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에서 '유동성'은 단순한 거래량 숫자 하나로 판단하기 어렵다. 카이코 리서치가 업비트와 협력해 발표한 보고서는 한국 암호화폐 거래소의 유동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을 정밀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동성은 대규모 주문을 빠르게, 시장 충격 없이 체결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며, 가격 접근성(스프레드), 시장 수용력(깊이), 체결 안정성(슬리피지) 등 여러 지표로 포착된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지표인 거래량도 완전한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주요 뉴스 이벤트나 시장 붕괴 시기에 거래량이 급등하면서도 시장 가격은 오히려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있다. 2025년 10월 10일 시장 붕괴 당시, 높은 거래량에도 불구하고 스프레드는 급격히 넓어져 실질 유동성은 오히려 떨어졌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처럼 거래량이 시장 '플로우'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실시간 체결 가능성과 가격 접근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또 다른 중요한 지표는 스프레드다. 최우선 매수호가와 매도호가 간의 차이를 의미하는 스프레드는 유동성의 '비용'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는 호가 실효성이나 틱 사이즈, 숨겨진 주문(아이스버그) 등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업비트와 빗썸이 상대적으로 큰 틱 사이즈를 채택함으로써 스프레드를 기계적으로 넓히는 효과가 있다. 이는 가독성과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정교한 가격 책정이나 정확한 유동성 판단을 방해할 여지가 있다.
시장 깊이는 서로 다른 가격 수준에서의 주문 수량을 보여준다. 일정 수준 이하에서 대규모 주문이 얼마만큼 소화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게 해주는 지표지만, 반드시 체결 가능한 유동성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닥치면 표시된 주문이 빠르게 철회되기도 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주문이 예기치 않은 충격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리피지는 이러한 체결 중심 지표로, 특정 주문이 시장을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며 실무적인 유동성 가늠에 매우 유용하다.
한국의 거래소 구조에서 틱 사이즈와 수수료 또한 유동성에 큰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업비트는 점진적 가격 틱 그리드를 통해 고가 자산일수록 큰 가격 단위를 설정하고 있으며, 이는 유동성의 중심이 특정 레벨에 집중되도록 만든다. 수수료 방식도 다르다. 업비트는 일괄적인 수수료 구조(0.05% 또는 0.25%)를 유지하는 반면, 빗썸은 일부 마켓에서 거래 수수료를 없앴다. 그러나 수수료가 없다고 해서 비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마켓 메이커가 이를 보전하기 위해 스프레드를 넓혀 가격 접근성을 낮추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유동성 데이터를 보면, 업비트는 2025년 기준으로 전체 한국 암호화폐 시장 거래량의 70%를 차지하며, BTC/KRW 및 주요 원화 마켓에서 체결 수, 깊이 모두 압도적인 수치를 보인다. 반면 빗썸은 거래량 측면에서 그 뒤를 쫓고 있고, 코인원 및 코빗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업비트는 틱 사이즈가 크더라도 슬리피지가 낮게 유지되는 등, 실질 유동성의 측면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플랫폼으로 평가된다.
시장 이벤트도 유동성 조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예로는 '김치프리미엄'과 2024년 12월 계엄령 사례가 있다. 김치 프리미엄은 글로벌 거래소보다 한국 거래소에서 암호화폐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현상이며, 일시적 수급 불균형과 차익거래 전략으로 인해 유동성에 영향을 준다. 계엄령 발표 당시에는 파격적인 시장 리스크로 인해 거래량이 급증했지만, 스프레드와 슬리피지가 확대되면서 실질 유동성은 저하됐다. 반대로 BTC와 같은 자산이 사상 최고가를 경신할 시기에는 호가창이 보강되고 스프레드가 좁혀지는 등 유동성이 개선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카이코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유동성이 단일 지표가 아닌 복합 지표로서 평가돼야 하며, 거래소 구조, 수수료, 틱 사이즈, 토큰 특성, 시장 환경까지 고려해야 본질적인 판단이 가능하다고 보고했다. 본 보고서는 업비트와의 협업으로 제작됐지만 카이코가 독립적으로 저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