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자산(RWA) 토큰화가 빠르게 확산되는 가운데, 시장의 주도권이 ‘퍼프(perp)’로 불리는 무기한 선물로 이동하고 있다. 단순한 디지털 전환을 넘어서, 24시간 거래와 높은 유동성을 앞세운 새로운 파생상품 구조가 시장 판을 바꾸는 모습이다.
토큰화는 이미 블랙록, 피델리티, 프랭클린템플턴 등 대형 금융기관이 참여하며 제도권의 지지를 확보했다. 현재까지 34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이 토큰화됐고, 스테이블코인 등 ‘토큰화된 달러’ 3,000억 달러는 제외된 수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흐름으로 ‘RWA 퍼프’가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2억3,000만 달러 수준이던 RWA 퍼프 거래량은 지난 5월 3,470억 달러로 폭증했다. 약 1,472배 증가다. 7월 기준 탈중앙화거래소(DEX) 일일 미결제약정은 45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5월까지 누적 거래량은 1조3,200억 달러로, 지난해 전체 대비 13배를 넘어섰다.
RWA 퍼프의 급성장은 두 가지 요인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이 원자재나 AI 관련 주식 등 전통 자산에 대한 노출을 원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퍼프 구조 자체가 기존 선물이나 옵션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전통 금융 시장은 거래 시간이 제한돼 있어, 장 마감 이후 발생한 이벤트를 즉각 반영하기 어렵다. 반면 퍼프는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 실제로 중동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됐을 때, 유가는 CME 재개장 이전에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 퍼프 시장에서 먼저 반영됐다.
퍼프는 만기일이 없고, 복잡한 옵션 ‘그릭스’ 계산도 필요 없다. 단순한 구조로도 레버리지 거래와 가격 투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투자자 접근성이 높다.
파생상품 시장이 현물 시장보다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은 금융 시장 전반에서 반복된 패턴이다. 주식, 원자재, 암호화폐 모두 동일한 흐름을 보여왔다. RWA 역시 이 경로를 따르고 있다.
2026년 3월부터 5월까지 하이퍼리퀴드 기준 주식 기반 퍼프 거래량은 토큰화된 주식 현물 대비 최대 20배 많았다. 사용자 수는 아직 현물이 우세하다. 토큰화 주식은 약 18만 지갑, 퍼프는 약 2만4,000 지갑이다.
하지만 성장 속도는 다르다. 퍼프 투자자는 월 평균 33% 증가하는 반면, 현물은 17% 수준이다. 현물 시장의 우위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셈이다.
퍼프 시장이 확장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실험 속도’다. 토큰화 자산은 법적 절차와 승인 과정이 복잡하지만, 퍼프 시장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개설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금융 시장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리IPO 퍼프’다. 일반 투자자가 비상장 기업 가치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다. 지난 5월 상장한 세레브라스(Cerebras)의 경우, 하이퍼리퀴드 프리IPO 퍼프 가격이 354달러를 기록하며 실제 시초가 350달러와 거의 일치했다. 전날 IPO 공모가(185달러)보다 훨씬 정확한 가격 발견 기능을 보여준 것이다.
연초 전체 온체인 퍼프 거래 중 1.3%에 불과했던 RWA 비중은 현재 31%까지 확대됐다. RWA가 퍼프 시장을 흡수하는 동시에, 퍼프가 RWA 시장 자체를 재구성하는 흐름이다.
또한 로빈후드 같은 플랫폼이 유럽에서 RWA 퍼프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전통 브로커리지 시장으로의 확산도 가시화되고 있다. 향후 다른 증권사들도 이를 따라갈 가능성이 크다.
결국 토큰화가 전통 금융으로 확장된 첫 번째 흐름이라면, 퍼프는 그 다음 단계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모든 자산군이 동일한 방식으로 거래되는 환경, 즉 ‘퍼프 중심 시장’이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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