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확산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장벽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초기 스타트업 투자 판단 기준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미국 통신 대기업 AT&T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인 AT&T 벤처스는 이제 ‘만들 수 있느냐’보다 ‘지킬 수 있느냐’를 더 중요한 질문으로 본다고 밝혔다.
AT&T 벤처스를 이끄는 비크람 타네자(Vikram Taneja)는 최근 크런치베이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AI 시대의 시드 투자 환경을 설명하며, 기술 위험의 정의가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초기 기업이 제품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해당 기술이 얼마나 ‘방어력’과 ‘지속성’을 갖췄는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그는 AI 도구 덕분에 시드 단계에서도 작동하는 앱이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짚었다. 다만 제품 시연이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경쟁력이 입증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타네자는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작동하느냐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우위를 쌓아갈 수 있느냐”라며, 독점 데이터, 고유 학습 데이터셋, 구조적으로 내재된 네트워크 효과가 핵심 판단 요소라고 설명했다.
특히 2025년 초에는 오픈AI GPT, 앤스로픽 클로드, 라마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위에 올라탄 이른바 ‘AI 래퍼’ 기업들로 자금이 몰렸지만, 최근에는 기반 모델 기업들이 직접 응용 계층으로 내려오고 있어 상황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단순히 기존 모델을 감싼 수준의 서비스는 경쟁우위가 얕을 수밖에 없고, 산업별 맥락과 전문성을 깊게 녹여낸 플랫폼이 더 주목받는다는 분석이다.
AT&T 벤처스의 투자 방식도 이런 변화에 맞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타네자는 전통적 벤처캐피털이 자금과 브랜드, 투자 경험을 제공한다면, AT&T 벤처스는 실제 네트워크 환경에서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점이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전후로 파일럿 프로젝트나 개념검증(PoC)을 진행하면서 스타트업 제품이 현장에서 통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점이 AI 스타트업에 특히 유효하다고 봤다. 제품 개발 속도가 빨라진 만큼, 시드 단계부터 고객 확보와 유통 전략이 훨씬 앞당겨져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팀 구성에서도 엔지니어 중심 구조는 유지되지만, 과거보다 더 이른 시점에 제품, 영업, 파트너십 인력을 보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타네자에 따르면 과거에는 멀티스테이지 펀드들이 시리즈A나 시리즈B에서 본격적으로 들어왔다면, 지금은 더 큰 지분을 선점하기 위해 시드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드 라운드 구성 자체가 달라졌고, 투자자들의 실사도 훨씬 촘촘해졌다.
기업가치 역시 높아지는 추세다. 그는 최근 시드 투자 라운드가 대체로 ‘포스트머니’ 기준 2000만~2500만달러 수준에서 형성된다고 전했다. 원화로는 약 307억6000만원에서 384억5000만원 수준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정도 가격대는 시리즈A에서 주로 볼 수 있었지만, 시드 기업의 제품 완성도와 초기 성과가 과거보다 높아진 만큼 완전히 비합리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다만 외형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시리즈A처럼 보이는 제품이 실제로도 확장성과 안정성을 갖춘 구조인지, 아니면 보기 좋은 데모에 그치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T&T의 엔지니어링 및 제품 조직이 기술 구조, 비용, 지연 시간, 인프라 부담 등을 함께 들여다보며 투자 확신을 높인다고 밝혔다.
타네자는 네트워크와 맞닿은 영역에도 주목했다. AI 애플리케이션이 늘어날수록 데이터 처리 방식, 엣지 컴퓨팅, 실시간 추론 구조가 중요해지고, 이는 통신 인프라 수요와도 직결된다는 판단이다. 특히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소프트웨어 계층의 발전이 빨라지고 있지만, 실제 하드웨어 배치와 현장 적용에는 여전히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AT&T 벤처스의 시각은 분명하다. AI 시대의 시드 투자는 더 이상 단순한 제품 구현 여부를 따지는 단계가 아니다. 기술의 방어력, 시장 진입 경로, 실제 인프라와의 결합 가능성까지 함께 검증해야 하는 국면으로 넘어갔다. 빠르게 만드는 시대일수록, 오래 버틸 수 있는 구조가 더 중요한 투자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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