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부와 연계된 해커 조직들이 온체인 자금 세탁 규모를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파이(DeFi) 대출 프로토콜은 상대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록체인 포렌식 기업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해커 조직은 2025년 한 해 동안 최소 20억 2,000만 달러(약 2.8조 원) 상당의 암호화폐를 탈취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북한 관련 해킹 누적 피해액은 총 67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보고서는 해킹 사건 수 자체는 줄었지만, 북한 연계 조직이 전체 서비스 침해 사건의 76%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는 소수의 대규모 공격 이후 체계적인 자금 세탁을 반복하는 전략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요 해킹 이후 약 45일간 이어지는 자금 세탁 사이클이 반복적으로 관측됐다.

체이널리시스는 북한 해커들이 다른 범죄 집단과 달리 디파이 대출 프로토콜을 통한 자금 세탁을 거의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연계 해커들의 디파이 대출 프로토콜 사용 비중은 다른 위협 행위자 대비 약 80%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체이널리시스 연구 총괄 에릭 자딘(Eric Jardine)은 “이는 디파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다만 북한 연계 공격자들은 자금 은닉과 분산 과정에서 디파이 대출보다는 믹서와 브리지 같은 서비스에 뚜렷한 선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고서는 북한 해커들이 크로스체인 브리지, 암호화 믹서, 그리고 중국어 기반 자금 세탁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수단들은 자금 추적을 복잡하게 만들고, 여러 체인을 거치며 흔적을 희석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디파이 시장 자체는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디파이라마(DeFiLlama) 데이터에 따르면 디파이 시장의 총예치자산(TVL)은 2024년 약 500억 달러에서 2025년 10월 기준 약 1,750억 달러로 증가하며 2021년 강세장 당시 수준에 근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디파이 관련 해킹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체이널리시스는 이를 두고 “디파이 프로토콜들이 2020~2021년 대비 전반적으로 보안 체계를 강화한 결과”라며, 스마트컨트랙트 감사와 보안 인프라 개선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북한 해커들의 이러한 행태가 규제 회피와 자금 추적 회피를 동시에 고려한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디파이 대출 프로토콜은 투명성이 높고 감시가 강화되고 있는 반면, 브리지와 믹서는 여전히 규제 공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향후 암호화폐 보안과 규제 논의의 초점이 디파이 대출보다는 크로스체인 인프라와 믹서 서비스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