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3는 금융, 디지털 자산 및 신기술 분야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제도권 거래를 설계해 온 전문가 집단이다. 공동 저자인 윤현근(블록체인 운영 전문가), 김태림(법률·규제 전문 변호사), 티모시 신(글로벌 금융 파트너십 전략가)이 2026년 2월 출간한 『토큰화(TOKENIZATION)』를 바탕으로, 한국 독자를 위한 5편 연재를 통해 토큰화의 본질과 한국 금융의 전략적 선택을 이야기한다. [편집자주]
필자 윤현근은 지난 8년간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직접 운영하며 규제의 불확실성이라는 파고를 온몸으로 견뎌왔다. 기술은 이미 국경을 넘나들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사업을 전개한다는 것은 마치 안개 속에서 전력 질주를 하는 것과 같았다. 세계가 토큰화라는 새로운 엔진으로 금융 시스템을 교체할 때, 우리는 여전히 엔진을 켜도 되는지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만 반복해야 했다.
한국의 토큰화 시도는 흔히 "당국이 너무 보수적이었다"거나 "과도한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았다"는 식의 감상적인 비평으로 요약되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단은 문제의 본질을 비켜간 피상적인 평가에 불과하다.
하나의 현상, 세 개의 서로 다른 시선
한국에서 토큰화 비즈니스를 타진하는 이들이 마주하는 첫 번째 벽은 규제가 하나의 통합된 논리로 설계되어 있지 않다는 '분절성'이다.
자본시장법은 "이 토큰의 경제적 실질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토큰이 증권으로 판단되는 순간, 발행·유통·보관·공시는 기존 자본시장 인프라를 따라야 하는데, 현재의 레거시 인프라는 토큰화가 가진 실시간성이나 프로그래머블한 속성을 수용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증권이지만, 토큰처럼 거래할 수는 없는" 모순적 상황이 연출된다.
전자증권법은 "누가,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에 집중한다. 한국예탁결제원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중형 체계를 유지하면서 분산원장 기술을 절충적으로 수용하려다 보니, 기술은 분산되어 있으나 법적 기록은 중앙에 묶여 있는 '기술과 법의 비대칭'이 발생한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자금의 흐름이 투명한가?"라는 위험 관리의 논리로 접근한다. 이 규제가 앞선 두 법률상의 판단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사업자는 세 가지 규제를 각각 별도로 설계해야 하는 비효율에 직면한다.
법률이 쪼개져 있으니 감독기관의 관할권 역시 파편화될 수밖에 없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FIU, 한국은행, 과기정통부까지 각 기관은 오직 자신의 관할 범위 내에서만 판단을 내린다. 사업 전체를 놓고 통합적으로 판단해 줄 주체가 없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인 병목이다.
기술 프로젝트로 오판한 것이 가장 큰 실패
한국 토큰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토큰화를 '멋진 기술을 도입하는 프로젝트'로만 오판했다는 점에 있다. 토큰화는 기술 프로젝트가 아니라, 법률·회계·감독 체계를 통째로 재설계해야 하는 '국가적 제도 설계 프로젝트'다.
온체인에서 토큰은 빛의 속도로 전송되었으나, 민법과 상법이 요구하는 등기, 대항요건, 채권양도 통지와 같은 명확한 형식 요건은 여전히 오프체인의 아날로그 장부와 대면 절차에 묶여 있었다. 법적 확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자산에 기관의 대규모 자본이 유입될 리 없었다.
자산의 가치를 재무제표에 담지 못하는 회계 기준의 부재와 과세 시점의 불투명성은 기관 투자자라는 핵심 엔진의 시동을 꺼뜨린 결정적 요인이었다.
많은 프로젝트가 규제 샌드박스에서 기술적 가능성은 입증했으나, 기간 종료 후 제도권의 '정상 흐름'으로 진입할 로드맵을 찾지 못해 소멸했다. 혁신적인 실험은 도처에서 일어났지만, 이를 지탱할 제도화된 인프라는 단 한 번도 완성되지 않았다.
한국형 토큰화의 진짜 강점 — 역발상이 필요하다
한국의 강력하고 복합적인 규제 체계는 분명 혁신의 장애물이지만, 관점을 전환하면 가상자산 시장의 고질적 난제인 '신뢰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무기가 된다. 글로벌 시장이 자산의 집중 위험과 운영 리스크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지금, 한국이 제도권의 엄격한 통제 아래 토큰화 인프라를 완성한다면 그 자체로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디지털 금융의 성지'로 거듭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 토큰화가 '멋진 기술을 증명하는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과제는 '작동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마지막 편에서는 한국형 토큰화의 구체적인 전략 설계와 우리가 취해야 할 실천적 결단을 제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