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이(DeFi) 시장이 과거의 고이율 중심 성장 국면을 지나 실물자산(RWA)과 수익 내장형 스테이블코인(YBS)을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에이브(Aave) V3의 USDC 예치금리가 2026년 4월 기준 약 2.7%로 미국 10년물 국채 4.3%를 밑도는 등 디파이의 전통적 수익 매력이 약화됐지만, 온체인 RWA와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오히려 수백억 달러 단위로 확대되며 구조적 진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때 디파이 시장은 은행 예금을 크게 웃도는 이자와 토큰 보상으로 리테일 자금을 빨아들였다. 그러나 현재는 사정이 달라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이후 디파이와 국채 간 금리 스프레드는 사실상 0에 수렴했고 일부 구간에서는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온체인 이용자가 해킹, 디페그, 스마트컨트랙트 취약점 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제도권 금융보다 낮은 수익률을 받는 구조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시장 자체가 축소된 것은 아니다. 디파이의 표면 금리는 낮아졌지만, 미국 국채와 머니마켓펀드, 사모신용, 금, 부동산 등 실물 기반 자산을 토큰화한 RWA와 스테이블코인 부문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동성 확대가 아니라, 토큰 인센티브 대신 외부 현금흐름에 기반한 수익 구조로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같은 전환은 기존 디파이 참여자뿐 아니라 새롭게 진입하는 기관에게도 중요하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기관들이 온체인 시장에 진입하면서도 과거 디파이 커뮤니티가 축적한 실패와 실험의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전통 금융의 문법만 이식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디파이의 1차 성장기는 토큰 인센티브가 주도했다. 2020년 컴파운드(Compound)는 거버넌스 토큰 COMP를 예치자와 차입자에게 배분하며 대규모 유동성을 끌어들였다. 일부 구간에선 차입 비용보다 토큰 보상이 더 커 ‘빌릴수록 돈을 버는’ 구조까지 형성됐다. 이 과정에서 이더리움 네트워크 가스비가 급등했고, 디파이 서머라는 상징적 국면이 열렸다.
하지만 이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토큰 보상이 줄거나 신규 자금 유입이 둔화되자 유동성은 빠르게 이탈했다. 시장은 ‘수익의 원천이 자체 토큰인 구조는 외부 자본이 끊기는 순간 무너진다’는 사실을 학습했다.
커브(Curve)는 또 다른 방향의 실험이었다. 커브는 veCRV 모델을 통해 장기 락업 참여자에게 더 큰 투표권과 보상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 경쟁의 핵심은 단순한 수익률이 아니라 수익률을 배분하는 ‘권한’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컨벡스(Convex) 같은 메타 프로토콜이 등장해 사용자 대신 권한을 집중시켰고, 디파이 거버넌스 역시 결국 특정 주체에 집중될 수 있다는 현실을 드러냈다.
올림푸스DAO(OlympusDAO)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였다. 프로토콜 소유 유동성과 3,3 게임이론, 수십만 퍼센트에 달하는 APY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지만, 실질 수익보다 신규 토큰 발행에 크게 의존한 구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OHM 가격 급락 이후 시장은 ‘높은 수익률’보다 ‘그 수익이 실제로 어디서 발생하는가’를 먼저 묻기 시작했다.
이후 디파이 참여 방식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여러 프로토콜에 동시에 자산을 분산 예치하며 높은 보상을 좇는 수평적 파밍이 주류였다. 그러나 토큰 인센티브의 지속 가능성이 약해지고 에어드롭 경쟁이 심화되면서 단순 분산 예치만으로는 기대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대신 하나의 자산을 여러 층위에서 활용하는 수직적 전략이 부상했다. 대표 사례가 아이겐레이어(EigenLayer)와 펜들(Pendle)이다. 아이겐레이어는 이미 스테이킹된 이더리움(ETH)이나 유동성 스테이킹 토큰을 다시 활용하는 리스테이킹 구조를 통해 자본 효율을 높였고, 약 6개월 사이 총예치자산(TVL)이 4억 달러 미만에서 188억 달러까지 급증했다. 펜들은 수익 자산을 원금 권리와 수익 권리로 분리해 포인트와 미래 수익에 대한 거래를 가능하게 하며 새로운 파생형 파밍 전략을 만들었다.
