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2010년대 초반, 이 짧은 알림음 하나가 대한민국의 커뮤니케이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 이전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폴더폰을 열고 자판을 눌러가며 문자 한 통에 30원, 사진 한 장 보내면 수백 원씩 빠져나가던 시절. 새해 첫날이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지인 수십 명에게 보내다 문자 요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장문 메시지(LMS)를 보낼까 말까 요금을 계산하며 망설이던 그 시절, 우리는 '메시지를 보내는 데 돈이 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런데 카카오톡이 등장하자, 그 "당연함"이 무너졌다. 데이터만 있으면 무료. 사진도, 동영상도, 단체 채팅도 무료. 통신사들은 문자 매출이 절벽처럼 떨어졌고, 사람들은 "왜 지금까지 메시지에 돈을 냈지?"라고 되물었다. 기존의 질서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이 한순간에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렸다.
지금, 같은 일이 '돈을 보내는 행위'에서, 그리고 '돈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서 일어나려 하고 있다.
메신저 위에 돈이 올라탄다
지난 2월 24일, Meta가 2026년 하반기에 WhatsApp, Instagram, Facebook 전 플랫폼에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통합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전 세계 35억 명이 매일 사용하는 플랫폼에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올라가는 것이다. Meta는 외부 업체에 이미 RFP(제안요청서)를 발송했으며, 2024년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 Bridge를 11억 달러에 인수한 Stripe가 유력한 파트너로 거론되고 있다.
핵심적인 변화가 있다. Meta는 2019년 리브라(Libra)라는 자체 암호화폐를 만들겠다며 미 의회와 글로벌 규제당국의 총공세를 맞고 좌초한 전력이 있다. 저커버그 자신이 "그 프로젝트는 죽었다"고 인정했을 만큼 뼈아픈 실패였다. 이번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체 코인 대신 USDC, USDT 같은 기존 스테이블코인을, 제3자 파트너를 통해 통합한다. 2025년 7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GENIUS Act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최초의 연방 규제 프레임워크를 마련하면서, 법적 안전망도 생겼다.
블록체인 기업 Cosmos Labs의 매그너스 마레넥 공동CEO는 WhatsApp이 인도, 브라질, 동남아시아 등에서 결제의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지역에서는 수억 명이 매일 WhatsApp으로 상거래를 하면서도 전통적 은행 서비스에서 소외되어 있다. 해외 송금 한 번에 붙는 수수료와 며칠씩 걸리는 정산 시간. 스테이블코인은 이 비용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
조지타운대학교의 짐 엔젤 교수는 Meta가 이미 거대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위에 결제 네트워크를 얹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회의론도 존재한다. IDC Global의 애런 프레스 리서치 디렉터는 Meta의 35억 사용자라는 숫자가 인상적이지만 소셜 결제와 소셜 소통을 결합하는 것은 소수 시장을 제외하면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며, 스테이블코인이 이 본질적 어려움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는 이미 DeFi 인프라를 사들이고 있다
그런데 Meta의 움직임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진짜 주목해야 할 것은 월스트리트의 핵심 기관들이 더 이상 블록체인을 '관망'하지 않고, DeFi(탈중앙화 금융) 인프라를 직접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2026년 2월 11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자사의 토큰화 미국 국채 펀드 BUIDL(운용 규모 약 24억 달러)을 탈중앙화 거래소 Uniswap의 기관 거래 인프라인 UniswapX에 상장했다. 토큰화된 국채를 24시간, 스마트 컨트랙트 기반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블랙록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Uniswap의 거버넌스 토큰 UNI를 직접 매입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가 DeFi 프로토콜의 거버넌스 지분을 보유하게 된, 전례 없는 사건이다.
이틀 뒤인 2월 13일에는 9,380억 달러 규모의 대체투자 거인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Apollo Global Management)가 온체인 대출 프로토콜 Morpho와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아폴로는 향후 48개월에 걸쳐 최대 9,000만 MORPHO 토큰(전체 공급량의 약 9%)을 매입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DeFi 대출 인프라의 거버넌스에 직접 참여하겠다는 선언이다. 같은 주에 시타델 시큐리티즈(Citadel Securities)도 LayerZero의 블록체인 'Zero' 출범을 지원하며 ZRO 토큰을 매입했고, ParaFi Capital은 솔라나 기반 DEX인 Jupiter에 3,5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들은 단순히 크립토 자산에 투자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실제로 사용할 DeFi 인프라의 거버넌스 지분을 사들인 것이다. Sentora의 뉴스레터는 이 흐름을 두고 "테스트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월스트리트는 이제 "탈중앙화 프로토콜 위에서 토큰화된 자산을 직접 거래하고 대출하고 있다."
