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가 되면 원자재 트레이딩 데스크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수익을 좇던 시선은 순식간에 ‘리스크 관리’로 이동한다. 하지만 최근 이 오래된 질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주말에도 거래가 가능한 ‘암호화폐 영구선물’이 그 흐름을 바꾸고 있다.
전통적으로 트레이더들은 금요일 장 마감 전 포지션을 줄이는 데 집중한다. 주말 동안 전쟁, 선거, 산유국 발표 같은 돌발 변수가 발생해도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CME 그룹의 테리 더피는 “리스크는 요일을 가리지 않는다”고 짚었지만, 시장은 오랫동안 주말에 멈춰 있었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바로 24시간 거래되는 크립토 시장이다. 특히 하이퍼리퀴드(Hyperliquid) 같은 탈중앙화 거래소에서는 원유 가격에 연동된 ‘영구선물(perpetual futures)’ 거래가 주말에도 이어진다. 지난 3월, 이란-이스라엘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 일요일 하루 동안 미결제약정이 12억 달러(약 1조7648억 원)까지 치솟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 주말 거래량은 여전히 평일 대비 적지만, 의미 있는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DWF랩스의 마틴 리는 “최근 3개월 기준 평일 대비 주말 거래량은 2~3배 낮지만, 주말 비중은 약 25%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시장이 ‘주말 공백’을 점차 메우고 있다는 의미다.
이 변화는 특히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옵션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동안 금요일이면 ‘내재 변동성’이 하락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주말 동안 헤지(위험 회피)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트레이더들이 옵션을 미리 정리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주말 효과’다.
하지만 에너지 분석업체 에너지 애스펙트는 “이제 트레이더들이 주말에도 영구선물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금요일 변동성 디스카운트가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속적인 헤지가 가능해지면 옵션을 굳이 미리 팔 이유가 줄어든다.
이론적으로는 새로운 기회도 열린다. 과거에는 주말 동안 가격 급변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이를 활용해 수익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애스펙트는 연속 거래 환경이 구축되면 계약 기간 동안 약 40% 더 많은 헤지 기회가 생긴다고 분석했다.
다만 월가의 대형 기관들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유동성’과 ‘인프라’다. 바이낸스 리서치에 따르면 원유 영구선물 거래량은 기존 선물 시장의 2~4% 수준에 불과하다. 거래 상대방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다.
또 다른 장벽은 금융 시스템 자체다. 은행과 청산 시스템은 여전히 주말에 멈춰 있다. 증거금 이동이나 결제 처리가 제한되기 때문에 기관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비트겟 CEO 그레이시 첸은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수익성과 운영 구조”라고 지적했다.
현재 이 시장은 크립토 네이티브 기업, 프로프 트레이딩 업체,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특히 차익거래나 델타 중립 전략 등에서 활발히 활용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영구선물 시장은 단순 거래 수단을 넘어 ‘가격 신호’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주말 중 발생한 이벤트가 월요일 개장 가격에 어떻게 반영될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 것이다.
결국 이는 전통 금융이 크립토로부터 영향을 받는 드문 사례로 꼽힌다. 시장 규모나 제도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24시간 거래’라는 개념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금요일 마감이 더 이상 기다림의 시작이 아닌 시대. 트레이딩 데스크의 주말은 이미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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