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트코인 떠난 한국 개미, 더 큰 레버리지로 반도체에 베팅하다

| 권성민

한동안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국 개인투자자는 가장 충성스러운 세력이었다.

2017년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이래, 한국 개미는 비트코인의 양방향 변동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이었다. 펀더멘털 분석보다는 모멘텀에 올라타는 단타 문화, 그리고 해외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수준의 레버리지 선호 성향이 결합해 한국은 글로벌 크립토 시장에서도 독특한 위상을 차지해왔다. 분 단위로 10% 변동이 일어나는 장세에서도 거래량이 끊이지 않던 곳이 한국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수년간 코스피 지수와 유사한 궤적을 보이던 비트코인 가격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코스피는 사상 최고치를 향해 가파르게 상승했고, 비트코인은 정체 국면에 머물렀다. 모멘텀에 민감한 한국 개인 자금이 더 강력한 상승 동력을 가진 곳, 즉 메모리 반도체 주식으로 이동한 결과다.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주가가 본격적인 랠리를 시작한 시점은 정확히 코스피·비트코인 디커플링이 시작된 시점과 일치한다.

23억 매수, 그중 17억이 신용… '블라인드'가 드러낸 단면

최근 한국 증시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과거 어떤 상승장과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8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한 공무원이 올린 게시물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SK하이닉스에 23억 원을 투자한 증권계좌 스크린샷이 첨부됐는데, 이 중 17억 원이 증권사 신용융자로 조달된 금액이었다.

작성자는 "반도체 시장이 2028년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자산 증식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방식을 택했다"고 적었다. 나흘 뒤인 5월 12일, 그는 이미 2억 6,700만 원의 평가이익을 확보했다는 후속 글을 올렸다.

같은 날 20대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게시물도 화제가 됐다. "이번 랠리를 놓치느니 파산을 감수하겠다"며 신용융자를 활용해 풀 레버리지 포지션을 구축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금요일 기준 신용공여 잔고는 36조 4,700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과거 2020~2021년 '동학개미운동' 당시 25조 원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크게 증가한 수치다.

증권사 이자수익 6,000억 원, 1년 만에 56% 급증

신용융자 급증의 수혜는 증권업계로 집중됐다.

국내 10대 증권사(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키움·NH투자·KB·신한투자·하나·메리츠·대신)가 올해 1분기 신용공여 이자수익으로 거둔 금액은 합산 약 6,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9% 증가했다.

신용융자는 보유 주식·예수금을 담보로 증권사로부터 매수자금을 차입하는 거래로, 연 7~9% 수준의 이자가 부과된다. 담보 비율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증권사는 반대매매를 통해 채권을 회수하기 때문에, 급락장에서는 강제 청산 매물이 시장 하락을 가속화하는 트리거가 된다.

코스피 4,000에서 8,000까지… JP모건은 1만 포인트 제시

코스피는 지난해 말 4,000선에서 출발해 반년도 안 돼 8,000선을 돌파했다. 연초 대비 상승률은 약 75%, 그중 3분의 2 이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서 발생했다.

JP모건은 5월 1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코스피 베이스 케이스 목표치를 9,000, 불 케이스를 1만 포인트로 상향 조정했다. AI 수요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장기 사이클을 근거로 "사이클 종료를 미리 예단하지 말고 추가 상승에 대비한 포지션을 유지하라"고 권고했다.

브로커리지, 보험, 지주회사, 고배당주 등이 주요 수혜 섹터로 지목됐다.

시장 폭 좁아지고, 2차전지·소재 PER 60~300배

낙관론과 별개로 시장 내부에서는 과열 신호가 쌓이고 있다.

3주 전 70%에 달했던 코스피 50일 이동평균선 상회 종목 비율은 33%로 떨어졌다. 52주 신고가를 기록하는 종목은 메모리·반도체 중심의 단 2%에 불과하다. 지수는 신고가를 갱신하지만, 상승의 폭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비테크 종목들의 이익 기여도도 미미하다. BNP파리바 아시아태평양 현금주식 리서치 헤드 윌리엄 브래튼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이후 12개월 이익 증가분에서 비테크 기업이 차지한 비중은 4%에 그쳤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는 2차전지·전기차 관련 소재 섹터의 과열이 두드러진다. 12개월 선행 PER이 평균 60배에 근접하고, 포스코퓨처엠은 300배를 상회한다. 블룸버그 집계 기준 포스코퓨처엠은 코스피 종목 중 매도 의견이 가장 많은 종목이기도 하다.

