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이란 멜라트은행과의 자금조정예금 거래를 중단한 책임을 두고 1심에서 100억원 배상 판결을 받으면서, 향후 소송 범위가 확대되면 전체 배상 규모가 1천억원대로 불어날 가능성이 제기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는 지난달 28일 멜라트은행이 한국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한국은행이 100억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한국은행이 2019년 5월 멜라트은행과의 자금조정예금 거래를 끊은 조치가 정당했는지 여부다. 자금조정예금은 금융기관이 하루 단위의 남는 자금을 한국은행에 맡기고 이자를 받는 초단기 예금 제도로, 중앙은행과 금융회사 사이의 자금 운용 창구 가운데 하나다.
멜라트은행은 2018년 6월 한국은행과 관련 약정을 맺었고, 같은 해 10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조치와 관련해 특별제재대상자, 즉 에스디엔(SDN) 명단에 올랐다. 한국은행은 이후 거래 중단을 요청했지만, 실제로는 멜라트은행이 거래를 다시 시작한 뒤 약 7개월 동안 거래를 이어갔다. 재판부는 이 대목을 중요하게 봤다. 한국은행이 뒤늦게 소송 과정에서 미국의 2차 제재 위험을 거래 중단의 주된 이유로 내세웠지만, 에스디엔 지정 이후에도 상당 기간 거래를 계속한 만큼 당시에 제재 위험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수준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법원은 한국은행이 내세운 다른 사유인 ‘다른 금융기관과의 거래실적 부족’도 거래 중단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내부 규정과 약정 내용을 따져보면 해당 사유만으로 거래를 멈출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반면 한국은행은 당시 금융권 전반에 대이란 제재 리스크가 널리 인식돼 있었고, 멜라트은행 서울지점도 사실상 정상 영업이 어려운 상태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말한 거래실적 부족 역시 단순한 실적 문제가 아니라, 에스디엔 지정 이후 영업활동이 사실상 멈춘 상황을 반영한 표현이었다는 주장이다.
배상 규모를 둘러싼 부담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 재판부는 자금조정예금 거래가 계속됐다면 멜라트은행이 얻을 수 있었던 이자 수익이 1천54억5천여만원에 이른다고 봤다. 다만 이번 소송에서 멜라트은행은 전체 손실 가운데 우선 100억원만 일부 청구했고, 이 부분만 받아들여졌다. 멜라트은행은 최종 판결 흐름을 지켜본 뒤 남은 이자 손실액에 대해서도 추가 소송을 검토할 방침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일 항소장을 냈고, 100억원 배상금 집행을 멈춰달라는 강제집행정지 신청도 5일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이 같은 흐름은 항소심에서 거래 중단 사유의 적법성, 미국 제재 위험의 실제성, 그리고 중앙은행의 재량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지를 놓고 더 치열한 법리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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