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자들이 강화된 대출 규제와 경기 부진의 이중 압박 속에서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나면서, 지난해 불법사금융 이용 규모가 최대 1조5천500억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나왔다. 제도권과 등록 대부업체에서조차 대출이 막히자 생계비와 기존 빚 상환 자금을 마련하려는 취약 차주들이 더 위험한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이 28일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3년 안에 대부업이나 사금융을 이용한 저신용자 977명 가운데 59.4%가 등록 대부업체에서 대출 신청을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연구원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하던 저신용자 중 약 5만9천명에서 11만9천명이 불법사금융으로 옮겨간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이 불법사금융에서 빌린 금액은 7천600억원에서 1조5천500억원 수준으로 분석됐는데, 이는 전년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규모다.
이 같은 이동은 대출 시장 내부의 구조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나이스평가정보에 자료를 제공하는 43개 대부업체의 신규 대출 차주가 19만6천명, 대출금액이 2조900억원이었다고 설명했다. 1금융권과 2금융권에서 밀려난 차주 가운데 상대적으로 신용 상태가 나은 사람들이 대부업으로 유입되면서, 대부업체가 더 취약한 저신용자에게는 한층 보수적으로 대응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하위 50% 저신용자의 대부업체 대출 승인율은 전년보다 0.5%포인트 낮아진 9.1%로 집계됐고, 불법사금융 이동률은 5.2%에서 7.5%로 높아졌다.
불법사금융으로 흘러 들어간 자금의 용도는 투자나 소비 확대가 아니라 생활 유지에 가까웠다. 조사에서 대출 목적은 기초생활비가 41.0%로 가장 많았고, 기존 빚을 다른 빚으로 막는 이른바 돌려막기가 26.1%를 차지했다. 특히 20대는 등록 대부업체와 불법사금융을 동시에 이용하는 비율이 8.9%로 가장 높았다. 청년층이 소득 기반은 약한데 급전 수요는 큰 상황에서, 제도권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하면 위험한 금융에 중복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제는 상당수 이용자가 자신이 불법사금융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분명히 인식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불법사금융임을 알고도 빌렸다는 응답은 2023년 77.7%에서 지난해 50.9%로 크게 낮아졌다. 주부와 아르바이트생 같은 금융 취약계층에서 비자발적 이용이 늘어난 데다, 대부업 이용자 55.8%는 업체 이름만 보고 등록 대부업체와 불법사금융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등록 대부업체에서 대출이 거절된 차주를 정책금융, 채무조정, 복지 프로그램으로 곧바로 연결하는 금융 안전망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불법 업체를 쉽게 가려낼 수 있는 식별 표식을 보완하고, 충동적인 대출이나 과도한 채무를 줄이기 위해 소비자가 스스로 대출 차단을 신청할 수 있는 한국형 대출 자율 통제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흐름은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취약 차주에 대한 제도권 공급이 더 위축될 경우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서민금융 정책의 사각지대를 얼마나 빨리 메우느냐가 앞으로의 핵심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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