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바란다] ⑤ K-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통한 대한민국 통화 위상의 제고

| 정구태

디지털자산, 이제 국가가 답할 차례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본지 기고를 통해, 새정부가 디지털경제 주도권 확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5회에 걸쳐 제시한다. [편집자주]

전 세계는 지금 디지털자산을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큰 일반 디지털자산과 달리, 원화나 달러 등 실물통화에 연동되어 있어 가치가 안정적이며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과 국가들이 앞다퉈 이를 발행하고 유통망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적 정의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제도적 논의가 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화폐 시대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법과 정책이 기술과 시장보다 뒤처진 현실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지금의 무대응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이 디지털 금융의 소비국이 아닌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이 결정적 전환점이다.

K-스테이블코인은 단순히 글로벌 기업이나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에 대응하는 방어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원화를 디지털 시대에 맞게 진화시키고, 우리 금융산업의 역량을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는 전략적 도구이다. 특히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 금융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서 K-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이는 단순한 화폐의 확산을 넘어, 한국 경제의 영향력을 함께 수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혁신성과 공공성이 공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이 스테이블코인을 주도하되, 공공은 원칙과 감시 체계를 통해 투명성과 신뢰를 확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기업이 책임 있게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감독기관은 기준과 이행력을 제도화함으로써 건전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막기보다 관리하고, 감시하기보다 유도하는 방식이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해법이다.

K-스테이블코인이 실제 생활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기존 지급결제 인프라와의 유기적 연결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카드사, PG사, VAN사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활용해 소비자와 가맹점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결제 구조를 마련한다면 시장의 자연스러운 수용이 가능하다.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결제 시스템에 기술적으로 녹여내고,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시장과의 상생 전략이다.

지방정부와의 협력 또한 중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현재 다수의 지자체가 운영 중인 지역화폐 시스템을 K-스테이블코인 기반으로 전환하거나 통합할 경우, 복지 예산의 디지털화, 지역경제 활성화, 행정 효율성 제고 등 다양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역에서의 성공 경험은 향후 해외시장 진출 시 중요한 정책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의 관계 설정도 명확히 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주도하는 디지털 화폐이고, CBDC는 국가가 발행하는 공공 화폐이기에 두 제도는 본질적으로 다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스테이블코인은 확장성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시장에 빠르게 확산될 수 있으며, CBDC는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성과 공공성을 통해 기축 질서를 유지한다. 따라서 두 체계는 경쟁 관계가 아닌,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결국 K-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디지털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원화의 새로운 가능성이며,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 전략이다. 디지털 시대의 통화 주권을 지키고,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의 통화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제도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법과 제도를 조속히 정비하고, 실생활에 밀착된 활용 사례를 창출하며, ‘한국다운’ 스테이블코인을 국제사회에 선보여야 한다. 전 세계가 디지털 통화를 주목하는 지금, 원화가 디지털 시대의 글로벌 화폐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스테이블코인을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