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원유와 석유제품 재고가 2026년 5월 말 기준으로 22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줄어들면서, 미·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공급 불안이 미국 내부 재고 지표로도 본격 확인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이 3일(현지시간) 공개한 주간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미국의 전체 원유 재고와 석유제품 재고는 전략비축유를 포함해 15억7천만배럴로 집계됐다. 일주일 전보다 1천60만배럴 감소한 수치로, 2004년 5월 이후 가장 낮다. 이 가운데 상업용 원유 재고는 4억3천370만배럴로 한 주 새 800만배럴 줄었는데, 이는 로이터가 집계한 시장 예상치인 400만배럴 감소의 두 배 수준이다. 단순한 계절적 변동이라기보다 공급 차질과 수요 이동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전략비축유도 빠르게 줄고 있다. 같은 기준일 미국의 전략비축유는 3억5천712만배럴로 1주 전보다 800만배럴 감소해 2024년 1월 이후 가장 적은 수준을 기록했다. 블룸버그의 에너지·원자재 칼럼니스트 하비에르 블라스는 현재와 같은 방출 속도가 이어지면 전략비축유가 다음 주 후반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의 최저치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비축량은 198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 된다. 지난 2월 말 전쟁이 시작된 뒤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비축유 약 5천800만배럴을 시장에 공급했는데, 전체 비축분의 약 14%에 해당한다. 전략비축유는 원래 전쟁이나 공급 중단 같은 비상 상황에 대비한 안전판인데, 이를 빠르게 꺼내 쓰고 있다는 점은 시장 불안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재고 감소를 키운 직접적 요인 가운데 하나는 수출 급증이다. 선박 추적 자료를 분석한 케이플러 등의 집계에 따르면 5월 미국의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560만배럴로, 종전 최고였던 4월의 하루 평균 520만배럴을 넘어섰다. 중동 지역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자 아시아와 유럽의 정유사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미국산 원유 확보에 나선 영향이 컸다. 여기에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한동안 국제 기준유인 브렌트유보다 더 싸게 거래되면서 가격 경쟁력도 높아졌다. 다만 3월 한때 배럴당 20달러 안팎까지 벌어졌던 두 유종의 가격 차는 이날 종가 기준 1.79달러로 크게 좁혀져, 미국산 원유의 가격 메리트는 예전보다 줄어든 상태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재고가 더 얇아질 경우 유가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엑손모빌의 닐 채프먼 수석부사장은 지난달 28일 뉴욕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원유 선물시장이 이란 전쟁에 따른 공급 위기를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글로벌 원유 재고가 향후 2∼3주 안에 매우 낮은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으며, 그 지점에 도달하면 가격이 급등하는 장면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호르무즈해협 봉쇄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누적으로 10억배럴 이상의 공급 공백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이 비축유 방출과 수출 확대를 계속 이어갈지, 또 중동 해상 운송 차질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에 따라 국제유가와 인플레이션 흐름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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