뉴욕 소재 퍼스트이글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크리스천 헥 매니저는 "지수를 사는 것은 더 이상 한국 시장에 대한 분산 투자가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에 대한 집중 베팅"이라며 "선별적 접근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장의 경고,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임박

금융감독원장 이찬진은 지난 월요일 소비자 리스크 대응 회의에서 개인투자자 손실 가능성을 직접 언급했다.

특히 다음 주 도입 예정인 단일종목 레버리지·인버스 ETF가 고위험 상품으로의 자금 쏠림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 사항으로 제시했다. 신용잔고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상황에서 추가 레버리지 수단이 시장에 풀리는 셈이다.

코스피 VIX의 이상 신호, 일일 4.5% 변동성 가격 반영

지난 화요일 코스피는 약 5% 급락하며 아시아 주요국 증시 중 가장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 여파로 반도체주가 일제히 하락한 결과다. 지수는 단기 상승 추세선과 21일 이동평균선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더 주목할 만한 신호는 변동성 지수의 이상 행동이다. 통상 주가가 상승하면 변동성은 하락하지만, 최근 코스피는 주가와 변동성이 동시에 상승하는 이른바 '멜트업' 국면을 형성했다. 콜옵션 매수 폭증과 FOMO 심리가 결합한 결과로, 시장에서는 흔치 않은 패턴이다.

현재 변동성 수준은 향후 일일 지수 변동폭을 4.5%로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신용을 통한 레버리지 포지션을 보유한 투자자 입장에서는, 단 하루의 변동성만으로도 마진콜 구간에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다.

외국인 9거래일 연속 순매도, 받아내는 건 개미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외국인은 9거래일 연속 코스피를 순매도했으며, 화요일에는 테크 섹터에서만 34억 달러어치를 처분했다. 기관은 장중 매도 우위를 보이다 소폭 순매수로 마감했고, 이 매수 또한 테크에 집중됐다.

외국인 매도 물량을 흡수한 주체는 개인투자자다. 신용잔고 36조 원의 정점에서, 사실상 자기 자본보다 빌린 자금으로 외국인 차익실현 매물을 받아내고 있는 구조다.

[2025년~2026년 연초 이후 KOSPI 투자자 유형별 순매수 차트.]

비트코인을 떠난 자금, 더 큰 베팅 앞에 서다

이번 코스피 광풍에는 디지털 자산 시장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사점이 담겨 있다.

한국 개인투자자가 비트코인을 떠난 핵심 이유는 변동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강한 상승 모멘텀을 좇아 자금을 이동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 이동의 종착지에서 벌어지는 일은 비트코인 시장이 가장 과열됐던 시기보다 더 극단적인 양상을 보인다.

신용잔고 36조 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 코스피 VIX의 일일 4.5% 변동성 프라이싱, PER 60~300배의 2차전지·소재주 —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수준의 레버리지와 밸류에이션 왜곡이 현물 주식 시장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비트코인 시장에서 손실은 자기 자본 한도 내에서 끝났지만, 신용융자 기반의 주식 투자에서는 자기 자본의 100%를 초과하는 손실이 가능하다. 150% 신용을 활용한 투자자는 주가가 40% 하락하면 원금을 모두 잃고 추가 채무가 발생한다.

코스피가 AI 사이클의 상징에서 시장 스트레스의 진원지로 바뀌는 순간, 그 충격은 단순한 자산 감소가 아닌 채무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매매가 반대매매를 부르는 연쇄 청산 구조 속에서, 개인투자자가 입을 손실의 규모는 과거 어느 사이클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을 떠난 한국 개미들이 비트코인보다 훨씬 비싼 수업료를 치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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