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체인분석] '느린 자산'을 '빠른 토큰'으로 포장하면, 위기는 더 빨라진다 — 와튼이 경고한 'RWA의 시간차'

| 알파리포트

실물자산 토큰화(RWA)는 더 이상 실험이 아니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금융정책·규제 이니셔티브(WIFPR)가 2026년 5월 펴낸 보고서 「실물자산 토큰화(Tokenizing Real-World Assets)」는 이 시장이 변곡점을 지났음을 숫자로 보여준다. 동시에, 그 성장 속에 도사린 위험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 토큰의 거래 속도는 그 토큰이 대표하는 실물자산의 속도를 넘어서면 안 된다.

저자는 린 윌리엄 콩(난양공대), 사이먼 마이어(카네기멜런대), 다니엘 라베티(싱가포르국립대·하버드경영대학원 방문) 세 사람이다. 블랙록·프랭클린템플턴 같은 대형 금융사부터 피겨테크놀로지스·온도파이낸스 같은 핀테크까지, 이미 시장에 뛰어든 플레이어를 망라해 분석했다. 보고서의 결론은 명료하다. 토큰화는 기술이 아니라 '경제적 기능'으로 규제해야 하며, 그 핵심 잣대는 '속도'다.

■ 토큰화는 자산의 본질을 바꾸지 않는다 — 세 갈래로 나눠 봐야 한다

보고서가 거듭 강조하는 출발점이 있다. 토큰으로 만든다고 해서 자산의 신용도나 가치, 현금흐름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토큰화된 대출 묶음은 원래 대출과 똑같은 부도 위험을 진다. 토큰화된 예금은 그 은행이 안전한 만큼만 안전하다. 토큰화가 바꾸는 것은 자산의 '거래 장소, 투자자 범위, 결제 속도, 프로그래밍 가능성'일 뿐, 자산 그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보고서는 RWA를 하나로 묶어 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기초자산의 성격에 따라 세 갈래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유동성 높은 자산(금·주식·국채). 이미 전통시장에서 잘 거래되는 자산을 블록체인 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목표는 '유동성 창출'이 아니라 '온체인 생태계로의 통합'이다. 투자자는 블록체인을 벗어나지 않고도 위험을 헤지하고, 담보를 맡기고,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수 있다.

둘째, 돈에 가까운 자산(스테이블코인·토큰화 예금). 1달러 같은 고정 가치에 묶여 결제·정산 수단으로 쓰인다. 핵심 위험은 하나, 위기 때 '액면 그대로의 환매'가 깨지는 것이다.

셋째, 유동성 낮은 자산(대출·사모신용·부동산·사모펀드). 여기서 토큰화는 사실상 '디지털판 증권화'다. 거래되지 않던 자산에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입히는 작업이다. 그러나 보고서는 단호하다. '사고팔 수 있게 만드는 것(거래 가능성)'과 '실제로 활발히 거래되는 것(유동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숫자로 보는 RWA 시장 (2026년 4월 기준) · 공개 블록체인 위 RWA 규모 ≈ 290억 달러 (스테이블코인 약 3,000억 달러는 제외) · 피겨테크놀로지스의 주택담보대출 토큰 169억 달러 포함 시 ≈ 460억 달러 · 2022년 29억 달러 → 2024년 말 120억 달러 → 2026년 460억 달러로 급증 · 업계 장기 전망: 2033년 18조 달러 · 부문별: 대출·사모신용 ≈ 200억 / 국채·MMF 145억 / 원자재(금) 60억 / 주식 약 20억 달러

▲ 부문별 RWA 시장 규모 추이(2021~2026년). 국채·머니마켓펀드가 원자재를 제치고 최대 부문으로 올라섰다. 스테이블코인은 제외. 자료: DefiLlama / 와튼 WIFPR 보고서, Figure

■ 이 보고서의 심장 — '속도 맞추기 원칙'

보고서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 '속도 맞추기'다. 토큰이 거래되는 속도와, 그 기초자산이 실제로 거래·평가·환매될 수 있는 속도가 서로 맞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채·금·대형주처럼 깊고 유동적인 시장이 받쳐주는 자산이라면, 24시간 연속 거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통시장이 닫혀 있어도 차익거래가 가격을 제자리로 잡아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고서가 인용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토큰화된 금은 현물 금과 상관계수 0.99로 거의 한 몸처럼 움직였고, 토큰화된 주식 가격은 주말·야간 뉴스를 먼저 반영해 월요일 개장 방향을 예고하기도 했다.

문제는 반대쪽이다. 사모대출·부동산·사모펀드처럼 가치가 몇 주, 몇 달 단위로만 움직이는 자산을, 24시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토큰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토큰은 빠르게 거래되는데 그 밑의 자산은 느리게만 움직인다. 이 '시간의 어긋남'이 바로 위기의 씨앗이다. 토큰 보유자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려 해도, 기초자산은 그 속도로 팔리지도, 환매되지도 않는다. 머니마켓펀드의 뱅크런과 똑같은 구조가 만들어진다.

