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관세 강경 발언을 올리면 비트코인이 수천 달러씩 빠진다. 유가가 뛰면 또 빠진다. 연준 의장이 입을 열면 또 빠진다. 화면 속 숫자가 곤두박질칠 때마다 해설가들은 한목소리로 읊는다.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작동했다"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양 반복될 때,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비트코인이 과연 지금 시장에서 비트코인으로 거래되고 있는가.
이것이 핵심 질문이다.
시장은 복잡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자산 앞에서 투자자들은 본능적으로 단순화한다. 비트코인은 '위험자산'이라는 서랍에 넣어두면 편하다. 나스닥이 오르면 같이 오르고, 트럼프가 협박하면 같이 떨어지는 것. 그렇게 정의해두면 포지션을 잡기도, 손절을 결정하기도, 보고서를 쓰기도 수월해진다.
문제는 그 서랍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어떤 국가도, 어떤 중앙은행도 발행하지 않는다. 총발행량은 2,100만 개로 영구히 고정돼 있다. 4년마다 채굴 보상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는 인간의 정책 결정과 무관하게 알고리즘에 새겨져 있다. 국경도, 허가도, 검열도 통하지 않는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한다. 이것은 금융 시스템에 대한 기술적 대안이자, 국가 화폐에 대한 철학적 항의다.
이러한 특성들이 트럼프의 트윗 한 줄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시장은 날마다 그 본질을 잊는다. 아니, 잊는 것이 아니라 애써 보지 않으려 한다. 알고리즘은 나스닥 선물이 빠지면 비트코인 매도 신호를 낸다. 레버리지 포지션이 청산되면 가격이 더 빠지고, 가격이 더 빠지면 공포가 퍼지고, 공포가 퍼지면 더 많은 물량이 쏟아진다. 이 순환이 몇 번 반복되고 나면, '비트코인은 위험자산'이라는 명제는 자명한 진리처럼 굳어진다.
여기서 기묘한 역설이 생긴다. 내러티브가 가격을 만들고, 가격이 다시 내러티브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장은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현실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이를 두고 경제학자들은 '자기실현적 기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기실현은 영원하지 않다. 이야기와 현실의 간극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균열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2022년 내내 비트코인은 나스닥의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위험자산 상관관계'는 철칙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23년 초, 은행들이 잇따라 흔들릴 때 비트코인은 오히려 강하게 튀어올랐다. 전통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시장은 갑자기 비트코인의 다른 얼굴을 다시 발견했다. '위험자산'이라는 서랍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비트코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시장이 그것을 바라보는 렌즈였다.
렌즈가 바뀔 때마다 가격은 격렬하게 재조정된다. 그 재조정의 순간에 포지션을 잘못 잡고 있던 투자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손실을 입는다. '위험자산'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믿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둘러싼 내러티브는 지금도 계속 교체된다. 어떤 시기엔 '디지털 금'이고, 어떤 시기엔 '투기 자산'이며, 어떤 시기엔 '제도권 편입 자산'이 된다. 각각의 이야기는 일부 진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비트코인의 전부가 아니다.
시장이 하나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동안, 비트코인의 다른 속성들은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현실이 이야기를 배반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시장은 뒤늦게 가격을 고쳐 쓴다. 우리가 '급등' 혹은 '급락'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대부분 그런 순간이다.
투자자라면 이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지금 내가 거래하는 것이 비트코인인가, 아니면 비트코인에 관한 오늘의 이야기인가.
두 가지는 같아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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