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트의 시대 ] ① '볼트(Vault)'는 ETF 2.0인가

| 알파리포트

월가와 디파이(DeFi) 진영에서 동시에 회자되는 표현이 있다. "볼트는 ETF 2.0이다." 최근 여러 디지털자산 보고서는 ETF와 볼트를 서로 다른 시대의 금융 래퍼로 비교하며, 그 구조적 유사성과 인프라 차이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 30년 금융을 규정한 그릇이 ETF였다면, 다음 10년의 그릇은 볼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볼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또렷하게 답할 수 있는 시장 참여자는 많지 않다. 본지는 두 차례에 걸쳐 볼트의 실체와 위험, 그리고 '보관(custody)의 나라' 한국이 마주한 제도적 충돌 지점을 짚는다.

■ 볼트란 무엇인가

볼트는 한마디로 온체인 투자 비히클(vehicle)이다. 여러 투자자의 예치금을 한데 모아(pooling), 사전에 정의된 전략에 따라 자본을 굴린다. 전략은 스마트컨트랙트로 완전히 자동화될 수도 있고, 사람(운용자)이 배분을 지시하되 블록체인을 집행·회계 레일로 쓰는 재량형일 수도 있다.

핵심은 예치자가 받는 것이다. 투자자는 자금을 넣는 대가로 자신의 지분과 수익에 대한 권리를 나타내는 셰어 토큰(share token)을 받는다. 펀드 수익증권의 온체인 버전인 셈이다. 기능적으로 볼트는 대출·유동성·토큰화 자산 전략에 표준화된 방식으로 접근하게 해주는 '관리형 펀드'에 가깝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전략은 예치 규모(TVL) 순으로 ▲스테이킹·리스테이킹 ▲가상자산 담보대출 ▲실물자산(RWA) 수익형 ▲크립토 수익 및 일드 애그리게이터로 정리된다. 이 가운데 스테이킹, 담보대출, 일드 등 크립토 네이티브 활동이 전체 예치금의 약 94%를 차지한다. 아직은 압도적으로 '코인판 안의 도구'라는 뜻이다.

■ 진짜 혁신은 수익률이 아니라 '포장'에 있다

볼트를 ETF에 빗대는 이유는 수익률 자체가 아니다. '포장(packaging)'의 혁신이다.

ETF가 분산투자 전략을 일반 투자자가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표준화한 것처럼, 볼트는 복잡한 디파이 전략을 '예치하고 인출하는' 단순한 경험으로 압축한다. 이용자는 대출 프로토콜의 작동 원리, 담보 관리, 유동성 풀, 리밸런싱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그 복잡성은 볼트가 뒤에서 처리한다.

여기서 새로운 분업 구조가 드러난다. ▲투자자는 자본을 대고 ▲큐레이터(curator)는 배분 전략과 위험 파라미터를 정의하며 ▲프로토콜은 기초 수익을 창출하고 ▲스마트컨트랙트는 집행과 회계를 자동화한다. ETF에서 투자자가 개별 종목이 아니라 '운용사·전략·지수'를 고르듯, 볼트 투자자도 개별 포지션이 아니라 '운용자(큐레이터)·전략·위험 프레임워크'를 선택한다. 국내 투자자에게 익숙한 언어로 바꾸면, 액티브 ETF를 고를 때 운용역의 트랙레코드와 보수, 편입 종목군을 보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

■ ETF와 볼트, '같은 논리 다른 인프라'

동일한 논리. 다른 인프라.

두 그릇의 결정적 차이는 자산을 누가 들고 있느냐다.

ETF에서는 투자자가 법정화폐로 셰어를 사면, 펀드매니저가 전략을 운용하고, BNY멜론·스테이트스트리트 같은 수탁사(custodian)가 전통 증권을 보관한다. 중개되고(intermediated), 보관이 중앙화된 구조다.

볼트에서는 투자자가 USDC·ETH 같은 디지털자산을 예치하면, 큐레이터가 전략을 굴리고, 스마트컨트랙트가 자산을 보관한다. 감사받고(audited), 온체인에서 투명하며, 비수탁(non-custodial)이다. "같은 논리, 다른 인프라"라는 한 줄이 두 그릇의 관계를 정확히 요약한다.

바로 이 '비수탁'이라는 단어가 하편의 핵심 쟁점이 된다. 라이선스 수탁사가 자산을 '보관'하는 것을 제도의 출발점으로 삼는 한국 규제 환경과, 스마트컨트랙트가 자산을 들고 사람이 들지 않는 볼트의 설계 철학은 정면으로 부딪치기 때문이다.

