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사실상 종전에 합의하면서 중동발 충격은 다소 잦아들었지만, 한국 경제는 당장 안도하기보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남긴 부담을 더 오래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오는 19일 종전 양해각서 서명을 앞두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 기대가 커지면서 국제유가는 급등세에서 한발 물러섰다. 15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84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는 81달러 선으로 내려왔다. 다만 금융시장에서 가격이 먼저 진정되는 것과 실제 원유 공급이 정상화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쟁으로 손상된 중동 산유국의 생산시설을 복구하고 막혔던 물류 흐름을 회복하는 데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휴전이나 종전이 이뤄져도 당분간 배럴당 90달러 이상의 고유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고,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도 공급 회복까지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2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국내 물가 부담도 쉽게 꺾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그 영향은 바로 소비자 가격에 반영되기보다 수입물가와 생산자물가를 거쳐 시차를 두고 번진다. 실제로 올해 4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8.43으로 전월보다 2.5% 올라 1998년 2월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수입품을 포함한 국내공급물가지수도 한 달 사이 5.2% 뛰었다. 기업이 부담하는 원가가 커졌다는 뜻이고, 이는 시간이 지나면 생활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환율도 변수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로 올라선 상황에서는 국제유가가 다소 내려도 원화 기준 수입단가가 충분히 낮아지지 않을 수 있다. 중동 리스크 완화가 외환시장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는 있지만, 최근 원화 약세의 배경에는 외국인 주식 순매도 같은 다른 요인도 있어 환율이 빠르게 진정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구조에서는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부담이 다시 소비자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고, 통화당국의 금리 인상 압박도 커진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연내 두 차례 이상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 나아가 7월 큰 폭 인상이나 7·8월 연속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이자 부담은 물론 자금 여력이 약한 중소·영세기업의 경영 부담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성장률 측면에서는 종전 효과가 있더라도 반등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2.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 등 주요 기관의 올해 성장률 전망에는 이미 하반기 유가 안정과 지정학적 긴장 완화 기대가 일부 반영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준석 교수는 추가 성장률 개선 폭이 0.1~0.2%포인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한국은행도 지난 5월 28일 수정경제전망에서 미국과 이란 협상이 타결되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빠르게 재개되면 올해와 내년 성장률이 기본 전망보다 각각 0.1%포인트 높아지고, 물가상승률은 올해 0.2%포인트, 내년 0.3%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한편 정부가 한시적으로 시행해온 석유 최고가격제도 국제유가 안정 여부에 따라 정상화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석 달 넘게 유지된 가격 통제로 정유업계 누적 손실이 약 4조원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나오는 만큼, 앞으로는 물가 안정과 시장 기능 회복 사이에서 정책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저작권자 ⓒ TokenPo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