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분석] 전쟁과 순환매가 동시에 덮쳤다…AI 반도체 랠리는 끝났나

| 알파리포트

이번 주 시장에서 가장 심하게 얻어맞은 것은 이란과 반도체였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확대하고 이란도 주변국과 에너지 수송로를 위협하면서, 몇 주간 이어지던 휴전 기대는 빠르게 무너졌다. 시장은 ‘총성이 잠시 멈춘 상태’를 평화로 해석했지만, 이번 주에는 휴전과 종전이 전혀 다른 말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국제유가는 중동 지역의 원유 수송 차질 우려로 급등했다.

지정학적 충격은 하필 AI 반도체주가 과열을 식히던 시점에 찾아왔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6월 고점 대비 20% 이상 떨어져 약세장에 진입했고, 엔비디아와 마이크론을 비롯한 주요 AI 관련주도 큰 폭으로 밀렸다. 한국과 대만, 일본의 반도체주 역시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문제는 단순히 전쟁이 아니다. 시장 안에서는 이미 거대한 순환매가 시작되고 있었다. 지난 1년간 모든 자금을 빨아들였던 AI 하드웨어에서 돈이 빠져나와 금융·에너지·헬스케어와 상대적으로 덜 오른 종목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금 투자자들이 판단해야 할 것은 하나다.

AI 산업이 끝난 것인가. 아니면 AI 주식이 너무 많이 올라 잠시 무너지고 있는 것인가.

둘은 전혀 다른 문제다.

⬛ 또 하나의 ‘딥시크 순간’

이번 반도체 급락을 부추긴 재료 중 하나는 중국 Z.ai가 공개한 새로운 오픈소스 모델 GLM-5.2였다.

GLM-5.2는 최대 100만 토큰의 긴 문맥을 처리할 수 있고, AI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연산 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능이 좋은 모델을 더 싸게 사용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에서는 지난해 딥시크 등장 당시와 비슷한 질문이 다시 나왔다.

“소프트웨어가 효율적으로 바뀌면 그렇게 많은 GPU와 메모리 반도체가 필요하지 않은 것 아닌가.”

일견 타당한 주장이다.

지금 빅테크들이 계획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투자가 실제 필요량보다 많다면, 더 효율적인 AI 모델의 등장은 하드웨어 기업에 악재가 된다. 같은 일을 훨씬 적은 컴퓨팅 자원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서버와 전력설비의 수요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GLM-5.2가 이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100만 토큰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거대 모델은 컴퓨팅 자원이 필요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강력한 AI를 더 낮은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증거에 가깝다.

여기서 ‘제번스의 역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 효율적으로 바뀌면 자원 사용량이 줄 것 같지만, 가격이 싸지면서 이용자가 늘고 새로운 용도가 생겨 전체 소비량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자동차의 연비가 좋아졌다고 사람들이 자동차를 덜 탄 것은 아니다. 인터넷 통신비가 낮아졌다고 데이터 사용량이 줄지도 않았다.

AI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모델을 작동시키는 비용이 절반으로 줄면 기업이 AI 예산을 절반으로 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객 상담과 소프트웨어 개발, 광고 제작, 연구, 금융 분석 등 더 많은 업무에 AI를 붙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의 챗봇만 쓰던 기업이 수백 개의 AI 에이전트를 돌리기 시작할 수도 있다.

효율은 비용을 줄이지만, 동시에 없던 수요를 만든다.

딥시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AI 반도체 투자가 끝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는 오히려 더 커졌다. 이번에도 단지 저렴한 중국 모델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의 종료를 선언하기는 이르다.

⬛ 한국 증시가 더 크게 흔들린 이유

한국 시장의 충격이 특히 컸던 것은 AI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와 레버리지가 동시에 높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두 종목이 함께 오르면 지수가 빠르게 상승하지만, 반대로 함께 무너지면 시장 전체가 버티기 어렵다.

