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데이터 라벨링 업체들이 중국 주요 인공지능(AI) 랩에 연간 약 5억 달러(약 6890억원) 규모의 훈련 데이터를 팔면서 미국 정부 고객도 상대하는 구조가 드러났다. AI 칩과 클라우드 접근은 규제가 강화됐지만, 사람이 만든 고급 훈련 데이터와 평가 기준의 해외 판매에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틀이 적용돼 왔다는 지적이다.
포브스(Forbes)는 서지AI(Surge AI), 머코(Mercor), 애프터쿼리(AfterQuery), 튜링(Turing) 등 미국 데이터 업체들이 오픈AI(OpenAI), 앤트로픽(Anthropic), 미국 연방 고객과 중국 AI 기업을 동시에 상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거래 정황에 거론된 중국 기업에는 텐센트(Tencent), 알리바바(Alibaba), 앤트그룹(Ant Group), 바이트댄스(ByteDance)가 포함됐다.
포브스가 확인한 문서와 메시지에는 텐센트가 서지AI를 데이터 공급처로 활용했고, 머코도 텐센트와 일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알리바바 직원과의 대화 기록에는 애프터쿼리와 머코 관련 구매 합의가 언급됐고, 내부 문서는 튜링이 바이트댄스와 작업한 정황을 보여줬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핵심은 데이터가 반도체처럼 촘촘히 막혀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은 첨단 AI 칩과 장비, 클라우드 접근에는 제한을 강화해 왔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고급 훈련 데이터, 채점 기준, 품질 관리 체계의 해외 판매에는 같은 수준의 규제 틀이 마련돼 있지 않다.
미 국방부는 2026년 6월 8일 공개한 1260H 문서에서 텐센트를 중국 군사기업 명단에 올리고, 인민해방군과 간접적으로 연계됐다고 적시했다. 이 분류는 제재나 유죄 판단이 아니라 국방부의 계약·위험 관리용 공식 목록이다.
포브스는 중국 상위 6개 AI 랩이 미국 데이터 라벨링 업체에 연간 약 5억 달러를 지출한다고 전했다. 이 수치는 텐센트와 바이트댄스 경영진의 시장 규모 추정치를 들었다는 데이터 업계 관계자 2명의 말을 바탕으로 했다.
머코의 중국 AI 랩 매출은 2026년 2분기 전체의 2%로 전해졌다. 테크크런치(TechCrunch)는 머코가 2026년 6월 연환산 매출 20억 달러(약 2조7560억원)를 넘겼다고 보도했다.
애프터쿼리는 중국 AI 랩에서만 최소 5000만 달러(약 689억원)의 반복 매출을 얻는다고 포브스는 보도했다. 사크라(Sacra)는 서지AI의 2024년 연간 매출을 12억 달러(약 1조6536억원)로 추정했고, 수요가 오픈AI와 구글(Google), 앤트로픽,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메타(Meta) 같은 프런티어 AI 고객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데이터 라벨링은 AI 모델이 문장, 코드, 금융, 법률, 보안 같은 업무를 처리하도록 학습 데이터를 정리하고 평가 기준을 붙이는 작업이다. 단순 입력 노동이 아니라 전문 지식과 품질 관리가 결합된 AI 인프라에 가깝다. 중국 AI 기업이 미국 업체의 데이터 세트와 평가 기준을 사면 모델 개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중국이 데이터를 전략 자산으로 상업화하고 AI와 기술 목표, 정보수집, 군사 역량 강화에 활용한다고 밝혔다. 로이터(Reuters)는 위원회가 미국 의회에 국가 데이터 전략을 검토하라고 권고했다고 전했다.
시장 구조도 규제 공백을 키웠다. 데이터 라벨링 업체는 특정 모델 개발사에 맞춘 맞춤형 데이터뿐 아니라 여러 AI 랩에 재판매할 수 있는 표준화 데이터도 취급한다. 이 과정에서 같은 공급망이 미국 정부 고객, 미국 빅테크, 중국 AI 랩을 동시에 연결할 수 있다.
반론도 있다. 션 차이(Sean Cai) AI 데이터 연구자는 포브스 인터뷰에서 데이터와 AI 수출을 쉽게 제한하면 미국 오픈소스 생태계에 실질적 피해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맥스 게이저(Max Gazor) 스트라이커벤처파트너스 설립자는 중국 AI 기업에 데이터를 팔지 여부를 윤리적 결정의 문제로 구분했다.
같은 시장 안에서도 선택은 갈렸다. 스케일AI(Scale AI)는 2024년 바이트댄스 계약을 국가안보 우려로 접었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일부 업체는 중국 고객을 끊고, 다른 업체는 거래를 이어가는 구조다.
국내 시장에도 이 사안은 AI 인프라와 수출 통제의 접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본지는 앞서 미중 협상에서 AI 절도와 비트코인 채굴장비 공급망이 함께 다뤄질 수 있다는 관측을 전한 바 있다. AI 데이터 공급망 논쟁은 반도체와 클라우드에 집중됐던 기술 통제 논의가 데이터와 평가 체계로 넓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관련 매출 수치는 대부분 비상장사 내부 정보와 업계 추정에 기반한 것으로, 공시로 확정된 수치는 아니다. 이번 사안은 AI 데이터 공급망이 미중 기술 경쟁의 다음 규제 쟁점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