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미국 동부시간 장 마감 직후,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공모가를 주당 135달러로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X는 12일 ‘SPCX’라는 종목명으로 나스닥에 입성할 예정이다.
규모는 압도적이다. 약 5억5560만 주를 팔아 750억 달러를 조달하고, 상장 후 기업가치는 약 1조7500억 달러에 달한다. 2019년 사우디 아람코가 세웠던 294억 달러 규모의 기업공개 기록을 두 배 반 이상 뛰어넘는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IPO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겉으로 보면 월가의 축제다. 투자은행이 주관하고, 나스닥이 무대를 제공하며,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자가 줄을 선다. 그러나 이 상장을 가장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장은 따로 있다. 암호화폐 시장이다.
스페이스X 상장은 암호화폐 시장에 두 가지 상반된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이 거대한 IPO가 비트코인의 유동성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다른 하나는 “블록체인이 월가보다 먼저 기업가치를 매기는 새로운 가격 발견 인프라가 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비트코인을 압박하는 거대한 자금 이동
지금 비트코인은 약하다. 6월 11일 현재 6만100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고, 며칠 전에는 2024년 이후 처음으로 6만 달러 선을 잠시 밑돌았다. 연초 대비로는 약 33% 하락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도 올해 누적 31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금리, 달러, 규제, 투자심리 모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원인은 자금 이동이다. 돈이 더 뜨거운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암호화폐와 고성장 기술주는 같은 위험자산 바구니에 들어 있다. 투자자들이 공격적으로 돈을 굴릴 때는 둘 다 오른다. 반대로 더 매력적인 투자처가 나타나면 한쪽에서 돈이 빠져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지금 그 이동의 중심에 스페이스X가 있다.
스페이스X는 공모 물량의 약 30%, 금액으로는 225억 달러어치를 개인투자자에게 배정했다. 일반적인 IPO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여기에 OpenAI, 앤트로픽 같은 대형 인공지능 기업들까지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 말까지 초대형 IPO들이 빨아들일 위험자본이 2400억 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본다.
비트코인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투자자금이 더 인기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스페이스X를 사기 위해 비트코인을 파는 투자자가 생긴다. 비트코인이 다음 유망주의 매수 자금으로 동원되는 셈이다.
상장 이후의 수급도 부담이다. 스페이스X가 상장 15일 뒤 나스닥100에 편입될 경우, 전 세계 패시브 펀드들은 기계적으로 이 주식을 사야 한다. 예상 매수 규모는 220억~270억 달러다. 7월 초 이 강제 매수를 앞두고 기관투자가들이 미리 포지션을 잡는다면, 암호화폐 시장에는 추가 압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스페이스X IPO를 비트코인 유동성의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시장 구조가 만들어낸 현실적인 부담이다.
그러나 가격은 월가보다 블록체인이 먼저 매겼다
하지만 같은 사건의 뒷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있다. 스페이스X의 가격을 월가의 개장 종보다 먼저 매긴 곳은 블록체인이었다.
지난 5월 18일, 하이퍼리퀴드 기반 거래 플랫폼 Trade.xyz는 스페이스X 프리IPO 무기한 선물을 약 150달러에 상장했다. 이는 스페이스X의 기업가치를 약 1조7800억 달러로 본 가격이었다.
이 상품은 한때 216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조정을 받았지만, 6월 10일 기준 157~162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공모가 135달러보다 여전히 16~20% 높은 가격이다. 누적 미결제약정은 2억1500만 달러, 누적 거래대금은 하이퍼리퀴드와 바이낸스 등을 합쳐 약 22억 달러에 달했다.
물론 이렇게만 보면 투기처럼 보일 수 있다. 아직 상장하지도 않은 회사 주가를 미리 사고파는 듯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 주식을 받는 것도 아니다. 가격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에 가깝다.
그런데 무시하기 어렵다. 앞선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반도체 기업 세레브라스의 프리IPO 무기한 선물은 나스닥 상장 직전 실제 시초가와 거의 비슷한 가격을 가리켰다. 상장 직전 1시간 거래량가중평균은 실제 시초가와 1.2% 차이에 불과했다. 상장 직전 1분 가격도 2.8% 이내였다.
공개시장에 아직 상장되지 않은 기업의 적정 가격을 온체인 파생시장이 상당히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니다. 자본시장의 핵심 기능인 가격 발견이 새로운 곳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코인베이스와 크라켄도 프리IPO 무기한 선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Blockchain.com 역시 OTC 데스크를 통해 SPCX 관련 시장 접근을 제공한다. 상장 후에는 이런 프리IPO 상품이 일반 무기한 선물이나 토큰화 주식 형태로 전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핵심은 간단하다. 요즘 세계적인 기업들은 과거보다 훨씬 오래 비상장 상태로 머문다. 공개시장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수천억 달러, 많게는 1조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일반 투자자는 그 기업가치에 베팅할 통로가 거의 없었다.
