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민 칼럼] 국민을 보호한다는 권력이 국민의 주인이 될 때

| 권성민

1944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국가가 국민의 삶을 더 잘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 결국 개인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재는 반드시 폭력과 억압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국민을 보호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의에서 출발한다.

80여 년이 지난 오늘, 이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에서도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규제가 만들어졌다. 악성 댓글을 막겠다며 도입한 인터넷 실명제는 2012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았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며 시행한 게임 셧다운제는 10년 만인 2022년 폐지됐다.

두 제도 모두 도입 당시에는 정부와 전문가들이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하나는 기본권 침해로 위헌 판정을 받았고, 다른 하나는 실효성 논란과 정책 환경의 변화 속에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 판단과 자유의 제한에 대해 누가 책임졌는가.

바로 여기에 국가 권력의 위험이 있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권한을 확대하지만, 그 결정이 잘못됐을 때 비용을 치르는 쪽은 대부분 국민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악성 댓글을 막기 위해 이용자들에게 본인확인을 요구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를 문제 삼았다. 불법정보를 의미 있게 줄였다는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게임 셧다운제 역시 마찬가지다. 16세 미만 청소년은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을 이용할 수 없었다. 청소년의 건강을 보호한다는 취지였지만, 국가가 가정과 개인의 생활시간까지 일률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적절한지 논란이 이어졌다.

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 정부가 국민보다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어떻게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제도로 바뀌는가 하는 문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구조다.

현대 국가의 정책은 정치인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관료와 학자, 연구기관과 각종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통계와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문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전문성이 곧 독립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부 정책을 평가해야 할 연구기관이 정부 예산에 의존하고, 전문가의 영향력이 정책 결정권자와의 관계에서 나온다면 불편한 사실을 지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정치인은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할 전문가를 찾고, 전문가는 정책에 참여하면서 영향력을 얻는다.

그 과정에서 정책의 실패 가능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보다 정책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목소리가 더 환영받기 쉽다.

전문가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원하는 답을 제공하는 순간, 전문성은 통제의 명분이 된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에서도 이러한 위험을 발견할 수 있다.

2020년 정부는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며 대출을 제한하고 세금을 높였으며 규제지역을 확대했다. 투기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의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규제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수요가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논란이 됐고, 집값 불안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물론 당시 집값 상승에는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주택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모든 책임을 규제에 돌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분명한 교훈이 있다. 수많은 개인의 선택으로 움직이는 시장을 정부가 몇 가지 정책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위험하다는 점이다.

정책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먼저 그 판단과 가정이 옳았는지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실패의 원인을 규제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만 해석하면 해법은 언제나 더 강한 규제로 귀결된다.

그렇게 정부의 권한은 커지지만,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은 흐려진다.

암호화폐 산업에서도 같은 문제를 볼 수 있다.

2021년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른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도가 본격 시행되면서 원화 거래를 제공하려는 거래소는 은행의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확보해야 했다. 당시 이 조건을 충족한 거래소는 네 곳뿐이었다.

자금세탁 방지와 이용자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결과 은행의 판단이 새로운 거래소의 원화시장 진입을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 됐다.

보호를 위한 규제가 기존 사업자에게 유리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규제의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그 수단과 결과까지 정당한 것은 아니다. 투자자를 보호하면서도 공정한 경쟁을 보장할 방법은 없는지,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고 시장의 집중을 심화시키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검증해야 한다.

하이에크가 『노예의 길』에서 지적한 문제도 여기에 닿아 있다.

사회의 모든 정보를 한곳에 모아 완벽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뛰어난 관료와 전문가라도 수많은 개인의 사정과 판단, 시장의 변화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문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지식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는 점이다.

잘못된 정책을 수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의 권한을 줄이는 결정은 훨씬 어렵다. 정책 실패가 오히려 추가 예산과 새로운 조직, 더 강한 규제를 요구하는 명분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권력 확대의 자기강화 구조다.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없다. 어느 정권이든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옳다고 확신할수록 국가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다.

과거 정부가 국민의 행동을 관리하려면 법과 행정조직, 사람의 개입이 필요했다. 이제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신원체계, 전자적 지급결제 기술을 통해 훨씬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이 기술들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범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제도적 견제 장치가 부족하면 개인의 행동을 감시하거나 특정 거래를 제한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어떤 행동을 금지하더라도 개인이 먼저 행동한 뒤 제재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기술과 제도의 설계에 따라 그 행동 자체가 처음부터 차단될 수도 있다.

그때도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편리함이 자유를 대신할 수는 없다. 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비트코인이 등장한 배경에도 중앙기관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 대신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블록체인은 특정 기관에 집중된 기록과 검증의 권한을 분산시키려는 기술적 시도다.

그렇다고 암호화폐 산업이 권력 남용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거래소와 플랫폼, 소수의 개발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 역시 경계해야 한다. 국가든 민간기업이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위험하다.

결국 문제는 정부가 크냐 작으냐에만 있지 않다. 권력이 자신의 판단을 의심할 수 있는가, 실패에 책임지는가, 국민이 그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에 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정한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마다 그 필요성과 효과를 입증해야 하며, 정책이 실패하면 책임지고 수정해야 한다.

규제를 만드는 능력보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는 능력이 중요하다. 전문가의 권위보다 그 판단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가 중요하다.

민주주의 역시 몇 년에 한 번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국가 권력이 국민의 자유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체제여야 한다.

우리는 좋은 지도자와 유능한 전문가를 원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는 그들의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유지될 수 없다. 지도자가 잘못 판단하고 전문가가 틀린 결론을 내리더라도 국민의 권리가 지켜지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선택권을 빼앗고, 그 결정이 잘못됐을 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보호가 아니라 지배다.

자유를 위협하는 권력은 처음부터 폭압적인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때로는 국민을 위한다는 가장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다가온다.

경계해야 할 것은 나쁜 정부의 악의만이 아니다. 좋은 정부를 자처하는 권력의 끝없는 자신감이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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