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채 안전자산 프리미엄 약화 진단

| 이도현 기자

미국 국채에 붙던 안전성과 유동성 프리미엄이 약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채권시장은 미국 정부 부채를 과거보다 위험한 자산으로 다시 평가하지만, 미국 정책 당국은 여전히 국채를 무조건 안전한 자산으로 보는 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하노 루스틱(Hanno Lustig)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는 8월 20일 공개된 애스펀 경제전략그룹 논문 ‘America’s Risky Debt: What Markets See That Policymakers Don’t’에서 이같이 밝혔다. 논문은 채권시장과 정책 당국이 미국 정부 부채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핵심은 시장과 당국의 인식 차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국채의 안전성, 유동성, 달러 결제 기반에 값을 더 쳐줬다. 그러나 루스틱 교수는 최근 이 프리미엄이 약해졌고, 채권 투자자와 통화·재정 당국의 평가가 갈라졌다고 봤다.

당국의 시각은 ‘안전 부채’ 관점에 가깝다. 미국 정부 채무는 미래 세수로 상환되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다. 이 관점에서는 미국 국채가 금융시스템 안에서 위험이 거의 없는 기준 자산처럼 취급된다.

이런 인식은 은행 규제에도 반영된다. 미국 은행은 금리 위험이 큰 장기 국채를 보유하더라도 국채라는 이유로 추가 자본을 쌓지 않아도 된다. 국채가 언제나 안전하고 유동성이 높다는 판단이 규제 체계의 기본값으로 들어가 있는 셈이다.

반면 시장은 다른 신호를 내고 있다. 루스틱 교수는 미국 국채가 AAA 등급 미국 회사채나 다른 나라 국채 같은 대체 자산보다 더 비싸게 거래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미국 국채가 과거처럼 확실한 프리미엄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산 간 상관관계 변화도 근거로 제시됐다. 미국 주식과 채권은 과거 위기 국면에서 대체로 반대로 움직였지만, 최근에는 양의 상관관계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주식이 흔들릴 때 국채가 자동으로 피난처 역할을 해주는 구조가 약해졌다는 진단이다.

외환보유액 운용 흐름도 달라지고 있다. 루스틱 교수는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관리자들이 달러 표시 자산에서 벗어나 다변화하고 있다고 봤다. 이는 미국 국채의 안전자산 지위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시장 신호로 해석된다.

국채시장 구조 변화도 부담으로 제시됐다. 미국 국채의 잔존 만기 구조는 짧아지고, 프라이머리 딜러의 충격 흡수 기능은 약해졌다. 가격 변화에 민감한 헤지펀드의 시장 비중이 커진 점도 구조적 취약성으로 꼽혔다.

프라이머리 딜러는 통상 국채 발행과 유통시장에서 중개 기능을 맡는 금융기관이다. 시장이 흔들릴 때 매수·매도 주문을 받아내며 가격 급변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기능이 약해지면 국채 매도세가 단순한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재정 신뢰에 대한 가격 신호로 읽힐 수 있다.

루스틱 교수는 “미국 국채를 여전히 안전자산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당국자들은 재정적 요인으로 나타나는 국채 매도세를 단순한 채권시장 유동성 문제로 오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재정 당국이 부채 지속 가능성을 판단할 때 봐야 할 시장 신호가 통화정책 개입으로 흐려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 억압 논점도 이어진다. 공공 부채가 계속 늘어나는 환경에서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리 상승을 억제하면, 의회에 재정 규율을 요구하는 시장의 가격 신호가 약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채금리가 정부 부채의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부채 누적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한국 투자자에게도 이 논점은 멀지 않다. 미국 국채금리는 달러 유동성, 원화 환율, 위험자산 선호를 함께 흔드는 기준 가격이다. 앞서 본지는 미국 장기 국채 수요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암호화폐 시장과도 연결된다.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은 달러 기준으로 거래되는 대표 위험자산인 만큼 금리와 달러 흐름의 영향을 받는다. 국채가 더 이상 일방적인 안전자산으로만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위험자산 전반의 할인율과 유동성 해석도 달라질 수 있다.

논문은 해법으로 △국채시장 기능 장애의 사전 기준 공개 △연준과 재무부의 새 합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예측 모델에서 국채를 무조건 안전자산으로 보는 관행 중단 △국채시장 중개 구조 개편을 제시했다. 미국 국채 프리미엄 약화 진단은 단순한 채권시장 논쟁을 넘어 달러 기반 금융질서의 가격 신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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