보고서는 이를 2×2 도표로 정리했다. 가로축은 토큰의 거래 속도, 세로축은 기초자산의 조정 속도다. 빠른 토큰과 빠른 자산(국채·금·우량주), 느린 토큰과 느린 자산(폐쇄형·락업 구조)은 '잘 맞은' 녹색 영역이다. 반면 빠른 토큰 + 느린 자산 조합은 붉은 영역, 즉 가장 위험한 지대다. "유동성 약속이 기초자산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곳이다.

▲ '속도 맞추기 원칙'을 보여주는 2×2 도표. 토큰 거래 속도(가로)와 기초자산 조정 속도(세로)에 따라 네 구역으로 나뉜다. 붉은 구역(빠른 토큰·느린 자산: 토큰화 사모신용·부동산)이 런 위험이 가장 큰 지대다. 자료: 와튼 WIFPR 보고서, Figure 2

■ '탈중앙'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에 쏠려 있다

토큰화의 또 다른 그늘은 쏠림이다. 보고서는 이 시장이 겉보기와 달리 소수의 발행사와 체인에 집중돼 있음을 데이터로 짚는다.

발행사 기준으로, 상위 10곳이 전체 추적 가치의 약 **82%**를 차지한다. 특히 피겨테크놀로지스의 주택담보대출 토큰 한 종목이 전체의 약 **37%**다. 체인 기준으로는 이더리움이 공개 블록체인 RWA의 **54%**를 점유하고, 그 뒤를 BNB체인(13%)·솔라나(7%)·스텔라(6%)·리퀴드네트워크(5%)가 따른다.

여기에 더해, 보고서는 토큰화가 운영·거버넌스 위험을 소수의 수탁사·발행사·오라클 사업자·인프라 플랫폼에 집중시킨다고 지적한다. 명확한 규제 감독 없이 '청산소(clearinghouse)와 같은 위험'이 쌓인다는 것이다. 중개자를 없애겠다던 기술이, 정작 그 인프라를 떠받치는 새로운 중개자에 의존하게 되는 구조적 긴장이다.

▲ 발행사별(좌)·체인별(우) RWA 가치 집중도(2026년 4월). 상위 10개 발행사가 전체의 약 82%, 이더리움이 공개 체인의 54%를 차지한다. 자료: DefiLlama·rwa.xyz / 와튼 WIFPR 보고서, Figure 3

■ 되살아나는 옛 위험 — 환매·연결 장치·증권화의 도덕적 해이

보고서가 가장 공들여 분석한 부분은 '새로 보이지만 사실은 익숙한' 위험들이다.

첫째, 환매 구조의 함정. 토큰화는 흔히 ETF처럼 언제든 사고팔 수 있는 거래 가능성과, 펀드처럼 액면가로 돌려받는 환매 구조를 결합한다. 문제는 둘을 합치면서 정작 ETF와 펀드가 각각 갖춘 안전장치는 물려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ETF는 지정 참가자(AP)라는 규제받는 차익거래자가 가격을 순자산가치(NAV)에 묶어둔다. 토큰 시장에서는 이 환매가 최소 금액·시간 제한·발행사 재량으로 막히기 일쑤다. 평소엔 보이지 않다가, 위기 때 가격을 잡아줄 장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둘째, 연결 장치(오라클)의 단일 실패점. 실물자산은 블록체인 바깥에 있으므로, 그 가격과 상태를 블록체인 안으로 들여오는 '연결 장치'가 필요하다. 이 연결 고리가 조작되거나 멈추면 즉시 손실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2022년 10월 망고마켓 사건을 든다. 한 공격자가 거래가 뜸한 자산의 가격을 조작해 약 1억 1,700만 달러의 담보를 빼냈다. 자동 청산 로직과 결합된 약한 연결 장치 하나가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부르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DeFi 보안 사고의 누적 손실은 이미 69억 달러를 넘는다.

셋째, 증권화의 도덕적 해이. 대출을 묶어 토큰으로 파는 구조는, 대출을 일으킨 쪽이 위험을 곧바로 넘겨버리게 만든다. 자기 위험이 남지 않으니 심사가 느슨해진다. 2008년 금융위기를 불러온 '만들어 팔아넘기기(originate-to-distribute)' 모델, 즉 서브프라임 부실의 그림자가 그대로 어른거린다.

■ 규제는 '기술'이 아니라 '경제적 기능'에 맞춰라

그렇다면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보고서의 처방은 일관된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아니라, 그 토큰이 실제로 하는 경제적 역할에 맞춰 규제하라. 돈에 가까운 자산, 유동성 높은 위험자산, 유동성 낮은 자산은 서로 다른 규칙을 받아야 한다.

