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11억파운드 규모의 AI 하드웨어 계획을 앞세워 자국 반도체 스타트업과 컴퓨팅 인프라 육성에 나섰다. AI 모델 경쟁의 기반이 되는 칩 설계, 추론용 반도체, 슈퍼컴퓨터 조달을 산업정책으로 묶는 방식이다.
영국 과학혁신기술부는 6월 8일 런던 테크 위크에서 AI 하드웨어 계획(UK AI Hardware Plan)을 발표했다. 정부는 AI 뒤에서 작동하는 칩과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는 영국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계획은 △혁신 △기술 인력 △조달 △투자 네 축으로 구성됐다. 가장 큰 항목은 7억5000만파운드 규모의 국가 AI 슈퍼컴퓨터다. 정부가 2030년 배치를 목표로 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차세대 AI 칩 구매에는 4억파운드가 배정됐다. 이 가운데 1억5000만파운드는 올여름 영국 기업의 차세대 추론 칩을 선구매하는 데 쓰인다. 추론 칩은 학습을 마친 AI 모델이 실제 질의에 답하고 서비스를 구동할 때 필요한 반도체다.
정부는 1억2000만파운드를 AI 하드웨어 혁신 프로그램에 투입한다. 이 프로그램은 새 칩을 설계, 개발, 시험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장치다. 인력 지원에는 8000만파운드가 배정됐고, 학부 장학금과 박사과정 지원, 학교 홍보 프로그램 확대가 포함됐다.
자금 조달도 별도 축으로 세웠다. 영국 비즈니스은행(British Business Bank)은 플레이그라운드 글로벌(Playground Global)과 함께 영국 하드웨어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추진하고 있다. 은행은 최대 1억5000만파운드를 약정하는 방안을 두고 실사와 법률 협상을 진행 중이며, 이를 은행 역사상 최대 단일 약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계획은 단순 보조금보다 조달 정책에 가깝다. 정부가 초기 고객이 돼 새 칩의 수요를 만들고, 검증 실험실과 슈퍼컴퓨터 배치를 통해 기술을 실제 인프라에 올리는 구조다. 영국 정부 문서는 자국이 포토닉스, 엣지 AI 추론, 하드웨어 보안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가진다고 봤다.
AI 하드웨어는 통상 학습과 추론, 메모리, 네트워크, 전력 효율이 함께 맞물리는 산업이다. 모델 성능이 높아질수록 실제 서비스 단계에서는 응답 속도와 비용, 전력 소모가 더 큰 제약으로 떠오른다. 정부가 추론 칩과 슈퍼컴퓨터 조달을 함께 묶은 것도 이 구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후속 집행도 이어졌다. 소버린 AI(Sovereign AI)는 8월 3일 영국 AI 칩 스타트업 OLIX에 지분 투자를 했다고 밝혔다. 소버린 AI는 출범 이후 지분 투자 기업이 5곳, 컴퓨트 접근 지원까지 포함한 전체 지원 기업이 11곳이라고 설명했다.
소버린 AI는 같은 달 공개 글에서 출범 3개월 만에 200건이 넘는 신청과 6700만 GPU 시간 요청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소버린 AI는 이 수요를 근거로 지원 스타트업의 컴퓨트 접근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업계 반응은 기대와 경계가 함께 나온다. 영국 비즈니스은행은 플레이그라운드 글로벌과의 협력이 영국 딥테크 스케일업의 자금 병목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복합반도체응용캐터펄트(Compound Semiconductor Applications Catapult)는 AI 하드웨어 계획에 맞춘 반도체 캐터펄트 전환을 환영했다.
오리올 네트웍스(Oriole Networks)는 AMD와 함께 광 네트워크를 쓰는 대규모 AI 시스템 배치를 공개했다. 영국 내 AI 하드웨어 기업의 실증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발표다.
다만 계획이 곧 제조 기반 확대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디언은 영국의 AI 인프라 구상이 산업적 상징성은 크지만, 완전한 반도체 제조공장을 새로 세우는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의회 답변에서도 AI 하드웨어 계획의 전력 수요와 전력망 영향은 추정이 진행 중이라고 적었다.
한국 독자에게도 이번 정책은 AI 인프라 경쟁의 방향을 보여준다. 최근 AI 추론 칩 스타트업의 상용화 검증 이슈처럼 AI 하드웨어 시장은 설계 발표보다 실제 배치, 전력 효율, 고객 검증이 핵심 쟁점으로 옮겨가고 있다. 영국은 이 지점을 정부 조달과 투자로 연결하려는 셈이다.
영국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이 2024/25년 기준 297개 전담 기업, 106억파운드 매출, 1만6350명 고용 규모라고 밝혔다. 정부가 제시한 2030년대 초반 전 세계 AI 칩 시장 5% 확보와 연간 500억달러(약 69조7500억원) 매출 효과는 목표치다. 실제 성과는 칩 조달, 슈퍼컴퓨터 배치, 전력 인프라 검증 속도에 따라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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