이는 디파이가 단순한 고이율 예치 시장에서 보다 정교한 자본 구조 시장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시장의 핵심 화두는 RWA다. 블랙록, 프랭클린템플턴, JP모건 등 전통 금융기관은 미국 국채, 머니마켓펀드, 사모 크레딧 같은 오프체인 자산을 토큰화해 온체인 유통 채널로 옮기고 있다. 블랙록의 BUIDL과 프랭클린템플턴의 BENJI는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상품이다. 특히 BENJI는 비교적 낮은 진입 장벽을 제공해 리테일 접근성도 확보하고 있다.
기관 입장에서 온체인은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라기보다 새로운 ‘유통 채널’에 가깝다. 따라서 KYC, AML, 커스터디, 법적 관할권, 리스크 관리 체계가 함께 요구된다. 이는 기존 디파이의 무허가성 중심 설계와는 다른 차원의 인프라 구축을 뜻한다.
이와 맞물려 수익 내장형 스테이블코인(YBS)도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온도 USDY, 스카이 sUSDS, 에테나 sUSDe, 블랙록 BUIDL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자산은 보유 자체만으로 기초 자산에서 발생한 수익이 누적되며, 미국 국채, 펀딩비, 스테이킹 수익, 머니마켓펀드 수익 등이 그 기반이 된다.
중요한 차별점은 조합 가능성이다. 보고서는 BUIDL이 에테나의 USDtb 준비자산의 90%를 구성하고, USDtb가 다시 에이브(Aave)에서 담보로 쓰이는 구조를 예로 들었다. 이는 RWA가 단순 복제 자산을 넘어 온체인 금융의 기초 담보와 유동성 엔진으로 기능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과거 디파이를 ‘콘센트 없는 멀티탭’에 비유했다. 토큰 인센티브라는 제한된 배터리를 돌려 쓰며 레버리지와 파생상품을 쌓아 올렸지만, 외부 현금흐름이 부재한 구조는 시장 충격 앞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RWA는 채권 이자, 부동산 임대료, 무역 금융 수익처럼 현실 경제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온체인으로 연결해 실제 ‘전력망’을 제공한다.
이 전환 과정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맡는 플레이어들도 등장했다. 테오(Theo)는 어떤 자산을 온체인에 연결할지 결정하는 자산 선정자 역할을 수행한다. 대표 상품인 thBILL은 기관급 토큰화 미국 단기국채 바스켓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향후 금 기반 자산과 YBS 확장도 예고했다.
플룸(Plume)은 발행, 컴플라이언스, 유통, 수익 상품화까지 아우르는 인프라를 제공한다. 플룸 위에서 운영되는 네스트(Nest)는 기관급 RWA 수익을 스테이블코인 예치 형태로 일반 온체인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볼트 구조를 운영한다. 위즈덤트리, 아폴로 글로벌, 인베스코 등 전통 금융 참여자들이 관련 자산을 들여오며 이 생태계는 확대 중이다.
모포(Morpho)는 자산을 담보와 대출 기능으로 연결하는 계층이다. 아폴로의 ACRED 같은 토큰화된 사모신용 펀드를 담보로 스테이블코인을 차입할 수 있게 하면서, 기관 자산이 단순 보유 대상이 아니라 실제 온체인 금융의 재료가 되도록 만든다.
디파이 시장이 더 이상 고수익과 즉각적 보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은 일부 투자자에게 매력 감소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시장이 성숙 단계로 이동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최근 켈프다오(Kelp DAO) rsETH 사태 이후 결성된 ‘DeFi United’와 에이브(Aave)의 공동 대응 사례는 손실 보전과 책임 분담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보여준 장면으로 평가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4월 28일 기준 이들은 유출 규모 1억9000만 달러를 넘어서는 3억 달러 이상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 디파이가 빠른 수익과 유동성 이동에 집중한 무책임한 실험의 장이었다면, 이제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리스크를 떠안고 시스템을 유지할지를 설계하는 시장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의미다. 타이거리서치(Tiger Research)는 디파이라는 단어 자체의 힘은 약해지고 있지만, 렌딩과 스테이블코인, 리스테이킹, 온체인 크레딧, RWA처럼 더 구체적인 영역으로 분화된 실험들이 오히려 실제 자산을 굴리는 금융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멘트’ 디파이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토큰이 토큰을 떠받치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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