■ 숫자가 말하는 성장 — 24조에서 131조로

볼트의 가능성은 성장 속도가 증언한다. S&P글로벌에 따르면 볼트 전체 예치금은 2023년 4월 약 240억 달러에서 2026년 4월 약 1,310억 달러(약 180조 원)로 불었다. 3년 만에 5배를 웃돈다.

다만 구성을 보면 시장은 여전히 초기다. 예치금 증가 곡선은 스테이킹·담보대출 중심의 크립토 네이티브 활동이 거의 전부를 떠받치는 형태이고(아래 누적 영역 차트가 보여주는 구조), RWA 수익형은 아직 가느다란 띠에 불과하다. S&P글로벌이 "장기적으로 RWA 응용이 볼트의 지배적 용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근거가 여기 있다. 크립토 시장보다 훨씬 큰 전통 금융시장에 볼트가 적용될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 예치자(Depositors) : 자본 공급자. 개인·기업은 물론 다오(DAO)와 투자 펀드까지 포함된다.

- 자본 사용자(Capital users) : 크립토 볼트에서는 담보를 팔지 않고 레버리지·유동성을 얻으려는 트레이더가 대부분이다. RWA 볼트에서는 온체인 유통을 원하는 자산 오리지네이터와 오프체인 차입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 큐레이터(Curators) : 투자 위임 범위를 정하고, 편입 가능한 시장을 고르고, 익스포저 한도를 설정하며 리밸런싱을 감독한다. RWA 볼트가 커질수록 이 역할은 전통 포트폴리오 매니저에 점점 가까워진다.

- 감독 제공자(Oversight providers) : '가디언(guardian)' 또는 '센티넬(sentinel)'로 불리는, 신탁 관리인에 준하는 견제 장치다. 큐레이터가 전략이나 핵심 위험 파라미터를 함부로 바꾸지 못하도록 제동을 건다.

- 인프라 제공자 : 수탁사, 오라클, 감사인, 리스크 엔진, 데이터·플랫폼 운영자 등 볼트를 기관이 쓸 수 있게 만드는 연결 조직이다.

작동 방식은 단순하다. 예치금이 모이면 스마트컨트랙트가 큐레이터가 설정한 배분·위험 한도를 강제하고, 자본 사용자는 그 한도 안에서 유동성을 끌어 쓴다. 발생한 이자·수수료·보상은 볼트에 쌓이고, 예치자는 이자 또는 셰어 토큰 가치 상승으로 수익을 돌려받는다.

■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볼트가 'ETF 2.0' 후보로 거론되는 또 다른 이유는 기관의 발걸음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아폴로(Apollo)는 탈중앙 대출 프로토콜 모포(Morpho)의 거버넌스 지분을 최대 9%까지 확보하기로 했고, 비트와이즈(Bitwise)는 모포 위에서 큐레이터로서 온체인 일드 볼트를 출시했다. 블랙록·코인베이스·서클·갤럭시는 볼트가 의존하는 온체인 스택의 각 조각을 직접 쌓고 있다. 윈터뮤트(Wintermute) 등 전통 금융과 크립토 양쪽의 검증된 플레이어가 시장에 들어오면서, 볼트 산업은 규모와 경쟁의 차원이 한 단계 올라서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기관이 볼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두 가지 특성으로 압축된다. 첫째, 온체인 투명성이다. 볼트의 배분과 전략은 분기 보고서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공개·검증된다. 둘째, 조합 가능성(composability)이다. 단 하나의 볼트 연동만으로 여러 대출 프로토콜·수익원·유통 채널을 표준 인터페이스로 연결할 수 있다. 단순한 사용자 경험, 전문적 위험 관리, 온체인 투명성, 비수탁 소유 — 이 네 가지가 기관의 관심을 끄는 매력의 정체다.

■ 그래서, 한국은?

인프라는 갖춰졌고, 기관의 관심은 빠르게 커지고 있으며, 경쟁의 초점은 이제 "온체인 수익을 더 넓은 시장으로 가져갈 신뢰받는 유통 계층(distribution layer)을 누가 만드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코스피 상장사의 법인 가상자산 투자 길이 열리고, 한국은행과 금융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지금, 이 질문은 한국 시장에도 그대로 도착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마찰이 기다리고 있다. 볼트는 설계상 '비수탁'인데, 한국의 제도는 라이선스 수탁사의 '보관'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KODA·KDAC·BDACS로 대표되는 국내 커스터디 산업과, 사람이 자산을 들지 않는 볼트는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 하편에서 본격적으로 다룬다.

(2편 「볼트는 한국에 상륙할 수 있는가 — 커스터디 의무와 비수탁 설계의 충돌」로 이어집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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