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디지털 달러를 새로운 금융질서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미 통화감독청(OCC)은 지난 10월 21일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는 '지니어스법(GENIUS Act)'의 최종 시행 규정을 발표했다. 내년 1월 18일부터 관련 법률과 규정이 시행된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주로 사용되던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금융의 핵심 결제수단으로 진입할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미국의 전략은 분명하다. 달러 패권을 디지털 경제로 확장하고 국채의 새로운 수요 기반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지니어스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유통량에 상응하는 적격 준비자산을 보유하도록 규정했다. 단기 미국 국채가 주요 준비자산 중 하나다. 미국의 총연방부채가 40조 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은 국채 수요 확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이를 공개적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금융질서에는 달러 패권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숨어 있다. 돈을 발행하는 기업이 그 돈의 이동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2023년 테더는 미국의 제재 대상과 관련된 지갑을 동결하는 정책을 확대했다. 지니어스법 역시 발행사가 불법 거래를 차단하거나 동결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범죄자금과 테러자금을 막기 위한 정당한 조치다. 기존 은행에도 유사한 권한이 있다. 그러나 일부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계약을 통해 특정 지갑의 토큰 이동을 직접 제한할 수 있다. 금융 통제의 집행 방식이 달라지는 것이다.
문제는 동결 기능 자체가 아니다. 그 권한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누가 감시하며, 잘못 행사됐을 때 누가 책임지느냐다. 불법자금 차단과 합법적인 경제활동 제한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 디지털화폐가 개인의 소비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과장이다. 그렇다고 기술적으로 가능한 통제가 앞으로도 남용되지 않으리라고 믿을 근거도 없다.
한국 역시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발의된 법안에는 발행사의 자본금과 준비자산, 상환청구권에 관한 규정이 담겼다. 한국은행은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디지털화폐 기반 예금토큰을 실험하고 있다. 필요한 준비다. 그러나 논의가 은행과 핀테크 중 누가 발행할 것인지, 얼마나 많은 자본금을 확보할 것인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미국이 디지털 달러를 앞세워 글로벌 결제망을 확장하는 동안 한국은 원화의 경쟁력과 금융 주권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동시에 발행사나 규제당국이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요건을 법률로 명확히 정하고, 이용자의 이의제기권과 피해 구제 절차를 보장해야 한다. 디지털 금융의 신뢰는 발행사의 자본금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권력을 제한하고 책임을 묻는 제도에서 나온다.
화폐는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다. 개인이 노동의 대가를 보관하고, 타인과 거래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경제적 자유의 기반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자유를 보장하는 원칙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미국은 디지털 달러로 새로운 금융질서를 만들고 있다. 한국도 경쟁력 있는 금융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속도에 앞서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내 돈의 사용을 누가 멈출 수 있는가. 그 결정이 잘못됐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돈의 이동을 통제하는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가 없다면, 아무리 편리한 디지털화폐도 완전한 금융 혁신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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