모범 사례로는 2025년 제정된 미국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든다. 1대 1 고품질 유동자산 준비, 월간 준비금 검증, 액면 환매권, 발행사 라이선스를 의무화한 이 법은 '기능 기반 규제'의 좋은 본보기다. 다만 보고서는 한계도 분명히 한다. 지니어스법은 보유자에 대한 이자 지급을 금지하는데, 이자 수익이 존재 이유인 토큰화 국채·MMF에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또 이 법은 라이선스를 받은 미국 규제 발행사를 전제하므로, 한 발행사가 격리 보관하기 어려운 사모대출·부동산 토큰에는 '틀 자체가 맞지 않는다.' 이런 자산은 차라리 폐쇄형 펀드나 구간형 펀드의 전통적 규제에 가깝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영국·EU·싱가포르·스위스의 시범 규제를 비교한다. 그중 스위스만이 시범 단계를 넘어 토큰화 증권을 별도의 법적 범주로 인정했고, 그 덕에 스위스 발행사들이 토큰화 채권 발행에서 두드러진다고 짚는다. 그러나 보고서는 네 나라 모두 환매 설계를 사실상 발행사 재량에 맡겨, '속도 맞추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 한국 시사점 — 우리가 토큰화하는 것은 대부분 '느린 자산'이다

이 보고서가 한국에 던지는 함의는 날카롭다. 지금 한국이 토큰화하려는 자산의 상당수가 바로 그 '붉은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조각투자, 음원 저작권, 한우, 미술품, 그리고 보이차 — 본지가 보도해온 끽다거의 보이차 RWA 프로젝트까지, 한국형 RWA의 간판은 대부분 '느리게 움직이는 자산'이다. 가치가 자주 매겨지지 않고, 정보가 불투명하며, 급히 현금화하기 어렵다. 여기에 24시간 거래되는 토큰의 외피를 씌우는 순간, 보고서가 경고한 시간의 어긋남이 그대로 발생한다. '언제든 팔 수 있다'는 약속이, 정작 팔아야 할 때 지켜지지 않는 구조다.

따라서 한국의 토큰증권(STO) 입법과 조각투자 2차 시장 제도 설계에서 핵심은 '얼마나 잘게 쪼개느냐'가 아니다. 토큰의 거래 속도를 기초자산의 속도에 맞추는 일이다. 보고서가 제시한 도구들은 구체적이다. 환매에 통지 기간을 두고, 위기 때 환매를 일시 제한하는 게이트(gate)를 허용하며, 폐쇄형·구간형·경매형 구조를 우선 검토하고, 평가 빈도와 환매 가격 산정 방식, 손실 분담 규칙을 명확히 공시하는 것이다. 오래된 평가액으로 먼저 빠져나가는 투자자가 이득을 보고 남은 투자자가 손실을 떠안는 일을 막는 장치이기도 하다.

특히 보고서는 토큰화를 처음 실험하는 규제당국에 한 가지를 권한다. 유동성 높고 돈에 가까운 자산(국채·금·MMF)부터 시작해, 그 시장을 '실험실' 삼아 수탁·환매·연결 장치·결제의 작동 원리를 익힌 뒤에, 더 복잡한 비유동 자산으로 넓혀가라는 것이다. 곧장 부동산·사모대출 토큰화로 직행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경로라는 경고다.

마지막으로 한국이 주목할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보고서는 토큰화된 주식 거래의 4분의 3 이상이 100달러 미만의 소액이었다는 실증 결과를 제시한다. 미국·유럽 증권계좌에 접근하기 어려운 전 세계 개인 투자자들이, 토큰을 통해 처음으로 글로벌 자산에 닿고 있다는 뜻이다. 토큰화가 '소액 글로벌 접근성'이라는 분명한 효용을 가졌다는 증거다. 한국이 설계할 규칙은, 이 효용은 살리되 붉은 영역의 위험은 차단하는, 정교한 균형이어야 한다.

▲ 토큰화 주식(TSLAx) 거래의 규모별 분포. 전체 거래의 47.8%가 10달러 미만, 78%가 100달러 미만이다. 토큰화가 소액·글로벌 접근성을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 Cong et al.(2025) / 와튼 WIFPR 보고서, Figure 4

토큰화는 자산의 본질을 바꾸지 않는다. 거래 방식과 접근성을 바꿀 뿐이다. 그 사실을 잊고 '빠른 토큰'이 '느린 자산'까지 유동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 순간, 익숙한 위험은 더 빠른 속도로 되돌아온다. 한국이 RWA 강국을 꿈꾼다면, 써야 할 것은 더 화려한 토큰이 아니라 속도를 맞춘 규칙이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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