여기에 개인 투자자들의 신용거래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대규모로 쌓였다. 해외 시장에서는 이번 급락 과정에서 국내 레버리지 계좌 약 120만개에 추가 담보 요구가 발생했고, 약 35만개가 강제 청산된 것으로 추산했다. 계좌 수와 투자자 수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한국 증시의 상승이 얼마나 많은 빚을 동반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다.

레버리지가 많은 시장은 질서 있게 떨어지지 않는다.

주가가 하락하면 담보가 부족해진 투자자는 현금을 추가로 넣거나 주식을 팔아야 한다. 대응하지 못하면 증권사가 강제로 처분한다. 이때 기업의 실적이나 장기 전망은 중요하지 않다.

마진콜은 “다음 분기 HBM 수요가 좋은가”를 묻지 않는다.

오늘 담보가 부족하면 오늘 판다.

이런 강제 매도가 주가를 더 떨어뜨리고, 추가 하락이 다시 다른 계좌의 마진콜을 부른다. 한국에서 시작된 매도 압력은 일본과 대만의 반도체주, 미국의 AI 하드웨어 종목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좋은 기업도 레버리지 청산 국면에서는 함께 팔린다. 주가 하락이 새로운 매도를 만드는 순간, 시장 가격은 기업가치보다 자금 사정에 의해 움직인다.

⬛ 차트는 무너졌지만 주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재 AI 반도체주의 주가 흐름이 훼손된 것은 분명하다.

반도체지수가 약세장에 들어갔고, 주도주들이 주요 지지선을 잇달아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이 좋으니 곧 반등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주도주가 한 번 무너지면 투자자의 신뢰와 수급이 회복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렇다고 주가 하락을 AI 수요의 붕괴로 곧바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는 2분기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하고 올해 매출 전망을 높였다. 회사는 AI 반도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생산시설에 1000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반도체 장비업체 ASML도 AI용 첨단 반도체 수요를 근거로 올해 매출 전망을 다시 높였다. 극자외선 노광장비 주문이 2028년까지 이어지자 생산 능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아이러니하게도 시장은 이런 좋은 실적에도 주식을 팔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 실적이 나쁜 것이 아니라 시장의 기대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이미 완벽한 성장을 주가에 반영한 종목은 ‘좋은 실적’만으로는 오르지 못한다. 예상보다 훨씬 좋아야 한다.

TSMC의 실적은 AI 수요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TSMC 주가가 당장 다시 올라야 한다는 증거는 아니다.

사업이 좋아지는 것과 주식이 오르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 낮은 주가수익비율의 함정

반도체주가 급락하자 “주가수익비율(PER)이 낮아졌으니 싸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주는 다른 성장주보다 PER이 낮아 보인다. 그러나 경기민감주에서 낮은 PER은 반드시 매수 신호가 아니다.

메모리 가격이 오르고 기업의 이익이 급증하면 분모인 순이익이 커진다. 그 결과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도 PER은 낮아 보일 수 있다. 문제는 그 이익이 정점이라면 다음 해부터 분모가 빠르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반도체 경기의 꼭대기에서는 주식이 가장 싸 보이고, 바닥에서는 가장 비싸 보이는 일이 흔하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현재 PER 숫자가 아니다.

지금의 이익이 정점인지, 아니면 AI와 HBM 수요로 이번 상승 사이클이 더 길어지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번 사이클에는 과거와 다른 요인도 있다. AI 가속기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이 빠르게 늘고 있고, 첨단 HBM 생산에는 일반 메모리보다 더 많은 공정과 생산 능력이 필요하다. 빅테크들은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장기계약을 확대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이어진다면 이번 메모리 사이클은 과거보다 길어질 수 있다.

반대로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둔화하거나 중국 업체들이 공급을 빠르게 늘리면, 이익 전망은 예상보다 일찍 꺾일 수 있다.

결국 “PER이 낮으니 무조건 싸다”도 틀리고, “반도체는 경기민감주이니 이미 정점이다”도 성급하다.

답은 실적 전망과 주문, 재고, 생산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 AI가 좋아질수록 반도체가 덜 필요할까

AI 효율화 논쟁에는 빠진 부분이 하나 있다.

