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3는 금융, 디지털 자산 및 신기술 분야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제도권 거래를 설계해 온 전문가 집단이다. 공동 저자인 윤현근(블록체인 운영 전문가), 김태림(법률·규제 전문 변호사), 티모시 신(글로벌 금융 파트너십 전략가)이 2026년 2월 출간한 『토큰화(TOKENIZATION)』를 바탕으로, 한국 독자를 위한 5편 연재를 통해 토큰화의 본질과 한국 금융의 전략적 선택을 이야기한다. [편집자주]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어디든 1초 만에 송금하는 시대다. 그런데 주식 거래의 정산에는 왜 아직도 이틀이 걸릴까?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흐름을 왜 수십 년 된 장부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할까?
이것이 우리가 『토큰화(TOKENIZATION)』를 쓰기로 결심한 첫 번째 질문이었다.
낡은 엔진 위에 쌓인 디지털 인터페이스
오늘날의 금융은 편리해 보인다. 앱 하나로 주식을 사고, 해외 송금을 처리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십 년 전 설계된 메인프레임과, 수많은 중개 기관들의 반복적인 검증 절차가 작동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디지털 금융은 낡은 인프라 위에 얹힌 인터페이스에 불과하다.
현대 자본시장은 이제 이 방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전 세계 자본이 국경을 넘나드는 속도에 비해, 거래 체결 후 실제 권리가 확정되기까지 꼬박 이틀이 소요되는 'T+2 정산 구조'는 아날로그 시대의 유물이다. 그 시간적 공백 동안 묶여 있는 자금은 막대한 기회비용이자 낭비다.
블랙록이 던진 질문
2024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이더리움 네트워크 위에서 토큰화 펀드 'BUIDL'을 출시했다. 래리 핑크 회장은 "자산의 토큰화가 금융의 차세대 혁명"이라 선언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금융 상품이 출시된 사건이 아니다. 전통 금융의 거인이 수십 년간 지탱해 온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운영체제(OS)로 이주해야 할 때임을 전 세계에 공표한 것이다.
불과 1년여 만에 BUIDL의 운용자산은 25억 달러를 돌파했다. 토큰화 국채 시장 점유율 44%를 장악하며,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토큰화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이 토큰화를 "자산을 디지털 숫자로 바꾸는 기술"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놓친 시각이다.
토큰화(Tokenization)란, 자산의 권리와 계약 관계를 분산 원장 기반의 디지털 단위(Token)로 전환하여, 발행부터 정산·담보 설정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데이터 상태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핵심은 새로운 자산의 발명이 아니라, 기존 금융 자산을 더 정교하고 투명하게 표현하는 '방식의 전환'에 있다. '장부의 분리'에서 '상태의 공유'로의 이동이다. 자산이 스스로 소유권을 증명하고, 조건이 맞으면 자동으로 대금을 결제하는 '지능형 가치 조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사후 검증에서 실시간 확정으로
과거의 금융이 수많은 기관이 각자의 장부를 대조하고 검증하는 '사후 조정(Reconciliation)의 언어'를 사용했다면, 토큰화는 거래와 정산이 동시에 완결되는 '실시간 확정의 언어'를 지향한다. 이는 금융 서비스가 빨라지는 기능적 개선을 넘어,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 구조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JP모건은 이미 'Kinexys' 네트워크를 통해 매일 20억 달러 이상의 기업 간 자금을 분산 원장 위에서 실시간으로 정산하고 있다. 기존의 폐쇄적인 정산망이 제공하지 못했던 24시간 실시간 유동성 관리라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한국에 던지는 질문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촘촘한 금융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토큰화라는 거대한 담론 앞에서는 여전히 '이것을 해도 되는가'라는 불확실성 속에 멈춰 있는 듯 보인다.
이제 우리는 소극적인 질문을 버려야 한다.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금융의 미래를 설계할 것인가'. 이 결단이 늦어질수록, 우리는 남이 만든 시스템 위에서 비싼 이용료만 지불하는 단순 사용자로 남게 될 것이다.
장부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흐름의 시대가 시작됐다.
다음 편에서는 전 세계 금융 강국들이 토큰화를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킨 이유, 그리고 글로벌 규제 수렴의 현주소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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