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항로에서 탱커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일일 통과 선박 수는 약 45척에서 13척으로 줄었고,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도 통항량 감소가 확인됐다.
오일프라이스는 14일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주변에서 탱커들이 AIS를 끄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AIS는 선박의 위치와 항로 정보를 외부에 알리는 장치로, 전쟁 위험이나 선박 공격 위험이 높아질 때 선주가 표적 노출을 줄이기 위해 끄는 경우가 있다.
변화는 호르무즈에서 먼저 뚜렷해졌다. Kpler는 7월 23일 보고서에서 전쟁 재개 이후 호르무즈 일일 통과 선박 수가 약 45척에서 13척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감소율은 약 70%다.
같은 기간 실제 통과 선박은 오만 측 대체 경로보다 이란 측 경로로 더 몰렸다. 안전상 우회로로 거론된 항로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면서 공개 위치 데이터만으로는 실제 원유 흐름을 읽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공급 차질 수치도 커졌다. Kpler는 7월 24일 업데이트에서 중동 해역 공급 차질이 하루 880만 배럴을 넘어섰다고 집계했다. 이라크 하루 220만 배럴, 사우디아라비아 230만 배럴, 쿠웨이트 140만 배럴, 이란 130만 배럴 등이 포함됐고 아랍에미리트는 예외적으로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Kpler는 같은 업데이트에서 중동 공급 복구 시점을 2027년 초로 늦췄다. 이 판단은 공개 통항량과 선박 추적 모델에 근거한 분석으로, 실제 선적 물량과 도착지 확인에는 사후 수정 가능성이 남는다.
바브엘만데브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Weathernews는 7월 29일 분석에서 후티의 사우디 선박 봉쇄 발표 이후 9일 동안 바브엘만데브 통과 선박 수가 하루 평균 42.5척에서 32.1척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감소율은 약 24%다.
선종별로는 오일·화학 탱커의 감소 폭이 컸다. 해당 선박의 통과는 하루 평균 13.7척에서 9.4척으로 줄었다. 원유와 석유제품 수송이 홍해와 수에즈 운하 축의 위험을 직접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우디 홍해 항만 얀부의 움직임도 위축됐다. Weathernews는 7월 1~19일 얀부의 정박·접안 탱커 활동이 하루 평균 23척이었으나 7월 24일 7척으로 줄고 7월 25일에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일부 선박이 AIS를 끄고 움직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됐다.
실제 사례도 나왔다. 로이터는 사우디 원유를 싣고 인도로 향하던 탱커 Amazon과 Rodos가 7월 22일께 AIS를 끄고 홍해를 지나 바브엘만데브로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Amazon은 100만 배럴, Rodos는 70만 배럴의 원유를 각각 실은 것으로 보도됐다.
로이터가 인용한 한 소식통은 “선주가 안전 목적으로 선박의 응답기를 껐다”고 말했다. AIS 차단이 곧바로 불법 은폐를 뜻하지는 않는다는 설명이다.
미 해사청(MARAD)도 홍해, 바브엘만데브, 아덴만, 아라비아해, 소말리아 분지에서 AIS를 켠 미국 국적 상선이 표적이 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미국 국적 상선에는 선박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AIS를 끄라고 권고했다.
문제는 시장이 보는 원유 흐름의 정확도다. AIS가 꺼지면 실제 통항 감소인지, 우회 운항인지, 선박 위치 보고가 늦어진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원유 수송량과 도착지, 선적 유지 여부를 추정하는 데이터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구조다.
국내 시장에도 연결 지점이 있다. 한국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수입국이어서 호르무즈와 바브엘만데브의 통항 불안은 운임, 보험료, 항로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14일 기준 시장 반응은 유가 강세로 나타났다. AP와 월스트리트저널은 호르무즈 인근 탱커 공격 이후 브렌트유가 배럴당 약 88달러 수준으로 올랐고 주간 기준 5% 이상 상승했다고 전했다. 다만 AIS 공백이 실제 공급 감소로 얼마나 이어졌는지는 자료별 추정 차이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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