한편, 미국 자본시장의 중추인 DTCC(Depository Trust & Clearing Corporation)의 행보는 더욱 근본적이다. 2025년 12월, DTCC는 SEC로부터 No-Action Letter를 받은 직후 Digital Asset 및 Canton Network과 파트너십을 발표하고, DTC에 수탁 중인 미국 국채를 Canton Network 위에서 토큰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026년 상반기 MVP(최소기능제품)를 목표로 하며,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산업 전반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DTCC는 동시에 Canton Foundation의 공동의장으로 취임해 유로클리어(Euroclear)와 함께 탈중앙화 금융 인프라의 거버넌스를 주도하게 됐다.
2025년 7월에는 Bank of America, Circle, Citadel Securities, DTCC, Tradeweb, Virtu Financial 등이 참여한 워킹그룹이 Canton Network 위에서 토큰화된 미국 국채를 담보로 USDC를 활용한 24시간 온체인 레포(repo) 거래를 최초로 성사시켰다. 주말에도, 영업시간 외에도, 실시간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2026년 2월, 불과 지난 몇 주 사이에 벌어졌다. 블랙록이 Uniswap을, 아폴로가 Morpho를, DTCC가 Canton을 선택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전통 금융의 가장 깊은 곳에서, 블록체인 인프라로의 대전환이 시작된 것이다.
한국은 이 영화를 이미 본 적이 있다
사실 한국인은 "메신저 위에 결제가 올라타는 장면"을 이미 실시간으로 목격한 세대다.
카카오톡이 무료 메시지로 통신의 질서를 뒤집은 뒤, 카카오페이는 2014년부터 그 채팅창 안에 결제와 송금을 심었다. 계좌번호 모르는 친구에게도 채팅방에서 바로 돈을 보내고, 바코드 하나로 편의점에서 결제하고, 공과금을 카톡 알림으로 납부한다. 한국의 5,200만 인구 중 4,800만 명이 쓰는 메신저가 곧 국민 지갑이 된 것이다. 해외에서 WeChat Pay를 부러워할 때, 한국은 이미 자기만의 "슈퍼앱" 생태계를 조용히 완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카카오톡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깔린 하나의 인프라에 닿는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한복판.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에게 경제 회복의 묘안을 물었다. 손 회장의 대답은 전설이 됐다. "첫째도 브로드밴드, 둘째도 브로드밴드, 셋째도 브로드밴드." 빌 게이츠도 같은 자리에서 "브로드밴드가 정답"이라고 화답했다. 김 대통령은 약속했고, 실행했다. 1998년 1만 4천 명에 불과했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4년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가구 보급률 54.3%는 당시 영국(0.8%), 일본(6.3%), 미국(13.1%)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수치였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에 고속도로를 깔아 산업의 혈맥을 열었듯, 김대중 정부는 '정보 고속도로'를 깔아 디지털 경제의 혈맥을 열었다. 당시에는 "인프라만 깔면 뭐하냐"는 회의론이 거셌다. 하지만 그 인프라 위에서 PC방 문화가 폭발했고, 온라인 게임 산업이 태어났고, 네이버와 다음이 뿌리를 내렸고, 2010년에 카카오톡이 꽃을 피웠다. 한양대 윤영민 교수의 회고처럼, 인프라가 깔리자 "제대로 된 콘텐츠와 서비스의 혜택"이 비로소 시작됐다.
폴더폰 문자 요금 → 카카오톡 무료 메시지 → 카카오페이 간편송금. 되돌아보면 하나의 매끄러운 선으로 이어지지만, 각 단계에서 그 다음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프라가 먼저 깔리고, 그 위에서 상상하지 못한 서비스가 자라나는 것. 이것이 한국이 직접 경험한 디지털 전환의 문법이다.
이번에는 돈의 인프라가 바뀐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 문법이 '통신'에서 '금융'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폴더폰 시절 문자 한 통에 30원을 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해외 송금에 수만 원의 수수료를 내고 있다. 필리핀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고향에 100달러를 보내면 7~10달러가 수수료로 사라진다. 한국에서 미국 프리랜서에게 소액 대금을 지급할 때도 은행 전신환 수수료, 환전 마진, 중개은행 수수료가 겹겹이 쌓인다. 며칠씩 걸리는 정산 시간은 덤이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폴더폰 시절 문자 요금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처럼.
스테이블코인은 이 "당연함"에 균열을 내고 있다. 달러에 1:1로 연동된 디지털 토큰이 블록체인 위에서 국경을 넘어 거의 실시간으로,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이동한다. Stripe의 2025년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결제 볼륨은 전년 대비 두 배 증가해 약 4,000억 달러에 달했다. 시가총액 3,000억 달러를 넘어선 이 시장에 Meta, 블랙록, 아폴로, DTCC가 동시에 뛰어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단순히 '송금 수수료가 싸진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블랙록이 토큰화 국채 펀드를 Uniswap에 올리고, DTCC가 미국 국채를 블록체인에서 토큰화하고, 아폴로가 온체인 대출 프로토콜에 거버넌스 지분을 확보한다는 것은, 자본시장의 근간 인프라 자체가 블록체인 레일 위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채권 발행, 거래, 결제, 담보 관리까지 — 금융의 '배관(plumbing)'이 통째로 교체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금융은 준비되어 있는가
여기서 한국에 던져지는 질문이 있다.
