispersed 클라이언트 ‘disNet’을 실행해 네트워크에 참여하며, 서비스 소비자는 필요한 GPU 사양과 메모리, 스토리지, Docker 이미지, 실행 파라미터를 입력해 작업을 제출한다. 이후 네트워크는 조건에 맞는 노드와 작업을 매칭하고, 해당 워크로드는 격리된 Docker 컨테이너 안에서 처리된다. 이 방식은 서로 다른 지역과 환경에 흩어진 GPU를 하나의 컴퓨트 시장처럼 작동하게 한다.
보상 체계 역시 플랫폼 설계의 핵심이다. 노드 운영자는 완료한 작업량과 가용성에 따라 렌더(RENDER) 토큰을 받는다. 주간 단위 에포크를 기준으로 가용성, 작업 실행, 준비 시간에 대해 각각 보상이 주어지며, GPU 성능이 높고 업타임이 안정적일수록 수익은 커진다. 가용성 보상은 100% 업타임 기준 주당 최대 6 렌더(RENDER)로 제시된다. 반대로 서비스 소비자는 대체로 법정화폐로 비용을 지불하고, 이 자금은 계정 크레딧으로 적립된다. 작업이 완료되면 해당 크레딧은 시점별 환율에 따라 렌더(RENDER)로 전환되며, 이 가운데 5%는 기술 서비스 제공업체 OTOY에 지급되고 95%는 소각된다. 보고서는 이를 ‘직접적인 가치 축적 메커니즘’으로 평가했다.
Dispersed의 의미는 단순한 자원 공유를 넘어선다. 기존 중앙화 클라우드 사업자들은 고정비와 지역 편중, 벤더 종속, 높은 사용료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 Dispersed는 작업 실행 시간 단위로 세분화된 과금 모델을 통해 소규모 사용자도 고성능 GPU에 접근할 수 있게 설계됐다. 독립 아티스트, 스타트업, 연구기관, 비영리단체처럼 대형 클라우드와 장기 계약을 맺기 어려운 수요자에게는 특히 매력적일 수 있다. 이는 AI 인프라 시장에서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초기 활용 사례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3D 아티스트 MHX는 비트코인(BTC) 블록 데이터를 활용해 생성형 아트를 제작하는 프로젝트 ‘Bitmap’에 Dispersed를 적용했다. 이 프로젝트는 블록 하나를 4K 조형물로 변환하는 데 고사양 로컬 워크스테이션 기준 약 35시간이 걸렸지만, Dispersed를 활용한 뒤 처리 시간이 15분 수준으로 단축됐다. 비용도 작품당 몇 센트 수준으로 낮아져, 전통적 클라우드 대비 95% 이상 절감됐다는 설명이다. 이는 GPU 컴퓨트가 단순한 서버 자원이 아니라 창작 생산성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임을 보여준다.
AI 에이전트 분야에서도 적용 가능성은 분명하다. Sarson Funds와 Manifest Network는 RenderCon 2026에서 질의 발생 시마다 Dispersed를 통해 GPU 자원을 동적으로 조달하는 구조를 시연했다. 예컨대 하나의 AI 비서 작업을 임베딩, 맥락 정리, 추론으로 쪼개 서로 다른 GPU 등급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가벼운 연산은 저렴한 GPU에서 처리하고, 무거운 추론은 상위 GPU로 넘김으로써 비용 효율과 성능을 동시에 확보하는 구조다. 이 사례는 AI 에이전트가 더 이상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컴퓨트를 구매하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학 연구 영역에서도 실질적 효용이 관찰됐다. evidence.guide는 수많은 과학 논문을 읽고 재현 가능성을 예측하는 AI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면서 Dispersed를 활용했다. 논문 구조화, 표 추출, 자동화된 동료 심사, 통계 검증, 점수화 모델 실행 등 다층적 연산이 필요한 만큼 비용 부담이 큰 작업이지만, 분산형 GPU 자원을 병렬 활용해 전통적 하이퍼스케일러보다 낮은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보고서의 설명이다. 이는 AI 인프라의 민주화가 산업뿐 아니라 학술 연구 생산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 데이터 인프라 분야의 사례도 눈에 띈다. Omniscient는 이메일, 메모, 문서, 음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지속형 맥락을 구축하는 AI 메모리 레이어를 개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Dispersed와 Manifest Network 등 조합 가능한 탈중앙화 인프라를 활용하고 있다. 중앙화 사업자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데이터 통제권과 워크로드 이식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경쟁력으로 언급된다. 이는 향후 개인형 AI 서비스가 ‘모델’보다 ‘맥락’과 ‘데이터 주권’을 중심으로 경쟁할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다만 리스크도 적지 않다. 우선 충분한 GPU 공급이 확보되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수요자가 필요할 때 적절한 노드를 배정받지 못하면 결국 더 비싸더라도 안정적인 중앙화 클라우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둘째는 시장 리스크다. 현재 AI 인프라 수요가 과도한 기대에 기반한 거품일 경우, 향후 GPU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 셋째는 실행 리스크다. Dispersed가 중앙화 클라우드뿐 아니라 다른 탈중앙화 GPU 네트워크와 경쟁해야 하는 만큼, 가격·안정성·사용성 모두에서 차별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메사리 리서치(Messari Research)의 이번 보고서는 Dispersed가 AI 시대의 병목인 GPU 수급 문제를 풀 수 있는 유력한 실험 중 하나라고 평가한다. 핵심은 공급이 아니라 ‘연결’에 있다는 진단이다. 하이퍼스케일러가 감당하지 못하는 수요 증가와 세계 곳곳에 방치된 유휴 GPU 사이를 RENDER 토큰 경제로 이어붙이겠다는 구상이다. 향후 Dispersed가 파일럿 단계를 넘어 대규모 엔터프라이즈 수요까지 흡수할 수 있을지는 네트워크의 공급 깊이와 안정적 매칭 능력에 달려 있지만, 적어도 AI 컴퓨트 시장에 새로운 가격 기준과 접근 방식을 제시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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