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산운용사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가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인 401(k) 상품에 은퇴 이후 평생 일정한 현금흐름을 받을 수 있는 연금 기능을 붙이기로 하면서, 미국 퇴직연금 시장이 수익성 중심에서 안정적인 소득 보장 중심으로 조금씩 무게를 옮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10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을 보면, 피델리티는 401(k) 플랜 안에서 운용되는 타깃데이트펀드, 즉 티디에프(TDF·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펀드)에 연금 기능을 결합한 새 상품을 내놓는다. 이름은 ‘프리덤 라이프타임’이다. 근로자가 적립한 401(k) 자금 일부를 활용해 보험사 연금 상품에 가입하면, 은퇴 뒤 매달 고정 금액을 받는 구조다. 미국 401(k)는 한국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과 비슷하게 가입자가 적립금을 직접 운용하고 성과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지는 제도다.
이런 변화는 은퇴자들의 고민이 예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적립 기간에는 높은 수익률이 중요하지만, 실제 은퇴 후에는 시장 변동과 무관하게 생활비를 꾸준히 확보하는 일이 더 절실해진다. 주식시장에 계속 투자하면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하락장에서는 자산이 줄어들 수 있다. 반면 연금 기능을 붙인 상품은 기대수익률이 다소 낮아질 수 있어도 손실 위험을 줄이고 예측 가능한 소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피델리티가 이런 수요 증가를 반영해 상품 구조를 바꾼 것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근로자가 401(k)에 자동 가입될 때 티디에프가 기본 투자 상품, 이른바 디폴트 옵션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티디에프는 미국 퇴직연금 시장의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피델리티의 새 상품은 뉴욕라이프와 네이션와이드의 연금 상품에 적립금 일부를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됐고, 해당 연금 상품의 연 수수료는 0.14~0.27% 수준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티디에프가 이미 널리 보급된 기본 틀인 만큼, 여기에 연금 기능이 얹히면 별도의 복잡한 가입 절차 없이 은퇴소득 보장 장치를 강화하려는 흐름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시장 전반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확인된다. 미국 1위 티디에프 운용사인 뱅가드 그룹은 2025년 12월 유사 상품 출시를 발표했고, 블랙록도 현재 8개 401(k) 플랜에서 연금 기능을 제공 중이며 추가로 8개 플랜 도입을 확정했다. 투자 컨설팅 업체 칼란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연금 결합형 티디에프를 제공하는 401(k) 플랜 비중은 전체의 4%다. 아직은 크지 않은 비율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상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확산 속도는 분명 빨라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고령화와 시장 변동성 확대가 이어지는 한, 미국 퇴직연금 시장에서 ‘얼마나 불릴 것인가’ 못지않게 ‘은퇴 후 얼마나 안정적으로 받을 것인가’를 따지는 방향으로 더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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