첫째, 글로벌 DeFi 인프라 선점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 블랙록은 Uniswap의 거버넌스 토큰을 샀다. 아폴로는 Morpho의 지분 9%를 확보했다. 시타델은 LayerZero에 투자했다. DTCC는 Canton Network의 공동의장에 올랐다. 이들이 사들인 것은 단순한 크립토 자산이 아니라, 미래 금융 인프라의 '지분'이다. 한국의 증권사와 금융기관은 이 경쟁에서 어디에 서 있는가? 국내에서는 미래에셋증권이 하나금융·SK텔레콤과 '넥스트파이낸스이니셔티브(NFI)'를, 신한투자증권이 '프로젝트 펄스(PULSE)'를, NH투자증권이 'STO 비전그룹'을, KB증권이 'ST 오너스'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토큰증권(STO)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 하반기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2026년부터 토큰증권이 정식 시행될 법적 토대도 마련됐다.
하지만 핵심적인 우려가 있다. 블록미디어의 분석처럼, 한국형 STO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의 폐쇄형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퍼블릭 블록체인과 스테이블코인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RWA(실물자산 토큰화) 흐름과는 방향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랙록이 이더리움 기반 Uniswap에서 토큰화 국채를 거래하고, DTCC가 퍼블릭 블록체인인 Canton Network에서 미국 국채를 토큰화하는 동안, 한국의 STO 인프라가 '갈라파고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글로벌 자본이 퍼블릭 블록체인 위에서 24시간 유동성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 한국만 폐쇄형 네트워크에 갇혀 있다면 글로벌 자본 접근성과 유동성 모두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둘째,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선견지명이 필요하다. 미국은 GENIUS Act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연방법을 마련했다. 1:1 준비금 의무, 자금세탁방지(AML) 규정, 소비자 보호 기준이 명시됐다. 한국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발행과 유통에 대한 법적 프레임워크는 아직 부재하다. 금융권 관계자들도 "STO 시장의 결제 수단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지만, 정작 그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유통할 규제 틀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김대중 정부가 초고속인터넷에서 보여준 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인프라가 깔리면 그 위에 무엇이든 자란다"는 확신에 기반한 선제적 정책 설계였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금융 인프라에도 같은 수준의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셋째, 증권사와 금융기관은 DeFi 인프라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 블랙록과 아폴로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크립토 투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사용할 인프라의 거버넌스 지분을 선점하는 전략이다. 한국의 대형 금융기관들도 글로벌 퍼블릭 블록체인 프로토콜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참여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신한투자증권이 솔라나 재단과 협력하고, 한화투자증권이 RWA 발행 플랫폼을 준비하는 것은 좋은 출발이지만, 글로벌 DeFi 인프라의 거버넌스에 직접 참여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인프라의 규칙을 만드는 자리에 앉지 못하면, 결국 남이 만든 규칙 위에서 플레이해야 한다.
다시, 알림음 하나가 세상을 바꿀 때
폴더폰의 문자 요금이 카카오톡의 알림음 앞에 무너졌을 때, 사라진 것은 문자 요금만이 아니었다. 통신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스테이블코인과 온체인 금융이 기존 금융의 비효율을 무너뜨릴 때 사라지는 것은 수수료만이 아닐 것이다. 돈이 움직이고, 자산이 거래되고, 자본시장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바뀔 것이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이 하나로통신 사장과 ADSL 영상통화를 시연하던 날, 그것이 카카오톡으로 이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 카카오톡이 처음 알림음을 울리던 날, 그것이 4,800만 명의 지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인프라의 본질은 언제나 그렇다. 깔리는 순간에는 과잉으로 보이지만, 그 위에서 꽃피는 것은 항상 예상을 초과한다.
블랙록이 Uniswap을 택하고, DTCC가 Canton을 택하고, Meta가 WhatsApp에 스테이블코인을 심는 지금, 글로벌 금융 인프라의 새로운 '정보 고속도로'가 깔리고 있다. 한국은 브로드밴드 시대에 세계가 놀라는 속도로 달렸다. 메신저 결제 시대에도 카카오톡으로 앞서 달렸다. 이제 온체인 금융이 여는 새로운 시대. 한국의 금융기관과 규제당국이 다시 한번 먼저 달릴 수 있을지, 아니면 이번에는 따라가는 쪽이 될지. 그 대답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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