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전력망 장비 규제를 국가안보 문제로 끌어올리면서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가 규제 심사 대상에 포함됐다. 북미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의 공급망 대응력이 새 시험대에 오른 흐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대규모 전력망 보호를 위한 행정명령 14420호에 서명했다. 백악관은 외국산 대규모 전력망 장비가 미국 안보와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BESS를 심사 대상 장비로 명시했다.
행정명령은 외국산 전력망 장비의 취득, 수입, 이전, 설치를 금지하거나 조건부로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적용 대상은 대규모 전력망 변전소, 제어실, 발전소에 쓰이는 장비다.
목록에는 전력망 연계 인버터,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 무정전전원장치, 산업제어시스템 등이 포함됐다. 장비 자체의 성능보다 공급망과 원격 접근 위험을 함께 보겠다는 취지다.
백악관은 일부 외국산 장비가 원격 접근, 악성 행위, 공급 차질 위험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부 장관은 명령일로부터 120일 안에 시행 규정을 낼 수 있다.
BESS는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전력망에 다시 공급하는 장치다. 태양광·풍력 같은 변동성 전원이 늘거나 데이터센터처럼 전력 수요가 집중되는 시설이 확대될수록 전력망 안정화 장비로 쓰인다.
한국경제는 국내 증권가가 이번 조치를 중국산 BESS의 구조적 차단 가능성으로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는 한국투자증권, 신영증권, DB금융투자 등의 분석이 언급됐다.
같은 보도에서 올해 상반기 북미 ESS 출하는 83% 늘었고 시장 점유율은 중국 76%, 한국 20% 수준으로 제시됐다. 중국산 장비 의존도가 높은 시장 구조가 미국 규제와 맞물릴 경우 공급망 재편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행정명령만으로 한국 기업의 점유율 변화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부가 어떤 장비와 공급업체를 위험 대상으로 판단할지, 이미 설치된 장비에 어떤 조건을 붙일지가 실제 시장 영향의 핵심이다.
기존 설치 장비도 검토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 백악관은 식별, 격리, 감시, 교체, 제거 같은 조치를 거론하면서도 전력망 신뢰성과 안전, 대체 장비 확보 가능성을 함께 고려한다고 밝혔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다. 인공지능(AI) 서버와 데이터센터가 늘면 전력망 안정화 장비와 저장장치 수요도 함께 커지는 구조다.
본지는 앞서 미국 데이터센터 규제가 전력망과 중국 기술 차단 문제로 번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에는 기회와 부담이 함께 놓였다. 중국산 장비 의존도가 높은 북미 ESS 공급망이 조정될 경우 현지 생산 기반을 갖춘 기업의 역할은 커질 수 있지만, 전기차 수요 부진을 ESS 성장만으로 얼마나 상쇄할지는 후속 실적에서 확인돼야 한다.
미국 에너지부는 행정명령에 따라 후속 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실제 적용 범위와 대상 장비, 공급업체 판단 기준은 에너지부 규정에서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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