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만평] AI 시대의 멸종위기종, 호모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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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어느 동물원. 유리벽 안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나무가 우거진 공원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모두 증강현실(AR) 안경을 쓰고 있다. 누군가는 가상의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고, 누군가는 쇼핑을 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동물원 입구에는 '실리콘밸리 동물원(Silicon Valley Zoo)'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유리벽 밖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그 광경을 구경한다. 어른 로봇은 어린 로봇에게 인간의 생태를 설명한다.

전시관 안내판에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기본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으며, 가상세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종(種). 인간이 동물원의 전시물이 된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다룬 세계적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는 최근 "우리는 미래의 소들이다(We are the cows of the future)"라고 경고했다. 소가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인간의 금융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듯, 미래의 인간 역시 인공지능(AI)이 운영하는 금융과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통제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우려한 미래가 만평 속 인간 동물원과 묘하게 겹쳐진다.

이 가상의 미래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은 생산과 노동을 담당하고, 국가는 보편적 기본소득(UBI)을 지급한다. 굶주릴 걱정도, 직장을 잃을 두려움도 없다. 공원 안 커피숍에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로 결제한다. 증강현실은 누구에게나 원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여행하지 않아도 세계를 볼 수 있고,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꿈꿔온 유토피아, 풍요로운 세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유리벽 안의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누구도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과거 동물원은 야생동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자유를 빼앗았다. 먹이를 제공하고 질병을 치료하며 안전한 환경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우리도 초원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생존이 보장된다고 해서 존엄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즐거움이 넘친다고 해서 삶에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물론 기본소득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기술 발전의 성과를 사회가 나누고 인간을 생존의 압박에서 해방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노동에서 벗어난 시간이 창조와 탐구, 공동체를 위한 활동으로 이어진다면 인간의 가능성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인간이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와 인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회는 전혀 다르다.

인공지능이 생산을 독점하고 소수의 권력이 분배를 결정하며 인간에게는 소비와 오락만 남는다면 어떻게 될까. 기본소득은 자유의 토대가 아니라 의존의 수단이 될 수 있다. CBDC를 비롯한 디지털 결제 기술 역시 설계와 운영 방식에 따라 편리한 수단이 될 수도, 개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자유를 포기하는 과정은 기술의 지배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될 수 있다.

오늘날 세계에는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 엘니뇨를 비롯한 기후변동과 자연재해, 경제위기와 실업에 대한 불안이 끊이지 않는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는 세상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위험한 곳인지를 일깨운다. 위협은 거대하지만 개인이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두려움이 반복되고 미래에 대한 통제감을 잃어갈수록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노력조차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부정적 경험이 반복되면서 스스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잃는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부른다. 위험에 대한 경고가 곧바로 무기력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협은 끊임없이 제시되는데 이를 극복할 방법과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면 불안은 무력감으로, 무력감은 체념과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보다 안전이, 선택보다 보장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누군가 생계를 보장하고, 안전을 책임지며, 무엇을 보고 무엇을 소비할지까지 대신 결정해 준다면 사람들은 이를 억압이 아니라 구원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자유가 요구하는 불확실성과 책임보다 보장된 안락함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더 두려운 것은 인간이 자유를 빼앗기는 순간이 아니라, 두려움과 절망 끝에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철창 없는 동물원이 만들어질 수 있다.

충분한 음식과 편안한 주거, 끝없는 오락과 가상의 쾌락이 주어진다면 사람은 굳이 현실을 바꾸려 하지 않을 수 있다. 실패할 필요도, 경쟁할 이유도, 어려운 선택에 따르는 책임도 없는 삶. 모든 것이 제공되는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배고픔과 질병, 전쟁과 억압을 극복하며 발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단순히 생존하는 존재를 넘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도전하며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왔다. 자유는 언제나 불확실성과 책임을 동반했지만, 바로 그 과정에서 인간의 문명도 발전했다.

그런데 기술이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하고 인간에게 소비와 즐거움만 남겨준다면 그것을 과연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라리가 경고한 미래의 소와 만평 속 인간의 처지는 닮아 있다. 소는 자신을 지배하는 경제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래의 인간 역시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알고리즘과 제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 결과만 받아들이게 될 수 있다. 그 시스템이 제공하는 편리함이 클수록 인간은 그것을 의심할 이유조차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인간이 그 시스템을 이해하고, 통제하고, 필요하다면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유지하느냐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불편해하지 않는 세상이다.

기술의 발전이 곧 인간의 진보를 뜻하지는 않는다. 더 풍요로운 사회가 반드시 더 자유로운 사회인 것도 아니다. 인간의 존엄은 얼마나 많은 것을 제공받느냐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권을 얼마나 온전히 가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선택권이 사라지는 순간보다 인간이 선택권의 필요성 자체를 잊어버리는 순간이다. 스스로 판단하는 수고보다 알고리즘의 추천을, 도전의 불확실성보다 보장된 안락함을, 현실의 책임보다 가상의 만족을 택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인간은 점차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아닌 관객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만평 속 휴머노이드는 유리벽 안의 인간을 바라본다. 인간은 AR 안경 너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본다. 인간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고, 기계는 그런 인간을 관찰한다.

인간은 멸종하지 않았다. 여전히 먹고, 소비하고, 웃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풍요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이유마저 사라진다면, 우리는 과연 그것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인류가 마지막으로 잃어버릴 것은 어쩌면 자유보다 더 근본적인 것일지 모른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존엄성이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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