블록체인은 바로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24시간 쉬지 않고 거래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가격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시장을 만든 것이다. 전통 금융이 미처 열지 못한 문을 블록체인 시장이 먼저 연 셈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역설
여기에 이번 사건의 진짜 역설이 있다.
스페이스X IPO는 비트코인에서 자금을 빼낼 수 있다. 동시에 그 자금 이동은 블록체인 인프라가 전통 자본시장의 새로운 배관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암호화폐는 이번 사이클에서 ‘가치 저장 수단’이라는 이야기로는 흔들리고 있다. 가격이 흔들리고, ETF 자금이 빠져나가고, 투자자들은 더 뜨거운 성장주를 찾는다. 하지만 ‘시장 구조 기술’이라는 측면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블록체인은 월가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가격 발견, 24시간 거래, 글로벌 접근성, 토큰화 자산. 이 네 가지는 전통 금융이 쉽게 따라오기 어려운 영역이다. 은행 문은 닫히지만 블록체인 시장은 닫히지 않는다. 거래소의 국경은 있지만 온체인 시장의 국경은 희미하다. 이 차이가 투자자들을 움직인다.
흥미로운 점은 스페이스X 자신도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월 말 기준 스페이스X는 1만8712 BTC, 약 12억9000만 달러 상당의 비트코인을 코인베이스 프라임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가치 회계가 적용된 이후, 의미 있는 규모의 비트코인을 보유한 채 공개시장에 데뷔하는 첫 메가캡 기업이 되는 셈이다.
즉 스페이스X는 비트코인의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비트코인 보유 기업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일 수 있는 기업이, 정작 자기 금고에는 비트코인을 들고 있는 것이다. 시장은 언제나 이렇게 얄궂다.
한국 투자자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제 질문은 한국으로 넘어온다.
스페이스X의 상장 유통물량은 전체의 약 7%에 불과하다. 미국 개인투자자에게도 30%가 배정됐지만, 한국 투자자가 이 공모에 직접 참여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결국 국내 투자자들도 프리IPO 무기한 선물이나 토큰화 주식 같은 우회 통로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상품들을 업비트나 빗썸 같은 국내 거래소가 합법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토큰증권 제도화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한국의 위험자본은 역외 시장으로 빠져나간다. 하이퍼리퀴드, Blockchain.com 같은 해외 플랫폼이 그 돈을 받아낸다. 국내 제도가 멈춰 있는 동안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투자자는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을 찾는다. 자본은 더더욱 그렇다.
물론 조심해야 할 부분도 분명하다. 프리IPO 무기한 선물은 실제 주식이 아니다. 주식 소유권도 없고, 공모 청약권도 없다. 어디까지나 가격에 베팅하는 현금정산형 합성 파생상품이다.
토큰화 주식도 마찬가지다. SPV 구조를 기반으로 한 토큰화 주식은 법적 안정성이 완전하지 않다. 최근 앤트로픽과 OpenAI 관련 토큰화 주식은 SPV 지분 이전이 무효라는 판단이 나오자 약 50% 폭락했다. 레버리지 자금이 몰릴 경우 가격 변동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시장을 무조건 혁신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위험한 부분은 위험하다고 말해야 한다. 투자자가 실제로 무엇을 사고 있는지, 어떤 권리를 갖는지,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위험하다는 이유만으로 외면하는 것도 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시초가보다 중요한 것
스페이스X가 비트코인의 블랙홀이 될지는 몇 주 안에 확인될 가격 문제다. 상장 후 자금이 다시 비트코인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시장의 돈은 늘 돌고 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기업공개 전 가격 발견이 온체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비상장 대형 기업의 가치를 월가보다 블록체인 시장이 먼저 매기고 있다. 자본시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가격 발견이 새로운 레일 위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은 이 변화를 언제까지 역외 시장의 일로만 바라볼 것인가.
규제를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장을 막는 선택이 아니다. 시장을 해외로 내보내는 선택이다. 국내 투자자는 해외 플랫폼으로 가고, 수수료와 데이터와 유동성도 함께 빠져나간다.
6월 12일 우리가 봐야 할 것은 스페이스X의 시초가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가격을 누가 먼저 매겼는가, 어디에서 매겼는가, 어떤 기술 위에서 매겼는가다.
이번 IPO의 주인공은 스페이스X일 것이다. 그러나 더 오래 남을 변화는 블록체인이 보여준 새로운 자본시장 인프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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