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중앙은행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통합원장’ 구상을 미래 화폐제도의 방향으로 제시하면서,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보다 공적 화폐체계를 강화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신 총재는 1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 포럼에서 ‘통합원장의 실제 구현: 프로젝트 한강의 교훈’ 논문을 발표했다. 현직 한국은행 총재가 직접 논문을 쓰고 국제무대에서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한국은행이 디지털화폐와 지급결제 혁신을 단순한 연구 과제가 아니라 향후 금융 인프라 개편의 핵심 사안으로 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가 제시한 통합원장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기관용 디지털화폐, 시중은행의 예금토큰, 국채 같은 토큰화 자산을 하나의 장부 체계에 올려 함께 작동시키는 구상이다. 쉽게 말해 지금의 중앙은행 돈과 은행 예금이라는 2단계 화폐구조는 유지하되, 이를 디지털 기술로 더 촘촘하게 연결해 결제와 자산 이전을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자는 얘기다. 신 총재는 중앙은행 돈을 기존 화폐제도의 ‘신뢰의 닻’으로 규정하면서, 토큰화는 단순한 전산화가 아니라 자산 정보와 거래 조건, 실행 규칙까지 함께 담아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민간 지급토큰, 즉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름은 같아도 발행 주체의 신뢰가 흔들리면 가치가 불안해질 수 있고, 어느 블록체인 위에서 움직이느냐에 따라 사실상 다른 돈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같은 1원은 언제 어디서나 같은 1원이어야 한다’는 화폐의 단일성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 특히 22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이 마무리된 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포함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서두르는 시점이어서, 한국은행 수장의 이런 발언은 정책 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신 총재는 통합원장의 현실 실험 사례로 한국은행의 ‘프로젝트 한강’을 제시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단계 시험에서 은행 7곳과 함께 예금토큰 발행·유통 체계를 만들고 실제 거래 실험을 진행했다. 올해 하반기 2단계에서는 참여 은행이 9곳으로 늘고 생체인증 같은 편의 기능도 추가된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보조금이나 공공부문 업무추진비 같은 재정 집행에도 적용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신 총재는 한국의 디지털화폐 실험이 주요국 중앙은행보다 약 2년 앞서 있다고 평가하면서, 앞으로는 국채까지 토큰화해 발행·유통·상환 과정을 스마트계약으로 자동화하고, 국제결제은행(BIS)의 ‘프로젝트 아고라’와 연계해 국경 간 외환·증권 결제 비용을 낮추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디지털화폐 논의가 단순한 결제수단 경쟁을 넘어, 중앙은행 신뢰를 축으로 한 차세대 금융시장 인프라 설계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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