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개월 원유 선물 집중…장기물 유동성 약화

| 김하린 기자

중동과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원유 선물 거래가 3~6개월 만기에 집중되고 장기물 유동성이 약해지고 있다. 정제제품 시장에서는 헤지펀드가 9월 1일 기준 휘발유와 중간유분 선물·옵션 주요 계약에서 총 1억7700만 배럴 규모의 순매수 포지션을 보유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건스탠리는 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석유회의(APPEC)에서 트레이더들이 장기 가격을 예측하기보다 단기 위험을 선별하는 방식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브렌던 로스(Brendan Ross) 모건스탠리 글로벌 원유거래 공동대표는 “위험을 더 정밀하게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스 공동대표는 트레이더들이 향후 3~6개월 구간의 선물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보다 만기가 긴 계약은 유동성이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전쟁의 지속 기간과 원유 공급 영향을 가늠하기 어려워 장기 포지션의 손실 위험을 줄이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APPEC 공식 일정에는 로스 공동대표가 9일 가격 변동과 제재, 공급 흐름 변화에 대한 트레이더의 대응을 주제로 한 패널에 참석할 예정으로 기재돼 있다. 회의는 7일부터 10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열린다.

장기 계약은 미래 가격을 반영하고 헤지 수요를 소화하는 통로다. 참여자가 줄면 매수·매도 주문 간 간격이 넓어져 작은 거래에도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 있다.

장기물 유동성 약화는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거래가 가까운 만기에 쏠리면 시장 참가자들은 먼 시점의 공급과 수요보다 당장 확인되는 전쟁 상황과 공급 차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번 움직임은 유가 전망 자체보다 위험을 부담하는 기간이 짧아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장기 포지션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확신이 약해지면서 만기별 거래 여건의 차이가 커진 셈이다.

정제제품 시장에서는 원유보다 강한 투기적 포지션이 나타났다. 존 켐프는 9월 1일 기준 시장 자료에서 헤지펀드가 휘발유와 중간유분 선물·옵션 주요 계약에서 총 1억7700만 배럴 규모의 순매수 포지션을 보유했다고 집계했다.

이 포지션은 2011년 이후 모든 주간 관측치 가운데 84번째 백분위에 해당한다. 정제제품의 공급 불안이 원유 자체보다 거래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다만 휘발유와 중간유분의 순매수 포지션만으로 향후 유가 방향을 확정할 수는 없다. 포지션은 시장 참가자들의 한쪽 방향 베팅을 보여주지만 실제 가격은 공급 차질과 수요 변화, 전쟁 전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선물시장에서 유동성은 원하는 가격에 계약을 사고팔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만기가 먼 계약에서 참여자가 줄면 주문이 얇아지고 거래 비용과 가격 변동성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이 구조는 국내 투자자에게도 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원유 선물 가격은 국내 원유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에 반영될 수 있지만, 선물 만기 교체와 선물 곡선에 따라 현물 유가와 ETF 수익률 사이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앞서 원유 선물 가격이 국내 원유 ETF 수익률에 반영된 사례에서도 선물 가격과 투자자 자금 흐름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번 사례 역시 선물시장 포지션과 실제 투자 결과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전쟁과 공급 차질 변수가 이어지는 동안 트레이더들이 장기 계약을 기피하면 장기 가격 발견 기능이 약해지고 단기 계약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만기가 긴 계약으로 거래가 다시 분산될 가능성도 있다.

APPEC는 10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이후 전쟁 상황과 공급 흐름 변화가 원유 선물의 만기별 유동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질 전망이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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