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양자컴퓨팅 스타트업 앨리스앤밥 SAS가 자사 첫 ‘풀스택’ 하드웨어 플랫폼인 ‘헬륨 퀀텀 시스템’을 공개했다. 양자 칩 개발사를 넘어, 실제 연구기관과 데이터센터에 설치할 수 있는 완성형 시스템 개발사로 한 단계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에 공개된 헬륨 퀀텀 시스템은 온프레미스, 즉 사용자의 자체 전산 환경에 직접 구축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점이 핵심이다. 회사는 이 장비가 단 18개의 ‘캣 큐비트’만으로 첫 번째 논리 큐비트 구현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논리 큐비트는 물리적 큐비트 여러 개를 묶어 오류를 줄인 연산 단위로, 실용적 양자컴퓨터 구현의 핵심으로 꼽힌다.
앨리스앤밥은 유럽에서 ‘고장 허용’ 양자컴퓨팅을 앞세우는 대표 주자 중 하나다. 이 회사가 개발하는 캣 큐비트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실험에서 이름을 따왔다. 일반적인 큐비트가 극도로 민감해 작은 진동이나 외부 간섭에도 계산 오류가 발생하는 것과 달리, 캣 큐비트는 여러 입자에 정보를 분산 저장해 오류 저항성을 높이는 방식이 특징이다.
특히 회사는 캣 큐비트가 양자컴퓨터의 대표적 오류 유형 중 하나인 ‘비트 플립 오류’ 억제에 강점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는 양자 오류 정정 부담을 줄이는 데 유리하며, 결과적으로 더 적은 자원으로 고장 허용 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 테오 페로냉(Théau Peronnin)은 “양자컴퓨팅 경쟁의 본질은 더 나은 큐비트를 만들어 최소한의 자원으로 고장 허용에 도달하는 데 있다”며 “캣 큐비트 아키텍처는 업계의 가장 큰 기술적·경제적 장벽인 오류 정정 오버헤드를 크게 낮추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헬륨 퀀텀 시스템은 단순한 프로세서 공개에 그치지 않는다. 프로세서 구조, 제어 전자장치, 케이블링, 운영 소프트웨어까지 포함한 통합 시스템으로 설계됐다. 사용자가 양자 계산 결과를 신뢰할 수 있도록, 전반적인 오류 정정 안정성 확보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회사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향후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 내년 공개가 예상되는 48캣 큐비트 칩셋도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됐으며, 새 칩셋은 여러 개의 논리 큐비트를 담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단일 연구 장비를 넘어 실제 확장 가능한 양자컴퓨팅 인프라로 진화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앨리스앤밥은 헬륨 퀀텀 시스템이 기존 온프레미스 컴퓨팅 환경에 비교적 쉽게 탑재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전력 소모도 40킬로와트 수준으로 제시했다. 현재 양자컴퓨팅 하드웨어의 높은 운영 비용이 상용화의 걸림돌로 지적되는 만큼, 에너지 효율은 시장 확산의 중요한 변수다.
또 양자 자원과 고전 컴퓨팅 자원을 하나의 인프라 안에서 함께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는 고성능컴퓨팅(HPC) 센터에서 쓰이는 환경과 유사하다. 회사는 오픈소스 QRMI 라이브러리를 통해 슬럼(Slurm) 같은 일반적인 HPC 스케줄링 도구와도 호환된다고 덧붙였다.
운영 도구도 함께 내놨다. ‘스타보드’라는 맞춤형 모니터링 인터페이스를 통해 18캣 큐비트 시스템의 상태를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다. 관리자는 시스템 동작 시각화, 개별 캣 큐비트 성능 추적, 실시간 지표 확인, 작업 스케줄링 등을 수행할 수 있다.
앨리스앤밥은 이번 시스템 공개와 함께 연구기관 파트너를 모집해 실험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직접적인 캣 큐비트 아키텍처 접근을 제공함으로써 양자 오류 정정, 논리 큐비트, 고장 허용 양자컴퓨팅 전반의 연구를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발표는 양자컴퓨팅 산업이 ‘더 많은 큐비트’ 경쟁에서 ‘더 쓸 수 있는 큐비트’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시장의 승부처는 단순한 규모가 아니라, 얼마나 적은 자원으로 안정적인 계산을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앨리스앤밥의 접근은 분명한 차별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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