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가치는 거래량만으로 설명 안 된다…카이코 리서치, 기관 자금·MiCA·유동성 질이 판 바꾼다

| 이도현 기자

암호화폐 거래소를 둘러싼 시장 평가가 기관 자금 유입과 규제 재편, 시장 집중도 심화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숙하고 있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의 토마스 프로브스트(Thomas Probst)는 최근 보고서에서 크립토닷컴과 크라켄의 기업가치가 각각 약 20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된 배경에는 단순 현물 거래량이 아니라 거래소를 ‘금융 인프라’로 바라보는 시각의 확산이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바이낸스가 전체 거래량의 약 30%를 점유하는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며, 유럽에서는 MiCA 도입 이후 규제 준수가 거래소 경쟁력의 핵심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관 자금이 바꾼 거래소 밸류에이션 기준

이번 평가의 출발점은 크립토닷컴의 최근 자금 조달이다. 시타델 증권이 4억달러를 투자하면서 크립토닷컴의 기업가치는 200억달러로 평가됐다. 이는 해당 거래소의 첫 기관 투자 유치 사례로, 전통 금융권이 암호화폐 거래소를 단순 매매 플랫폼이 아니라 향후 토큰화 자산과 기관 거래를 수용할 수 있는 기반 시설로 보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카이코 리서치에 따르면 크라켄 역시 몇 달 전 시타델 증권의 2억달러 전략적 투자를 받은 뒤 유사한 수준의 기업가치에 도달했다. 두 거래소 모두 글로벌 브랜드와 대규모 사용자 기반을 갖췄고, 현물뿐 아니라 파생상품 부문에서도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는 점이 공통분모로 지목된다.

이 같은 흐름은 암호화폐 시장이 약세 국면에 있는 상황에서도 나타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보고서는 비트코인(BTC)이 연초 이후 약 26.5% 하락했음에도 주요 거래소의 가치 평가는 오히려 ‘사업 구조의 다변화’와 ‘기관 수요 흡수 능력’에 의해 뒷받침됐다고 짚었다. 이는 거래소 가치 산정의 잣대가 과거의 단기 거래량 중심에서 유동성 품질, 파생상품 경쟁력, 규제 적응력 등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이낸스 독주 속 크라켄의 유동성 우위

다만 거래소 산업이 성숙하고 있다고 해서 경쟁 구도가 완화된 것은 아니다. 최신 데이터 기준 바이낸스는 전체 거래량의 약 30%를 차지하며 시장 지배력을 이어가고 있다. 후속 플랫폼들은 모두 점유율 10% 미만에 머물고 있어 네트워크 효과가 여전히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절대 거래량 기준으로도 바이낸스는 모든 거래쌍에서 약 34억달러를 처리한 반면, 코인베이스는 약 5억달러 수준에 그쳤다. 이는 대형 거래소일수록 주문 유입과 체결 효율이 다시 유동성을 끌어들이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시장 점유율이 곧바로 거래 품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보고서는 크라켄이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솔라나(SOL), 리플(XRP) 등 주요 자산의 평균 1% 시장 깊이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는 대규모 주문 체결 시 가격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고 호가창이 두텁다는 뜻으로, 기관 투자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다시 말해 바이낸스가 거래량에서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는 반면, 크라켄은 ‘유동성의 질’에서 강점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다. 크립토닷컴과 크라켄의 200억달러 밸류에이션이 성립하는 배경에도 이런 질적 요소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상장 거래소 주식, 비트코인보다 더 큰 변동성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기대는 비상장 기업가치뿐 아니라 상장 주식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다만 시장의 평가는 보다 냉정했다. 2026년 초 이후 비트코인(BTC)이 약 26.5% 하락하는 동안 코인베이스 주가는 약 34%, 불리시는 약 43%, 제미니는 약 60% 가까이 내렸다. 거래소 주식이 비트코인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했지만, 단순한 선형 추종이 아니라 더 큰 폭으로 변동하는 ‘고베타 자산’ 성격을 드러낸 셈이다.

이는 거래소 사업 모델이 시장 심리와 거래 활동, 변동성, 투자자 참여도에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가격이 하락하면 보유 자산 가치가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거래량 감소와 수익성 둔화 우려가 동시에 반영된다. 보고서는 BTC와 거래소 주가의 30일 이동 상관관계가 연초 이후 지속적으로 플러스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거래소 주식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간접 익스포저로 활용하고 있지만, 실제 성과는 하방 위험이 더 크게 반영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MiCA가 가른 유럽 거래소의 승자와 패자

유럽 시장에서는 규제 변화가 거래소 경쟁 구도를 더 직접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2026년 7월 1일 MiCA 전환 기간이 종료되면서 유럽연합 내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업체는 투명성, 리스크 관리, 최선 집행 측면에서 기존 금융시장에 가까운 기준을 적용받게 됐다. 이 제도에 부합하지 못한 거래소는 서비스 제한이나 영업 중단, 총 연간 매출의 3% 또는 500만유로 중 더 큰 금액에 해당하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 영향은 이미 유로화 거래량에서 확인된다. 2026년 6월 기준 MiCA 라이선스를 확보한 거래소들이 유럽 유로화 거래량의 약 83%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용자와 기관이 법적 안정성과 운영 연속성이 높은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카이코 리서치의 토마스 프로브스트는 이 같은 변화가 규제 준수 거래소와 그렇지 않은 플랫폼의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다고 봤다. 결국 유럽에서는 거래량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규제 적합성과 유로화 유동성 확보가 실질적인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거래소 산업, 규모보다 중요한 ‘인프라 역량’

종합하면 암호화폐 거래소 산업은 한층 기관화되고 있지만, 경쟁의 기준은 오히려 더 복합적으로 바뀌고 있다. 바이낸스는 여전히 글로벌 거래 활동의 중심축이지만, 크라켄과 크립토닷컴은 파생상품 확대, 기관 대상 서비스, 우수한 체결 환경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상장 거래소 주식이 암호화폐 사이클의 높은 변동성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가운데, 유럽 MiCA 체제는 규제 준수 여부를 시장 구조 재편의 핵심 변수로 끌어올렸다. 결국 앞으로의 거래소 가치는 단순 점유율보다 ‘유동성의 질’, ‘상품 다변화’, ‘규제 대응력’이라는 세 요소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코멘트"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시장은 거래소를 더 이상 단순 중개업이 아닌 전략적 인프라 사업자로 평가하고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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