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스타트업 스펙트르가 금융권의 ‘수작업 컴플라이언스’를 자동화하는 AI 인프라를 앞세워 200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원화 기준 약 293억1200만원으로, 기존 투자금을 포함한 누적 조달액은 2600만달러에 근접한다.
스펙트르는 2023년 코펜하겐에서 출범한 금융 컴플라이언스 기술 기업이다. 이번 라운드는 뉴엔터프라이즈어소시에이츠가 주도했고, 기존 투자사인 노스존, 시드캠프, PSV 테크도 참여했다. 회사는 현재 기업가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2024년 2월 시드 라운드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창업진은 이미 한 차례 성공적인 엑시트를 경험한 팀이다. 최고경영자 미켈 스카르나게르와 최고기술책임자 치프리안 플로레스쿠는 앞서 디지털 온보딩 스타트업 헬로플로우를 공동 창업해 150만유로만으로 사업을 키운 뒤, 2년이 채 안 돼 캐나다 신원인증 기업 트룰리오에 5000만달러 이상에 매각했다. 이후 제품총괄 제러미 졸리, 최고매출책임자 얀에릭 오보 바그너와 다시 손잡고 스펙트르를 세웠다.
스펙트르가 겨냥한 문제는 금융회사 내부의 비효율적인 컴플라이언스 절차다. 현재 많은 금융기관은 고객 확인, 서류 검토, 실소유주 구조 파악, 제재 리스트 점검, 위험도 분석 같은 업무를 여전히 인력 중심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담당자들은 각종 문서를 교차 검증하고 공공 등록부를 조회하며 위험 여부를 수작업으로 판단해야 한다.
스펙트르는 이런 작업 흐름 위에 ‘에이전트형 AI’를 올려 실제 업무를 수행하게 만드는 구조를 제공한다. 회사 측에 따르면 자사 플랫폼은 단순히 워크플로를 관리하는 수준이 아니라, 문서 검토와 소유구조 매핑, 리스크 분석 같은 컴플라이언스 업무 자체를 끝단까지 실행한다. 다만 모든 판단을 AI에 넘기는 방식은 아니다. 사람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휴먼 인 더 루프’ 구조와 전 과정의 투명성을 유지하도록 설계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켈 스카르나게르 최고경영자는 “기존 도구들이 업무 흐름을 관리하는 데 집중했다면 스펙트르는 그 안의 실제 일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데이터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이 최종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분석과 결정의 초안을 AI가 만들어준다는 의미다.
스펙트르는 지난해 8월 AI 에이전트 기능을 완전히 통합한 ‘스펙트르 2.0’을 출시한 뒤 고객 도입이 빠르게 늘었다고 밝혔다. 현재 이 분야에서는 무디스, 페네르고, 페가시스템즈 같은 기존 솔루션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스펙트르는 자신들이 컴플라이언스 실행 영역에서 한 단계 더 깊숙한 자동화를 제공한다고 보고 있다.
회사는 현재 직원 45명 규모로 운영되고 있으며, 앞으로는 대형 은행과 1급 금융기관의 복잡한 수요를 처리할 수 있도록 엔지니어링 조직 확대에 집중할 계획이다. 신규 자금은 제품 고도화와 함께 런던, 뉴욕 사무소 개설에도 투입된다. 고객사로는 플레오, 산탄데르 리스, 몬타, 팬텀, 머큐리오 등이 거론됐다.
뉴엔터프라이즈어소시에이츠의 루크 파파스 파트너는 스펙트르의 경쟁력으로 ‘도메인 전문성’과 ‘속도’를 꼽았다. AI 시대에는 기능 자체를 빠르게 복제할 수 있지만, 실제 금융 컴플라이언스 현장에 맞는 제품 구조와 예외 처리 설계가 승부를 가른다는 평가다. 그는 앞으로는 소프트웨어가 모든 항목을 상시 점검하고, 전문가가 예외 상황만 다루는 방향으로 시장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스펙트르의 자금 유치는 최근 AI 기반 핀테크 투자 확대 흐름과도 맞물린다. 크런치베이스 집계에 따르면 2025년 전 세계 벤처캐피털 투자 유치 핀테크 스타트업의 총 조달액은 538억달러로, 2024년 416억달러보다 29% 이상 늘었다. 특히 사람이 반복적으로 처리하던 금융 업무를 자동화하는 분야에 자금이 몰리는 분위기다.
결국 스펙트르의 승부처는 금융기관이 가장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컴플라이언스 영역에서 AI에 대한 신뢰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다. 규제 대응은 작은 오류도 큰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완전 대체’보다 기존 시스템과 공존하며 점진적으로 자동화를 넓히는 전략이 시장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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