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파이 대출, TVL 급감 속 판도 재편…카이코 리서치 "아베 독주 끝나고 모포 부상"

| 이도현 기자

디지털 자산 대출 시장의 판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의 Laurens Fraussen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 토큰화(RWA) 시장은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디파이(DeFi) 대출 부문은 2026년 들어 주요 온체인 섹터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자산 대출’의 핵심 지표인 총예치자산(TVL)은 2025년 약 550억 달러 정점에서 현재 220억 달러 수준까지 줄었고, 시장의 무게중심도 아베(AAVE) 중심의 전통적 구조에서 모포(Morpho) 같은 신형 프로토콜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이번 변화는 누가 더 많은 자산을 예치받고 있는가보다, 어떤 구조가 앞으로의 온체인 신용 시장을 주도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Laurens Fraussen은 2026년 6월 15일 공개한 분석에서 디파이 대출 시장이 단순한 축소 국면을 넘어 ‘세분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아베(AAVE)는 여전히 전체 대출 프로토콜 TVL의 56% 안팎을 점유하며 선두를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이 부여하는 가치 평가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 데이터는 이 같은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베는 현재 약 123억 달러 규모의 TVL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14개 이상의 체인에서 축적한 네트워크 효과와 표준화된 리스크 관리, 거버넌스 승인 기반 시장 구조에 힘입은 결과다. 다만 시장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레버리지와 담보 포지션을 축소하면서 디파이 대출·차입 시장 전체가 급격히 위축됐다. 3년 전 사실상 시장 전부를 차지했던 아베의 점유율은 2026년 6월 기준 55.9%까지 낮아졌고, 같은 시점 모포는 30.4%를 차지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나머지 점유율은 메이플(Maple) 9.3%, 플루이드(Fluid) 3.2%, 오일러(Euler) 1.2%로 분산돼 있다. 이는 후발 주자들이 단순히 아베 모델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신용 시장 구조를 제시하고 있음을 뜻한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는 디지털 자산 대출 시장이 이제 단일 승자 중심 구도에서 벗어나, 구조적 차별화에 따라 평가받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가장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단연 모포다. 모포의 TVL은 약 67억 달러로 아베의 절반 수준에 그치지만, 시가총액은 이미 아베를 넘어섰다. 모포는 대출 기능과 리스크 관리를 분리한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Morpho Blue에서는 누구나 거버넌스 승인 없이 독립적인 대출 시장을 만들 수 있고, MetaMorpho 볼트에서는 Gauntlet 같은 전문 큐레이터가 이 시장들을 조합해 예치자 맞춤형 수익 구조를 설계한다. 이른바 ‘모듈형 큐레이션’ 모델이 빠른 혁신과 리스크 분산을 동시에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다.

숫자도 이를 뒷받침한다. 모포의 예치금은 2024년 초 사실상 제로에 가까운 수준에서 현재 약 105억 달러까지 급증했다. 반면 아베의 예치금은 2025년 9월 약 730억 달러 정점에서 현재 215억 달러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아베의 시가총액은 2024년 말 57억 달러 수준에서 현재 약 10억 달러로 80% 넘게 줄었다. 반면 모포는 최근 1억7500만 달러 규모의 벤처캐피털 투자 유치 이후 토큰 가격이 상승하면서, 아베 대비 시가총액 비율이 1.3배 안팎까지 확대됐다. 시장이 ‘깊이’보다 ‘적응성’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모든 후발 주자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오일러는 무허가 볼트 조합성에 초점을 맞춰 서로 다른 볼트 간 담보와 대출을 단일 거래 안에서 연결하는 구조를 내세우고 있다. 플루이드는 대출과 DEX 유동성을 통합해 담보 자산이 대출 기능과 거래 수수료 수익을 동시에 창출하도록 설계했다. 이 구조를 바탕으로 플루이드는 2025년 한 해 1560억 달러 규모의 DEX 거래량을 기록했다. 메이플은 초과담보 중심의 디파이 문법에서 벗어나 기관 대상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소버린 풀 모델을 운영 중이며, 현재 TVL은 약 20억 달러로 섹터 3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토큰 가격 성과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2026년 1월 이후 모포는 78.9% 상승한 반면, 아베는 56.2% 하락했고 메이플은 59.4%, 플루이드는 59.1%, 오일러는 69.7% 각각 급락했다. 이는 시장이 단순히 실사용이나 매출 잠재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조가 다음 사이클의 ‘디지털 자산 대출’ 표준이 될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자산 가치를 다시 매기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 큰 흐름에서 보면 디파이 약세는 더욱 뚜렷하다. 2025년 10월 시장 정점 이후, 2026년 들어 디파이 TVL은 723억 달러로 36.9% 감소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3146억 달러로 2.1% 늘었고, RWA 운용자산은 255억 달러로 55.7% 급증했다. 같은 온체인 금융 생태계 안에서도 자금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가 분명히 갈리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질까. 핵심은 담보 구조다. 디파이 대출 시장은 여전히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같은 변동성 높은 암호화폐 자산을 주된 담보로 삼고 있다. 따라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담보 가치가 줄고, 청산과 포지션 축소가 이어지며 TVL도 함께 감소한다. 반면 스테이블코인과 RWA는 암호화폐 가격 변동과 상대적으로 무관한 동학을 따른다. ‘디지털 자산 대출’이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이런 가격 민감도를 낮출 수 있는 구조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시장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디파이가 암호화폐 네이티브 담보에 계속 의존할 것인지, 아니면 전통 금융 기반 자산과 실질 신용 시장으로 외연을 넓힐 것인지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의 Laurens Fraussen은 향후 디파이 프로토콜이 스테이블코인과 RWA 비중을 확대할수록 하락장 충격을 줄이고 성장 궤적을 보다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봤다. 현재의 승부는 단순한 TVL 경쟁이 아니라, 변동성 높은 담보 중심 모델을 넘어서는 ‘디지털 자산 대출’의 다음 설계도를 누가 먼저 완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코멘트” 시장은 이미 그 답을 모색하는 프로토콜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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