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공급 불안과 물가 상승 압력을 반영해 2026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1%로 낮췄다.
EU 집행위원회는 21일 발표한 봄철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4%에서 1.1%로, 2027년은 1.5%에서 1.4%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반대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올해 2.1%에서 3.1%로, 내년은 2.2%에서 2.4%로 올렸다. 경기는 약해지는데 물가는 더 뛰는 방향으로 예상이 바뀐 셈인데, 이는 유럽 경제가 외부 에너지 충격에 그만큼 민감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번 조정의 핵심 배경은 에너지다. 유럽연합은 에너지를 해외에서 많이 들여오는 순수입 경제권이어서, 중동 분쟁이 길어질 경우 유가와 가스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EU 집행위원회는 에너지 가격 급등이 가계의 생활비 부담을 키우고 기업의 생산비를 높여 수익성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결국 유럽 내부에서 쓰일 소득이 에너지 수출국으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나타나면서 소비와 투자 여력이 함께 줄어드는 것이다. 이번 전망치는 지난달 29일 기준 환율과 금리, 국제유가 등 주요 변수를 반영해 산출됐다.
회원국별로 보면 유럽 주요 경제국의 부진이 특히 두드러진다. 경제 규모 1∼3위인 독일은 0.6%, 프랑스는 0.8%, 이탈리아는 0.5% 성장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모두 EU 평균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유럽 경제를 떠받치는 큰 축들이 힘을 쓰지 못하면 역내 전체 회복세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지금 예상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밝혔다. 중동 지역 해상 운송 차질이 유럽 경제 전망의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라는 뜻이다.
에너지 충격을 막기 위한 재정 지출 확대도 새로운 부담으로 떠오르고 있다. EU는 국방비 증액, 이자 비용 증가, 유류비 지원 같은 대응 조치로 회원국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 대비 2025년 3.1%에서 2027년 3.6%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재정 건전성의 모범 사례로 여겨졌던 독일도 대규모 재정 투입의 영향으로 올해 적자 비율이 3.6%까지 오를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회원국 정부 적자가 GDP의 3.0%를 넘으면 시정 조치를 요구하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이탈리아처럼 원래 국가 부채가 많은 나라들은 에너지 위기를 이유로 코로나19 대유행 때와 같은 재정 준칙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유럽연합은 성장 둔화, 물가 상승, 재정 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 압력에 놓인 모습이다. 앞으로 중동 정세와 에너지 가격 흐름이 안정되지 않으면 성장률 추가 하향과 재정 규율 논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에너지 시장이 빠르게 진정되면 물가 부담이 완화되면서 유럽의 경기 회복 속도도 다시 조정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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