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 가기
  • 공유 공유
  • 댓글 댓글
  • 추천 추천
  • 스크랩 스크랩
  • 인쇄 인쇄
  • 글자크기 글자크기
링크 복사 완료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사설] 비트코인 ‘프레임 전쟁’, 이름을 정하는 쪽이 규칙을 쓴다

댓글 0
좋아요 비화설화 0

투기상품인가, 디지털 금인가, 새로운 통화 제도인가… 한국도 이제 정체부터 규정해야 한다

 [사설] 비트코인 ‘프레임 전쟁’, 이름을 정하는 쪽이 규칙을 쓴다

비트코인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탈중앙화된 화폐라고 하는 이가 있고, 디지털 금이라고 부르는 이가 있다. 금리와 유동성에 따라 출렁이는 위험자산이라는 평가도 있고, 기존 금융 시스템이 흔들릴 때 찾는 안전자산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17년이 지났지만 합의된 이름은 아직 없다. 정체를 몰라서가 아니다.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세금과 회계, 감독과 기관투자의 규칙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는 것은 단순한 자산 분류 논쟁이 아니다. 프레임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다.

탈중앙화 화폐론은 비트코인이 결제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디지털 금론은 가치 저장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따진다. 위험자산론은 금리와 유동성에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이는지를 본다. 안전자산론은 위기 때 자금이 피신할 수 있는 곳인지를 묻는다.

서로 다른 주장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기존 금융시장 안에서 비트코인의 자리를 찾는다. 주식과 채권, 금과 달러 옆에 비트코인을 놓고 무엇과 가장 비슷한지를 비교한다. 질문은 결국 하나다. “기존 자산 가운데 비트코인은 어디에 들어가는가.”

이 질문만으로는 비트코인의 절반밖에 설명하지 못한다.

비트코인은 분명 자산이다. 시장에서 거래되고 가격이 형성되며, 기업의 재무제표에 기록되고 과세 대상이 된다. 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비트코인은 자산을 넘어 하나의 제도이기도 하다. 발행과 이전, 검증의 규칙을 가진 통화 네트워크다.

비트코인에는 통화량을 결정하는 중앙은행 총재도, 정책을 바꾸는 금융통화위원회도 없다. 정해진 발행 규칙과 공개된 장부, 분산된 네트워크가 사람의 재량을 대신한다. 어느 한 국가나 기업이 마음대로 발행량을 늘리거나 거래 기록을 고칠 수 없도록 설계됐다.

이것이 비트코인의 ‘중립성’이다.

중립성이 법과 제재의 바깥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거래소에 보관된 비트코인은 동결될 수 있고, 개인키를 확보당하면 압류될 수도 있다. 비트코인 역시 현실 세계의 법과 제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다만 비트코인 자체에는 특정 발행자의 신용도, 특정 국가의 재정 상황, 특정 기업의 상환 약속이 붙어 있지 않다. 어느 한 관할권에 본적을 둔 통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위험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통제권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특성은 지정학적 갈등이 심해질수록 주목받는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준비자산이 대규모로 동결됐다. 제재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이 사건은 한 국가의 외환보유액조차 다른 나라의 금융망과 법률 아래 놓이면 정치적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 뒤 여러 국가가 준비자산을 다변화하고 금 보유를 늘린 데에는 인플레이션과 환율, 지정학적 불안 등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수익률만 높은 자산이 아니라, 위기 때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자산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이 국가 차원의 전략 자산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정부가 압류 등을 통해 보유한 비트코인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이를 중앙은행 준비자산 채택이나 대규모 신규 매입으로 과장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세계 최대 경제국조차 비트코인을 단순한 압류 물품이나 투기상품으로만 취급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작지 않다.

그렇다고 비트코인이 중앙은행을 모두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중앙은행은 금융위기 때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고, 결제 시스템을 관리하며, 물가와 금융 안정을 책임진다. 비트코인 네트워크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

비트코인과 중앙은행이 경쟁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통화의 신뢰를 무엇에 맡길 것인가 하는 문제다.

