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항소법원이 시그니처뱅크(Signature Bank) 주주들의 증권사기 소송을 다시 열라고 판단했다. 파산 은행의 관리인이 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주주 청구권까지 자동으로 넘겨받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미 제2순회항소법원은 19일(현지시간) ‘Fonden v. FDIC’ 판결에서 뉴욕 동부연방지방법원의 기각 결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사건번호는 25-720이며, 1심은 2025년 3월 21일 FDIC 주장을 받아들여 소송을 기각한 바 있다.
소송을 낸 쪽은 스웨덴 공적연금 운용기관 AP7(Sjunde AP-Fonden)이다. AP7은 시그니처뱅크 전직 임원들과 외부감사인 KPMG LLP를 상대로 미 증권거래법 10(b)항과 SEC Rule 10b-5 위반을 주장했다.
원고 측은 시그니처뱅크의 유동성 위험과 리스크 관리 관련 공시가 투자자를 오도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은행의 암호화폐·블록체인 산업 노출과 예금 유출 위험이 제대로 설명됐는지가 쟁점으로 남아 있다.
FDIC는 시그니처뱅크의 관리인 자격으로 소송에 개입했다. FDIC는 금융기관개혁구제집행법(FIRREA)의 승계 조항에 따라 주주의 청구권도 자신에게 넘어왔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P7의 증권사기 청구가 시그니처뱅크나 FDIC를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전직 임원과 감사인을 상대로 한 청구라고 봤다.
FIRREA는 부실 금융기관 정리 과정에서 FDIC가 해당 기관의 권리와 자산을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한 법률이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 항소심은 그 승계 범위가 주주의 직접적인 증권사기 청구까지 포괄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결정은 시그니처뱅크 경영진이나 KPMG의 책임을 확정한 판결이 아니다. 기각 단계에서 누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따진 판단이며, 본안에서는 허위기재 여부와 손해, 인과관계가 다시 다뤄진다.
FDIC는 2023년 3월 12일 공개자료에서 시그니처뱅크가 뉴욕주 금융서비스국에 의해 폐쇄됐다고 밝혔다. FDIC는 같은 날 관리인으로 지정됐고, 예금과 대부분의 자산을 시그니처 브리지 뱅크(Signature Bridge Bank, N.A.)로 넘겼다.
폐쇄 당시 시그니처뱅크의 총자산은 1104억 달러(약 155조9000억원), 총예금은 886억 달러(약 125조1000억원)였다.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직후 미국 지역은행 불안이 커지던 시기였다.
항소심 판결문은 시그니처뱅크가 2017년부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산업 쪽으로 사업 축을 옮겼다고 적었다. 원고 측은 판결문에 인용된 주장서에서 2023년 3월 10일 하루 동안 100억 달러(약 14조1000억원)가 넘는 예금이 빠져나갔다고 주장했다.
이 예금 유출 규모는 판결문이 원고 측 주장을 재현한 것으로, 본안에서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판결문은 또 원고 측 서술을 인용해 시그니처뱅크 주가가 2023년 3월 28일 0.13달러까지 떨어졌다고 적었다.
크립토 업계에서 이번 사건이 갖는 의미는 은행 파산 뒤 주주 소송의 통로가 곧바로 닫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예금 노출, 유동성 관리, 감사 의견을 둘러싼 쟁점이 환송심에서 다시 다뤄질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번 판결은 FDIC의 승계 범위에 관한 법리 판단에 그친다. 시그니처뱅크의 실제 공시 책임과 KPMG의 감사 책임은 환송심에서 다퉈질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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