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네 번째 전환기, 한국은 다음 규칙을 쓸 수 있는가

| 토큰포스트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

전도서 1장은 지금 있는 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새것처럼 보이는 일도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고 말한다. 기술은 달라지고 제도의 이름은 바뀐다. 그러나 위기 뒤 새로운 질서를 누가 설계하고, 누가 그 규칙을 따르게 되는가를 둘러싼 힘의 논리는 반복된다.

윌리엄 스트라우스와 닐 하우는 1997년 『네 번째 전환』에서 역사가 대략 80~100년을 주기로 순환한다고 주장했다. 위기 뒤 제도가 신뢰받는 ‘고조기’, 기존 질서에 균열이 생기는 ‘각성기’, 개인주의가 강해지고 공적 질서가 약해지는 ‘해체기’, 그리고 낡은 제도가 무너지고 새 질서가 세워지는 ‘위기’다. 이들은 마지막 국면을 겨울에 비유했다.

이를 역사 법칙이나 예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세대주기론은 결과를 본 뒤 원인을 끼워 맞추기 쉽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 세계가 겪는 혼란이 ‘낡은 질서의 해체’라는 설명과 불편할 만큼 닮아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기 어렵다.

오늘의 위기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이어진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 장면은 선명해진다.

1막은 금융 시스템의 균열이었다. 은행이 무너지고 국가가 구제에 나섰다. 중앙은행이 공급한 막대한 유동성은 공황을 막고 시간을 벌었지만 부채 문제를 없애지는 못했다. 자산 가격은 뛰었고, 자산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의 격차는 경제 문제를 넘어 정치적 갈등으로 번졌다.

2막은 팬데믹이었다. 보건 위기는 국경과 공급망, 재정과 통화정책의 경계를 한꺼번에 흔들었다. 정부와 전문가, 언론의 판단을 둘러싼 불신도 깊어졌다. 제도가 위기를 해결하는 능력만큼 시민의 신뢰를 유지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3막의 윤곽이 보인다. 미·중 경쟁과 전쟁, 국가 부채와 인플레이션, 달러 패권과 디지털 통화,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정보 질서가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 다투는 대상은 자산 가격만이 아니다. 통화 시스템과 국가 주권, 제도의 정당성, 무엇을 사실로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비트코인은 바로 이 위기의 입구에서 태어났다. 2009년 1월 3일 생성된 제네시스 블록에는 영국 신문 더 타임스의 ‘재무장관, 은행 2차 구제금융 임박’이라는 제목이 새겨졌다. 은행과 정부가 통화 신뢰를 독점하던 체제에 던진 문제 제기였다.

디지털자산은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위기가 낳은 결과다. 지난 17년간 이 시장에서 벌어진 투기와 파산, 사기와 제도화도 그 본질을 가려서는 안 된다. 중심에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누가 화폐를 발행하고, 누가 거래를 검증하며, 누가 결제와 자산의 규칙을 정할 것인가.

지난 사설에서 지적했듯 비트코인을 무엇이라고 부르느냐는 단순한 이름의 문제가 아니다. 투기상품으로 규정하면 정책은 단속을 넘기 어렵다. 금융상품으로만 보면 전략은 감독에 머문다. 그러나 이를 자산인 동시에 새로운 통화·결제 제도로 바라보면 국가의 대응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프레임은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에 그치지 않는다. 세금과 회계, 감독과 기관 참여의 범위를 결정한다. 무엇을 위험으로 보고 무엇을 기회로 볼지도 정한다.

이름을 정하는 쪽이 규칙을 쓰고, 규칙을 쓰는 쪽이 다음 질서의 중심을 차지한다.

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달러를 블록체인 위로 확장할 수단으로 규정했다. 지급형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과 공시, 발행 기준을 제도화하고 디지털자산 시장구조의 규칙도 만들고 있다.

유럽은 미카(MiCA)를 통해 디지털자산을 하나의 공동 규제권 안에 편입했다. 위험을 이유로 시장을 외면한 것이 아니라 규칙을 먼저 만들어 시장의 경계를 정하는 길을 택했다.

중국은 민간 디지털자산 거래를 강하게 통제하면서도 디지털 위안화는 국가 금융망 안에서 키우고 있다. 기술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통제하는 프레임 안에 넣은 것이다.

방식은 서로 다르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은 모두 자기 통화와 금융산업을 지킬 규칙을 직접 쓰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통화 질서를 설계하는 손이 대부분 한국 밖에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아직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어떤 구조로 발행할지, 은행과 비은행권의 역할을 어떻게 나눌지, 기업과 기관의 디지털자산 참여를 어디까지 허용할지 핵심 좌표를 확정하지 못했다. 과세와 회계, 수탁과 유통의 규칙도 하나의 전략 아래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2027년 시행을 앞둔 토큰증권 제도 역시 단순한 조각투자 허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발행과 유통, 공시와 결제가 연결되는 실질적인 자본시장 인프라로 만들어야 한다. 법률 한두 개를 고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는 코인 산업 하나를 키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원화가 디지털 경제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 한국 기업이 남이 만든 금융망의 이용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설계자가 될 것인지의 문제다.

우리가 비트코인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도 핵심이 아니다. 세계가 디지털자산과 토큰화,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통화와 금융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를 여전히 투기와 투자자 보호의 문제로만 바라본다면 한국의 정책은 단속과 허용 사이를 오갈 뿐 국가 전략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결정을 미루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새로운 질서가 굳어진 뒤에 청구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유럽의 규제 체계,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가 세계 시장을 나눠 가진 뒤에는 한국이 끼어들 공간이 훨씬 좁아질 것이다.

전도서의 말처럼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을지 모른다. 제국은 바뀌고 기술은 달라져도, 위기 뒤 새로운 질서를 정하는 힘의 논리는 반복된다.

겨울이 왔는지를 놓고 논쟁만 할 때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은 이미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세울 집을 설계하고 있다.

한국도 이제 답해야 한다. 남이 정한 이름과 규칙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직접 다음 질서의 프레임을 쓰고 설계할 것인가.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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