중앙은행 체제는 사람과 제도의 판단을 신뢰하라고 요구한다. 경제 상황에 따라 금리를 내리고 통화량을 조절하는 재량을 인정한다. 비트코인은 반대로, 사람이 쉽게 바꾸지 못하도록 만든 규칙을 신뢰하라고 요구한다. 한쪽은 재량에 기반하고, 다른 한쪽은 제약에 기반한다.

통화정책과 재정 운영에 대한 신뢰가 높을 때 비트코인의 대안적 가치는 작아질 수 있다. 반대로 통화 남발과 재정 적자, 자본 통제와 금융 제재가 반복될수록 바꾸기 어려운 규칙의 가치는 커진다. 지난 17년간 비트코인 가격의 급등락은 투기적 열기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기존 통화 제도에 대한 불신이 시장에서 어떤 값을 부여받았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정부가 비트코인을 투자상품으로 감독하는 것은 당연하다. 가격 변동성과 시세조종, 자금세탁과 투자자 피해를 방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험을 감독하는 것과 본질을 투자상품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상품이라면 감독하면 된다. 제도라면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의 비트코인 정책은 오랫동안 ‘투기 억제’에서 출발했다. 당시 과열된 시장을 진정시키고 투자자 피해를 막아야 했던 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때의 시장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프레임이 장기적인 국가 전략의 상한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이용자 보호를 넘어 법인의 시장 참여, 금융회사의 수탁, 상장상품, 디지털자산 회계와 과세, 스테이블코인 제도까지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도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 기업이 발행한 각종 토큰은 여전히 ‘가상자산’이라는 하나의 바구니 안에서 다뤄진다.

구조가 다른데 이름이 같으니 규제도 자꾸 어긋난다.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자의 상환 능력과 준비자산이 핵심이다. 기업이 발행한 토큰은 사업 실체와 지배구조를 봐야 한다. 비트코인은 중앙 발행자가 없는 대신 네트워크 보안과 수탁, 시장 변동성을 따져야 한다. 발생 가능한 위험이 서로 다른데 같은 규율을 적용해서는 정교한 제도가 나올 수 없다.

정부가 당장 비트코인을 사들이라는 주장이 아니다. 연기금과 금융회사에 무조건 투자를 허용하라는 말도 아니다. 먼저 비트코인을 일반 발행형 토큰과 구분할 것인지, 기업과 금융회사가 어떤 조건과 한도 안에서 보유할 수 있는지, 직접 보유와 수탁, 현물 상장상품의 위험을 어떻게 달리 평가할 것인지부터 답해야 한다.

정체를 정하지 못하면 세제도 흔들리고 회계도 흔들린다. 기관의 참여 기준도 만들 수 없다. 시장이 작아서 논의를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논의가 출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비트코인을 믿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믿지 않는 것과 이해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투기’라고 부르면 정책은 단속을 넘기 어렵다. ‘상품’이라고만 부르면 전략은 감독을 넘지 못한다. 비트코인이 자산인 동시에 규칙 기반의 통화 제도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규제도, 제대로 된 경계도 가능하다.

이름은 논쟁의 결과가 아니라 정책의 출발점이다. 프레임은 정책의 상한선이다. 이름을 정하는 쪽이 규칙을 쓴다.

프레임에서 지면 결국 제도에서도 진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광고문의 기사제보 보도자료

많이 본 기사

alpha icon

지금 꼭 알아야 할 리포트

관련된 다른 기사

댓글

댓글

0

추천

0

스크랩

스크랩

데일리 스탬프

1

말풍선 꼬리

매일 스탬프를 찍을 수 있어요!

등급

태양새별아빠

15:41

댓글 0

댓글 문구 추천

좋은기사 감사해요 후속기사 원해요 탁월한 분석이에요

0/1000

댓글 문구 추천

좋은기사 감사해요 후속기사 원해요 탁월한 분석이에요
1