AI가 싸지는 것과 AI의 가치가 커지는 것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

과거 AI 모델은 간단한 이메일이나 요약문을 작성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 모델은 복잡한 코딩과 문서 분석, 데이터 정리, 반복 업무까지 상당 부분 처리한다.

어떤 업무를 사람이 10시간 걸려 하던 것을 AI가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면 기업은 단순히 비용을 절약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더 많은 업무를 AI에 맡기고, 더 비싼 요금제를 선택하고, 더 많은 직원을 사용자로 등록한다.

AI가 효율적으로 변할수록 토큰 한 개의 가격은 내려간다. 그러나 이용자와 작업량이 더 빠르게 늘면 전체 컴퓨팅 수요는 계속 커질 수 있다.

현재 시장은 이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하나는 “AI 효율화가 하드웨어 과잉투자를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른 하나는 “AI 효율화가 이용을 폭발적으로 늘려 더 많은 인프라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 어느 쪽이 최종적으로 승리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새로운 모델 하나가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조원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가 갑자기 불필요해졌다고 결론 내릴 근거도 없다.

⬛ 자금은 AI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움직인다

이번 주 시장에서 나타난 흐름은 AI 산업의 종말보다는 순환매에 가깝다.

AI 반도체와 고평가 기술주에서 빠진 돈 일부는 금융·에너지·운송·헬스케어 등 상대적으로 덜 오른 업종으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는 새로운 성장 테마도 등장했다. 일라이릴리는 환각 성분을 활용한 정신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는 아타이베클리를 선지급금 28억달러, 조건부 대금까지 최대 38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대형 제약사가 사이키델릭 치료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는 시장에서 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몰렸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상승장의 후반부에는 자금이 주도주만 쫓지만, 변동성이 커지면 투자자는 실적이 안정적이거나 가격 부담이 적은 종목을 찾는다. 같은 기술주 안에서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결제, 플랫폼으로 관심이 옮겨갈 수 있다.

AI가 끝난 것이 아니라 ‘무조건 반도체’였던 시장의 공식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세 가지

첫째, 산업 전망과 주가 흐름을 분리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계속된다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바로 반등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고 AI 수요가 사라진 것도 아니다.

둘째, PER보다 이익 전망의 방향을 봐야 한다.

현재 이익이 정점인지, HBM 가격과 주문이 계속 늘어나는지, 고객의 투자 계획이 유지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낮은 PER만 보고 매수하면 경기민감주의 가장 오래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셋째, 레버리지가 빠지는 시장과 싸우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 좋더라도 강제 청산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주가가 예상보다 훨씬 더 떨어질 수 있다. 현금 투자자는 기다릴 수 있지만, 빚을 낸 투자자에게는 기다릴 권리가 없다.

급락했다고 곧바로 저가라고 단정하기보다 거래량과 변동성이 안정되고, 외국인 수급과 기술적 흐름이 회복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 디지털자산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반도체 급락은 디지털자산 투자자에게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레버리지가 쌓인 시장에서 작은 악재가 발생하면 가격 하락이 청산을 부르고, 청산이 다시 가격을 끌어내린다. 주식과 선물, 디지털자산을 동시에 보유한 투자자는 한 시장에서 발생한 손실을 막기 위해 다른 자산까지 팔 수 있다.

전쟁으로 유가와 물가 불안이 커지면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지고, 위험자산 전체가 압박받는다. AI 주식과 비트코인이 서로 다른 자산처럼 보여도 글로벌 유동성이 줄어드는 순간 함께 팔릴 수 있다.

이번 주 시장이 보여준 것은 AI의 실패가 아니다.

전쟁과 고평가, 레버리지와 순환매가 겹치면 좋은 기업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AI 인프라 투자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AI 관련주가 쉬지 않고 계속 오르리라는 믿음은 깨졌다.

AI 산업의 성장은 계속될 수 있다. 동시에 AI 주식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지금 시장에서는 이 두 문장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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