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투자, AI 쏠림 속 양자·지열·크립토 인프라로 확산

| 김서린 기자

미국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서 이번 주에도 ‘인공지능’이 가장 강한 존재감을 보였다. 7월 4일부터 10일까지 발표된 대형 투자 라운드 상위 10건 가운데 5건이 AI 관련 기업에 몰렸고, 사이버보안과 AI 인프라 분야에서는 각각 10억달러, 약 1조5017억원 규모의 초대형 자금 조달이 나왔다.

크런치베이스 집계에 따르면 이번 주 미국 내 최대 투자 유치 공동 1위는 오하이오주 인디펜던스의 키팩터와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의 삼바노바가 차지했다. 키팩터는 디지털 신원·기계 신원 관리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사이버보안 기업으로, 서밋파트너스 주도로 10억달러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금은 12억1000만달러를 넘어섰다.

삼바노바는 제너럴애틀랜틱이 주도한 시리즈F에서 10억달러를 조달했다. 투자 후 기업가치는 110억달러로 평가됐다. 한국 돈으로는 약 16조5187억원 수준이다. 이 회사는 AI 칩과 기업용 AI 인프라를 개발하며, 학습과 추론 수요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양자컴퓨팅·지열·크립토 인프라로 확산된 자금

AI 쏠림 속에서도 투자자들은 차세대 기술 전반에 적극적으로 베팅했다. 양자컴퓨팅 스타트업 오라토믹은 3억달러, 약 4505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다. 아치벤처파트너스, 코슬라벤처스, 스파크캐피털이 공동 주도했고, 베이조스 엑스페디션스와 제너럴캐털리스트 등 16곳이 참여했다. 이 회사는 ‘중성원자’ 기반 양자 하드웨어와 오류 내성 구조를 개발하고 있다.

청정에너지 분야에서는 퀘이즈에너지가 1억3400만달러, 약 2012억원의 시리즈B를 유치했다. 밀리미터파 시추 기술로 심부 지열 발전을 상용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탄소 배출이 없는 전력원으로서 지열이 다시 주목받는 흐름과 맞물린 투자다.

크립토 인프라 부문도 눈에 띄었다. 뉴욕 기반 건틀렛은 일본 SBI그룹 단독 투자로 1억2500만달러, 약 1877억원 규모의 시리즈B를 유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건틀렛은 디파이 프로토콜용 시뮬레이션, 리스크 관리, 최적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업체다. 같은 주에 디지털 자산 거래소 EDX마켓츠도 SBI그룹으로부터 7600만달러, 약 1141억원을 조달했다. 기관투자자 대상 크립토 거래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AI 투자, 인프라에서 규제 준수까지 넓어져

이번 주 대형 투자에서 AI는 단순 모델 개발을 넘어 인프라, 분산 컴퓨트, 규제 준수 소프트웨어 등으로 확장됐다. 샌프란시스코의 프라임인텔렉트는 1억3000만달러, 약 1952억원의 시리즈A를 유치했다. 이 회사는 분산 컴퓨트 네트워크 전반에서 AI 모델을 학습·배포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뉴욕의 놈AI는 코슬라벤처스 주도로 1억2000만달러, 약 1802억원의 시리즈C를 확보했다. 기업가치는 12억달러, 약 1조8020억원으로 평가됐다. 놈AI는 복잡한 법률과 규제를 소프트웨어 코드처럼 변환해 기업의 규제 준수 업무를 자동화하는 AI 시스템을 개발한다. AI가 생산성 향상 도구를 넘어 ‘규제 기술’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우주항공·바이오도 대형 투자 유지

우주항공과 방산 분야도 굵직한 자금을 끌어들였다. 휴스턴의 비너스에어로스페이스는 9100만달러, 약 1367억원의 시리즈B를 유치했다. 극초음속 추진 기술을 개발해 장거리 비행 시간을 대폭 줄이고, 향후 방산 적용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최근 미국 벤처 시장에서 항공우주가 다시 전략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이오 분야에서는 포어바이오테라퓨틱스가 6740만달러, 약 1012억원의 시리즈D 투자를 받았다. 희귀 암 돌연변이를 겨냥한 정밀 항암 치료제 개발이 핵심이다. 대형 AI 딜에 가려졌지만, 정밀의료와 표적 치료제에 대한 투자 수요 역시 여전히 견조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해외에서도 퓨전 에너지와 업무 소프트웨어 주목

미국 밖에서도 대형 투자 소식이 이어졌다. 독일 뮌헨의 프로시마퓨전은 4억1100만유로를 유치했다. 달러 기준 약 4억6800만달러, 원화로는 약 7028억원 규모다. 유럽 최초의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 개발 기대를 반영한 투자로 읽힌다.

프랑스 파리의 스켈로는 2억유로, 달러 기준 약 2억2900만달러를 조달했다. 원화로는 약 3439억원 수준이다. 급여, 일정 관리, 규제 준수, 직원 커뮤니케이션을 처리하는 인사관리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생산성 소프트웨어에 대한 사모펀드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주 투자 흐름을 종합하면 미국 스타트업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여전히 ‘AI’였다. 다만 자금은 양자컴퓨팅, 청정에너지, 크립토 인프라, 항공우주로도 분산되며 기술 패권 경쟁이 더 넓은 영역에서 전개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특히 크립토 인프라 투자까지 다시 대형 딜 반열에 오른 점은 디지털 자산 시장이 단순 가격 흐름을 넘어 제도권 인프라 경쟁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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