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이 실물 금을 표시한 토큰을 도매 금융시장의 담보로 활용하기 위한 규칙 마련에 나섰다. 전 세계 명목 금 거래량의 약 70%를 처리하는 런던 시장의 경쟁력을 디지털 금융 환경에서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FCA가 금융기관들과 토큰화 금의 규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논의의 초점은 토큰화 금을 도매시장에서 담보로 사용할 수 있는지와 거래·결제에 기존 금융 규칙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맞춰져 있다.
토큰화 금은 발행자가 실물 금을 보관하고 이에 대한 소유권을 디지털 토큰으로 표시하는 구조다. 토큰의 가치와 권리를 뒷받침하려면 실물 금의 보관과 소유권 이전, 상환 및 결제 절차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세계금협회(World Gold Council)에 따르면, 런던 장외 금 시장은 전 세계 명목 거래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런던은 금 현물 거래와 보관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 금 시장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중국 시장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영국 당국은 금 거래 인프라의 디지털 전환을 경쟁력 문제로 보고 있다. 토큰화 금 규칙은 기존 런던 금 시장의 보관·거래 체계를 디지털 자산 환경과 연결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에 해당한다.
FCA와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5월 18일 영국 도매 금융시장의 토큰화에 관한 공동 비전을 발표했다. 두 기관은 토큰화가 자산의 발행과 거래, 결제 방식을 바꿀 수 있다며 규제와 시장 인프라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의견을 요청했다.
공동 비전은 금 전용 규칙이 아니라 도매시장 전반의 토큰화 전략을 다룬다. 검토 대상에는 토큰화 담보와 결제 수단, 건전성 처리, 기존 금융 규칙의 적용 방식이 포함됐다.
사이먼 월스(Simon Walls) FCA 시장 담당 전무는 당시 발표에서 “토큰화는 자산이 발행, 거래, 결제되는 방식을 재편해 도매시장을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토큰화 금 논의가 개별 상품 규제를 넘어 도매시장 인프라 개편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도매 금융시장은 은행과 운용사, 시장 인프라 기관 등이 대규모 거래를 처리하는 기관 중심 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토큰화 금을 담보로 인정하려면 토큰이 나타내는 권리와 실물 금의 보관 관계, 거래 상대방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통상 담보 자산은 가치 평가와 권리 이전, 부도 시 처분 절차가 분명해야 한다. 토큰화 금도 디지털 장부상의 이전만으로 실물 금에 대한 권리가 함께 넘어가는지 등을 규칙으로 정리해야 실제 도매 거래에 활용할 수 있다.
영국 정부도 금융시장 디지털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크리스 울러드(Chris Woolard) 영국 재무부 도매 디지털시장 책임자는 7월 토큰화 채권과 담보, 결제 인프라의 시장 적용을 앞당기기 위한 12개월 계획을 제시했다.
영국 정부는 금융시장 디지털화가 연간 330억 파운드(440억 달러·약 62조400억원)의 경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추산했다. 토큰화 금 규칙 마련은 이 같은 도매시장 디지털화 구상의 한 축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핵심은 금 가격보다 실물자산 토큰화의 규제 방향이다. 금의 보관과 소유권, 결제, 담보 평가를 하나의 규칙으로 연결하는 방식은 향후 채권과 펀드, 원자재 등 다른 실물자산을 토큰화할 때 참고 기준이 될 수 있다.
영국 금융기관들은 디지털자산 인프라 구축을 추진하고 있지만 예산 집행 속도에서는 유럽 대륙보다 뒤처진 것으로 조사됐다. 본지는 앞서 영국 금융기관의 디지털자산 인프라 예산 확정 비율이 유럽 대륙보다 낮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FCA가 향후 수개월 안에 토큰화 디지털자산 규칙 마련의 진전 상황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토큰화 금이 도매시장에서 갖는 법적 지위와 담보 활용 범위는 구체적인 규칙이 공개된 뒤 드러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