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드오픈리서치 보고서, 온체인 금융 전환 가속…韓, ‘금융 설계자’ 될 기회 놓치나

| 토큰포스트

인공지능(AI)과 기계경제(Machine-to-Machine Economy)가 빠르게 확산되며 온체인(블록체인 기반) 금융 시스템이 현실화되는 전환점에서 전 세계 금융의 패러다임은 이미 실물자산 토큰화(Real World Asset, RWA)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글로벌 웹3 벤처캐피털 해시드의 싱크탱크인 해시드오픈리서치(HOR)는 13 일 발간한 <온체인 금융 인프라: RWA와 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금융 질서>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지금처럼 제도 정비를 미룬다면, 미래 금융 질서에서 설계자가 아닌 사용자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HOR은 보고서에서 국채·부동산·개인신용거래·지식재산권 등 현실 자산을 블록체인 기반으로 이전하는 RWA가 글로벌 금융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제 금융의 거의 모든 기능—결제, 정산, 예금, 대출, 파생상품, 자산운용—이 온체인에서 구현되는 흐름으로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전통 금융사들이 이러한 변화를 직접 리드하며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토큰화 국채 머니마켓펀드(MMF)인 ‘BUIDL’을 출시해 2025년 10월 기준 29억 달러(한화 약 4조 원) 이상의 운용자산(AUM)을 확보했다. 프랭클린템플턴(Franklin Templeton) 역시 ‘벤지(BENJI)’ 토큰을 통해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온체인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JP모건, 페이팔(Paypal), 스트라이프(Stripe) 등 글로벌 금융·결제 기업들도 자체 토큰화 자산, 스테이블코인, 온체인 결제 인프라를 도입하고 있다. 보고서는 글로벌 RWA 시장이 이미 실험 단계를 지나 기관 채택(Institutional Adoption) 단계로 진입했다며 미래 금융에서 RWA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금융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한국의 RWA 논의는 여전히 출발선에 머물러 있다. 현재 RWA의 한 종류인 토큰증권공개(STO) 제도화가 추진되고는 있으나, 실제 관련 시장은 소수 조각투자 중심에 머물러 글로벌 기관들의 자산 운용규모와는 격차가 크다는 것이다. 또한 RWA 거래의 필수 결제 수단이 될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도 지연되고 있어, 향후 시장이 본격화될 경우 달러 기반 결제 인프라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HOR은 이러한 상황에서 향후 시장이 본격 확대될 경우 외화 기반의 결제 및 정산 인프라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며,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미래 금융 시장에서의 원화 사용성 축소와 금융주권 약화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지금처럼 RWA를 ‘신성장 동력’이 아닌 ‘규제 위험요소’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속될 경우 한국이 글로벌 시장의 혁신 속도를 따라잡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HOR은 이러한 위험을 피하고 한국이 RWA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고 관련 법제화를 완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달러화 등 해외 스테이블코인에 의존하지 않고 원화 가치 그대로 온체인 금융에 참여해 RWA를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려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RWA 발행·유통 제도와 기관 참여 규율을 명확히 마련해 다양한 기관의 진입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관이 참여하기 위해서는 신탁·수탁·보관·유통 등 자산 운용 절차가 법적으로 정비돼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커스터디·ETF 등 기관형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이러한 제도가 마련되면 유동성과 거래 안정성이 확보돼 RWA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HOR은 온체인 금융에 대한 위험관리·회계·감사 체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 안정성을 높이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스마트컨트랙트 검증, 담보 관리, 시장 감시 체계를 도입하고, 온체인 자산에도 적용 가능한 회계·감사 기준을 확립해야 제도권 금융기관이 안심하고 RWA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HOR 관계자는 “RWA는 단순 투자 상품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의 ‘신(新) 운영체제’”라며 “정부·당국·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민관 공동 실행 체계를 빠르게 구축해야만 우리나라가 미래 금융 질서를 이용만 하는 국가가 아니라, 설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는 HOR과 블록체인 리서치 기업인 포필러스(Four Pillars)가 공동으로 발간했으며 임민수 HOR 연구원, 강희창 포필러스 프로덕트 리드, 복진솔 포필러스 리서치 리드, 김효봉 법무법인 태평양 파트너 변호사, 정수현 신한투자증권 선임, 홍제석 신한투자증권 선임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